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nur “Children of Hurin”

밴드명부터도 그렇지만 데뷔부터 지금까지 톨킨의 유산만을 소재로 앨범들을 내놓고 있는 이탈리아 심포닉 프로그레시브 밴드의 2집. 물론 톨킨의 작품을 소재로 삼은 록/메탈 밴드는 셀 수 없이 많고 특히나 서사를 따지는 프로그레시브 록에서는 더욱 그렇지만, 반지의 제왕과 실마릴리온이 아닌 작품을 소재로 삼은 사례는 찾아보면 없지야 않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딱히 떠오르지도 않는다. 톨킨의 작품을 통틀어서도 이만큼 우울한 이야기도 없을 것이고 파멸하는 주인공이라면 첫손가락일텐데 좀 의외다. 하긴 톨킨의 작품들 중에 후린의 아이들을 제일 좋아하기도 어렵긴 할 테니 일단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간다.

이 밴드의 특징이라면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라고는 하지만 기타/건반/드럼의 3인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나레이션이나 소프라노/바리톤 성부의 보컬, 베이스, 하프, 바이올린, 비올라, 프렌치호른, 플루트 등이니 일반적인 밴드라기보다는 많이 확대된 편성의 실내악단에 가까워 보인다는 점이다(멤버 중에는 댄서를 맡은 인물도 있다. 정말 춤을 추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세풍의 일부 간주나 마드리갈, 레치타티보 등 노골적으로 클래시컬한 일부분을 제외하면 결국은 Gianluca Castelli의 무그가 음악을 주도하는만큼 프로그레시브 레떼르가 어색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에너제틱한 리듬을 만나볼 수 있는 ‘Glaurung’s Death’나 웅장한 리프가 돋보이는 ‘The Sack of Nargothrond’ 정도를 제외하면 록 밴드다운 박력을 만나볼 수 있는 부분은 생각보다 별로 없어 보인다. 주인공이 프로도 저리가라 수준으로 온갖 고생을 다 하다 끝내 파멸에 이르는(좋게 얘기하면 무척이나 바그너적인) 원작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이렇게 잔잔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꽤 김빠진 음악이라는 게 사견이지만 세평은 들어본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훨씬 좋은 모양이다. 5유로 주고 산 앨범이 어딘가에서는 절대 사지 말라는 뻥카가 의도였는지 130파운드에 올라와 있으니 아쉬움은 어느새 땡잡았다에 가까운 유쾌함으로 변모한다. 다시 한 번 들어봐야겠다.

[Electromantic, 2007]

Peste Noire “La sanie des siècles – Panégyrique de la dégénérescence”

이 앨범이 20년 됐다기에 간만에. Peste Noire가 논란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NSBM 밴드임은 분명하고, 이제는 Blackgaze를 넘어 블랙메탈 출신 뮤지션들 중 최고의 스타 중 하나가 되어버린 Neige로 하여금 이 앨범에 참여한 것을 공식적으로 사과하게 만들 정도로 노골적인 행보를 보였지만, 이 앨범이 NSBM으로 분류되는 앨범들 중 최고의 결과물 중 하나로 꼽힐 만하며 적어도 21세기에 NSBM이 아니라 블랙메탈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이만한 앨범이 얼마나 나왔는가 하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그런 면에서는 21세기에 나온 많은 NSBM 앨범들이 있지만 이 앨범만큼 진짜 ‘위험한’ 앨범은 별로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개의 NSBM 앨범들은 일단 형편없는 내용물 덕분에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보기도 전에 CD 랙으로 쫓겨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는 이 앨범이 보통의 NSBM처럼 오로지 증오만을 분출하는 흔해빠진 블랙메탈이 아니라 크리스틴 드 피장의 텍스트와 클래시컬한 무드(여기에는 어쿠스틱 소품들이 꽤 큰 역할을 한다)를 꽤 거칠지만 명료하게 녹음된 블랙메탈로 뒤틀면서 보들레르의 텍스트 등의 힘을 빌린 퇴폐성을 얹어내면서 나름의 드라마틱함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음악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요목조목 들여다보면 블랙메탈의 전형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들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멋진 멜로디의 어쿠스틱 소품들도 그렇지만 이만큼 솔로잉이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는(특히나 ‘Laus Tibi Domine’) 블랙메탈 앨범은 정말 드물 것이다.

덕분에 Peste Noire라는 이름만 떼어놓고 본다면 NSBM이 아니라 평화로웠던 어느 프랑스 마을의 정경이 흑사병으로 불타오르는 모습을 소재로 했을법한 블랙메탈 오페라(라기는 카바레)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첫 데모 제목을 “Aryan Supremacy”로 짓는 미친자들의 앨범을 들으면서 NSBM 얘기를 하지 않을 순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윤리성을 잃어버린(하지만 그 비윤리성을 예술의 이름으로 감춰낸) 예술 작품이 어디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얘기할 때 중요한 사례로 써먹을 수 있을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새삼 좀 무섭다.

[De Profundis Éditions, 2006]

B.S.T. “Die Illusion”

바야흐로 BTS를 선봉으로 삼아 케이팝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고 많은 이들이 침튀기며 외치고 있는 판에 BTS와는 아마도 발톱의 때만큼도 관련없을 이 괴이한 밴드는 이름부터 뭔가 눈에 걸린다. BTS야 방탄소년단의 약자라고 하는데 그럼 B.S.T는 무슨 뜻인지 알아보니 독일어로 ‘Blut, Schweiß, Tränen’의 약자라고 한다. 즉 피, 땀, 눈물 되겠다. 쓸데없는 혐의가 점점 짙어지니 이름 얘기는 이쯤에서 넘어가자.

그래도 이 함부르크 출신 밴드는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수준의 둠메탈을 들려주고 있다. 굳이 비교하면 Solitude Aeternus 스타일의 클래식 둠 스타일인데, Heiko Wenck의 보컬이 사실 둠메탈에 어울리는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에(솔직히 하드코어 불러야 할 목소리 같음)간혹 깬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있지만 묵직한 리프에 솔깃한 멜로디를 실어낼 줄 아는지라 장르의 팬이라면 만족하기 충분해 보인다. 특히나 어쿠스틱 인트로에서 이어지는 극적인 구성이 돋보이는 ‘Die Lüge’는 Candlemass와 Solitude Aeternnus의 좋았던 시절(물론 파워메탈 물은 좀 덜어내야 한다)을 연상케 한다. 물론 Messiah 같은 보컬이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세상이란 게 한 술에 배부르긴 가히 어렵기 마련이렷다.

이 데뷔작 이후에도 띄엄띄엄이지만 앨범을 계속 내고 있다니 기억할 이름이 또 늘었다.

[Self-financed, 2013]

Syndone “Spleen”

Vinyl Magic이란 레이블을 알게 된 것은 Metamorfosi의 “Inferno”였다. 솔직히 이탈리안 심포닉록의 과장성을 좀 피로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이 앨범 또한 그런 이탈리안 심포닉의 병폐를 피해가진 못하고, PFM이 이미 1972년이 “Per Un Amico”를 내놓았으므로 당대 이탈리안 심포닉의 정점이라 하기도 뭐하지만 어쨌든 꽤 멋진 앨범이었다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덕분에 꽤 안목 있는 재발매 전문 레이블이다… 라는 게 나의 레이블에 대한 첫인상이었는데, 이런 재발매 전문 레이블이 많이들 그렇지만 Vinyl Magic도 정작 자기들이 발굴한 밴드들의 앨범들은 딱히 신통치 못했다.

특히 90년대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의 신성들!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나름 야심찬 기획의 발로로 예상되는 Vinyl Magic New Prog 시리즈는 그 시절 반응이 실제로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나로서는 이 레이블을 SI Music 이탈리아 지부…마냥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솔직히 SI Music을 그리 싫어하지 않을뿐더러 그 호오를 묻는다면 나름 좋아하는 편이라 말할 수 있고 이 New Prog 시리즈 발매작들도 생각보다는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고 느끼지만, 앞서 얘기한 이탈리안 심포닉의 병폐를 단적으로 체험하고 싶다면 이 시리즈를 들어보면 된다… 라는 게 사견. 당연하지만 아마도 이게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인지라 이 시리즈의 앨범들은 이제 나온 지 거의 30년이 돼가지만 아직도 중고는 물론이거니와 무려 레이블 샵에서 (전부는 아니긴 하지만)재고떨이를 계속하고 있는 슬픈 처지에 있다. 덕분에 가성비는 무척 좋게 느껴지지만, 음악 얘기하면서 계속 가성비 언급하는 건 밴드 입장에서 좋을 일이 아닐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접하면 일단 손창민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이름(신돈이라고 읽는 게 맞는가 몰라)을 달고 나온 밴드이 이 데뷔작은 그래도 이 New Prog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눈에 띄는 음악을 하고 있다. 이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가 거의 대부분 ELP 스타일의 프로그를 연주한다는 점인데, 이 밴드도 예외는 아니지만 다른 이들에 비해 재즈, 펑크 등 좀 더 다양한 면모를 받아들인 퓨전 느낌이 강하고, 1992년이었지만 동시대의 네오프로그의 문법을 전혀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게 개성이라면 개성이겠다. 건반은 때로는 Le Orme의 좋았던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면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스타일도 다르고 기타도 없고 템포도 훨씬 빠른 이 음악을 Le Orme와 헷갈릴 일은 없을테니 너무 몰개성을 걱정할 것까진 없어 보인다. 빠른 템포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5분 안쪽으로 짧게 끝맺으면서 긴장감을 유지하는 연주도 나쁘지 않고, 특히 ‘Il Sogno dI Sigfrido’의 몰아치는 건반은 인상깊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어째 이 밴드도 노래는 좀 그렇다. 밴드의 핵심인 Nik Comoglio가 건반연주에 바쁜 와중에 굳이 노래까지 하는데, Keith Emerson을 본받아서 마이크는 좀 놨으면 낫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의 신돈 선생님들 아직 활동하고 계시니 이 정도는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Vinyl Magic, 1992]

비평철학

이 책은 비평철학이라는 야심찬 제목을 달고 있지만 원제부터가 “On Criticism”이니 결국은 그래서 비평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시각을 담아낸 책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비평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립국어원은 ‘사물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분석하여 가치를 논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의 고명한 저자가 이런 정의를 보고 논의를 이끌었을 리 없어 보이므로 책의 논의는 이 지점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일단 비평은 본질적으로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를 포함한다고 서론에서 밝히면서 논의를 시작한다. 결국은 평가는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것이 아닌가? (이걸 많은 동호회의 혹자들은 ‘음악은 지극히 주관적이다’이라 바꿔 말하면서 상대방의 의견을 무가치한 것으로 논박하는 용도로 사용하곤 한다)라는 문제제기를 비껴나가야 할 것인데, 저자는 비평의 관심은 ‘아름다움’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고, 작품의 감각적 성취는 물론 지적인 성취에 대해서 모두 다루는 것이므로 상호주관적 견지에서는 객관적 비평이 가능하다는 결론으로 이를 헤쳐나간다. 즉, 평가를 위한 객관적 원칙은 존재한다는 것이고, 예술 작품을 사회와 괴리되지 않은 일종의 문화적 산물로 바라본다면 이러한 시각이 무리한 결론까지는 아닐 것이고, 저자 또한 결국 훌륭한 비평가는 예술 비평에 매몰되지 않고 문화비평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시도한다. 그렇다면 비평가는 이 지점에서 결국 예술가와 함께 예술의 전위가 되고, 비평은 그 자체로서 독자적인 의미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많은 이들의 예술 작품에 대한 시각은 천차만별일까? 저자의 결론은 결국은 비평가가 나름의 객관성을 바탕으로 작품의 탁월함을 드러내는 기준들은 서로 상이할 수 있고, 심지어 작품이 반드시 단일한 범주에만 속할 필요도 없으므로 탁월함에 대한 논의들은 방대해질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작품에 대한 칭찬은 ‘그 작품이 자신이 속한 예술 유형의 요점이나 목적을 실현하고 있는 만큼만 그 동류 내에서 좋다고 하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다. 결국은 객관적인 비평은 객관적이기 때문에 철저히 제한적인 의미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독자적이지만 무척이나 제한적이다.

그렇게 보면 비평의 위기는 애초에 비평의 본질 자체에 내재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평이 스스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렇다면 애초에 비평이 대상이 되는 예술 작품 자체가 스스로 명확한 맥락을 던져주고 그 맥락 하에서 작품이 자리매김하는 여러 범주들을 고려하여 평가가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결국 비평의 목적 달성 여부는 이미 그 대상이 되는 예술 작품의 내용에서 벌써 결정되어 있는 셈이니 우리의 불쌍한 비평가가 본래의 작품 외에 생산해 낸 의미있는 얘기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럼 비평가는 대체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문화평론가라는 당혹스러운 직함이 미디어에 등장하기 시작한 이유는 사실은 거기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새로운 시대의 비평은 비평가에게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할지어다.

[노엘 캐럴 저, 이해완 역, 북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