소위 기독교 사회주의자였던 Francis Julius Bellamy(1855-1931)는 나름의 저술 활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Bellamy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 것은 그가 1892년에 만든 미국의 충성의 맹세(pledge of allegiance)일 것이다. 물론 멋들어진 맹세문을 써낸 다음에는 이 맹세문을 좀 더 그럴싸하게 해줄 수 있는 동작이 필요했다. 곧 Bellamy는 아이들을 위한 잡지였던 “The Youth’s Companion”(100년 넘게 살아남은 잡지라니 비평의 위기 얘기가 나온 지도 꽤 되는 지금에 와서는 신기할 뿐이다) 에서 괜찮은 동작을 발견하게 된다. 잡지를 소유했던 Daniel Sharp Ford의 조카였던 James B. Upham이 제안했던 이 동작을 Bellamy는 “국기에 대한 맹세(flag salute)” 라 불렀고, 1892년 10월 12일 콜럼버스의 날 행사에서 이를 시연했다. Upham이 처음 제안했던 동작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는 것이었지만, 해보면 알겠듯이 이건 꽤 불편한 자세다. 곧 최초의 동작은 손바닥을 아래로 하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다음의 모습이 되었다.

물론 히틀러 유겐트가 아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 맹세의 자세를 발빠르게 써먹은 것은 1920년대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들이었고, 그들은 이 동작을 “로마식 맹세(roman salute)” 라고 불렀다. 좀 더 잘 알려진 예는 독일의 모습이고, 그들은 이 동작을 하면서 “Sieg Heil” 을 외쳤다. 잡지 프로모션이 몸집을 불려가며 발전한 결과였던 충성의 맹세는 조금만 삐끗하면 파시스트의 상징이 되는 것이었던 셈이다. 물론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친 충성을 다할 것을 요구하는 맹세문을 가지고 있던 동방의 나라는 좀 더할 것이다. 동작이야 다르지만 아예 멘트부터가 개인의 맹목적인 충성을 요구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쇼비니스트 선언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차대전을 경험한 미국이 저런 맹세 자세를 그냥 두고 볼 리가 만무했다. 1942년 미 의회가 Flag Code를 제정하면서 맹세 자세는 Bellamy식 동작에서 오늘날 가장 익숙한, 가슴에 손을 얹는 자세로 변경되었다. 물론 우리의 경우도 혹시라도 저런 자세를 하면 안 되기 때문인지 국기에 대한 경례 자세는 아예 법률로 명문화되어 있다(거수경례 또는 오른손을 왼편 가슴에 대고 국기를 주목, 대한민국국기법 제6조). 하지만 이런 걸 법으로 정해 놓는다고 해서 위험성이 없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이런 것으로 고양될 수 있는 애국심이 무뢰한들의 피난처 이상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반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툼이 있을지언정 사회주의적 경향을 부인하기 어려웠던 기독교 사회주의자조차 광신의 영역으로 다가가면 파시스트에 다름아닐 수 있음을 역사에서 발견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