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크룸프레스에서 나오는 ‘OO하면서 듣는 음악’ 시리즈로 나온 에세이집? “청소하면서 듣는 음악”만 하더라도 일단 제목을 보고 혹시나 청소할 때 틀어놓을 만한 나름의 플레이리스트를 추천하는 일종의 실용문을 기대할 여지가 있었(고 내용으로 그런 기대를 허물어뜨린다고 한)다면, 이제 제목부터 그런 류의 실용문이 아니라는 점은 좀 더 명확해졌다. 마감하면서 듣는 음악이라는데 마감이라는 작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매월 또는 매 분기 식으로 주기적으로 그간 행한 업무의 과정/결과 등을 결산하거나, 아니면 그런 일정 기간의 최종 결과물을 마무리하는 작업을 편의상 마감이라고 칭한다면 업무 주기가 불규칙적이거나, 전체 작업 과정의 일부만을 할당받는 식으로 수행하거나, 적어도 노동의 가시적인 결과물을 확인하기 어려운 부류의 근로자라면 마감작업이라고 칭할 만한 작업을 하고 있는가? 이런 류의 작업을 마감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 작업은 환경적인 측면이나 또는 다른 제반 사정을 고려했을 때 음악을 틀어놓고 할 만한 작업이라 할 수 있는가? 이런 식으로 쪼잔하게 따진다면, “청소하면서 듣는 음악”의 경우에 비할 때 이 책은 제목부터 독자의 공감 등은 그리 고려에 없이 쓰여졌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독자에 대한 고려는 별로 없었더라도 책을 펴보기도 전에 기획의도에 대한 짐작만으로 많은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이 책은 내용을 보면 사실 마감하면서 듣는 음악을 담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18년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200여 권의 잡지를 마감한 편집자였다는 저자가 그간의 세월 동안 쌓아올린 음악편력을 엿볼 수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 중에 마감작업 중 이런 음악을 들었는데 어떻더라… 식으로 쓰여 있는 앨범은 한 장도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치면 마감하면서 듣는 음악이라는 책의 제목과 관련지을 수 있을 만한 부분은 기껏해야 책의 표지에 짤막하게 나오는 디자인 & 브랜드 디렉터로서의 저자의 약력 뿐이니 제목으로서 그리 잘 지어진 이름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OO하면서 듣는 음악’ 시리즈로 나온 만큼 책 제목에 있어서 선택지는 애초에 별로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고 ‘펜대 굴리면서 듣는 음악’, ‘키보드 두들기면서 듣는 음악’ 식으로 제목을 정할 생각은 아니었을 테니 나온 결과물이겠거니 싶다.
그래서 음악 소개용 실용문이나 마감작업과 관련된 얘기를 제쳐두고 에세이로서 이 책을 본다면 대개 이른 아침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오전의 늦지 않은 적당한 시점부터 올빼미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늦은 시간까지 나름대로 빈틈없이 짜여진 스케줄을 소화하며 생각보다 자주 해외출장도 다니고 그런 와중에 여유시간에도 뭔가 있어보이는 여가를 보내며 보람찬 시간을 가질 듯한 어느 이상적인 에디터상에 가까워 보이는 인물이 일상에서 들었던 음악을 화두처럼 던지고 이를 통해 신변잡기식 이야기를 늘어놓는 류의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에 실린 앨범들에 대한 음악적인 얘기는 당연히 기대할 수 없음은 분명하고, 어떤 앨범들이 선택되어 책에 수록되었는지부터가 저 ‘어느 이상적인 에디터상에 가까워 보이는’ 모습을 구성할 내용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로저 이버트의 비평집 서문까지 인용해 가면서 엔니오 모리코네의 데뷔 60주년 기념(이라지만 사실 따져보면 60년을 명목으로 걍 패키지 갈아끼워 나온 베스트) 앨범에 대한 글을 쓰지만, 사실 로저 이버트의 저 글은 앨범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결국 요지는 살다보면 다양한 인간의 감정들을 직접 경험하고 마주하게 되는데, 그래도 긍정적인 감정들을 경험하는 순간에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bgm으로 제격일 거라는 한 줄 정도로 정리 가능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엔니오 모리코네를 선택해 그 앨범을 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실체 없는 마감작업용 플레이리스트로서는 별 가치가 없겠지만, 어느 소위 사회 최상층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유식함을 과시하게에는 충분해 보이는 계급인의 아비투스를 캐주얼한 소재로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로는 꽤 훌륭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내용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부르디외의 이론을 현실에서 실증하는 사례로서 기억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열심히 쓴 책을 이런 식으로 읽는다면 저자 입장에서는 좀 섭섭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돈주고 샀으니 좀 봐주세요.
[전은경 저, 워크룸프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