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Purple “Splat!”

Deep Purple이란 이름이 록 음악에서 갖는 무게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Deep Purple의 신작을 2026년에 메탈헤드를 자처하는 사람 치고 계속 찾아듣는다는 이가 얼마나 되려나 하는 질문에는 아무래도 그리 긍정적인 답을 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Simon McBride의 합류는 지금껏 Deep Purple을 찾아듣는 이에게 어떻게 다가올지는 사실 잘 모르겠으나, 이 밴드가 그래도 좀 더 하드했던 시절, Yngwie 이전에 기타 비르투오소의 길을 제시했던 Ritchie Blackmore 이후 밴드가 맞이한 Blackmore에 가장 흡사한 스타일의 연주자라면 Simon이 아닌가… 하는 게 사견이다. 물론 둘의 무게감이나 연주 스타일이나 어느 하나 똑같지 않지만 밴드의 에너지라는 면에서 Simon McBride 이후에 Deep Purple이 좀 더 ‘화끈한’ 밴드가 됐다는 건 꽤 명확해 보인다. Steve Morse 시절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앨범들에 은은하게 배어 있던 – 달리 말하면 좀 이도저도 아니게 애매했던 – 프로그레시브의 기운도 잦아들기도 했고.

“Splat!”에서 그런 방향성은 더욱 분명해졌다고 생각한다. 근래 Deep Purple의 넘버들 중 가장 격렬하고 스피디한 면모를 보여주는 ‘Arrogant Boy’를 싱글로 내세우는 것부터가 밴드 스스로도 그런 점을 충분히 의식한 면모일 것이다. 그렇다고 스피드메탈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Roger Glover와 Ian Paice의 리듬 파트도 이 정도의 하드록을 뒷받침하기에는 충분히 힘있고 매끄러우며, Don Airey도 자칫 기타에 잡아먹힐 수도 있을 이 스타일의 균형을 잡으려는 듯 좀 더 공격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특히 놀라운 것은 Ian Gillan의 보컬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분 나이도 나이거니와 사실 빛나던 시절은 벌써 오래 전에 지나가버린 어르신이 전성기 때까지는 아니더라도 1980년대까지는 거슬러 올라간 듯한 보컬을 들려주는 ‘Guilt Tripin”의 은근 헤비한 사운드(물론 그렇다고 메탈은 아니긴 하지만)는… 과장 섞으면 Ian Gillan이 스쳐지나갔던 Black Sabbath 시절을 그래도 그리워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도록 한다. 마침 80년대에 거기 계시기도 했고.

그러니까 Judas Priest의 근작들을 보면서 우리 어르신들 너무 대단하시다… 생각한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6.25 사변 전에 태어나신 멤버가 4명이나 되는 밴드가 이렇다는 건 놀랍다는 말도 사실 좀 부족해 보인다. 그렇게 이 앨범을 들으면서 이런 분들도 이렇게 빡세게 사시는데 나는 연휴라고 그저 놀고먹고 있는가? 하는 자기반성의 시간을 다시금 가져본다. 다들 반성하라고 만든 앨범은 아니겠지만 들으매 반성이 된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earMUSIC, 2026]

In the Name “In the Name”

은근 괜찮은 앨범을 많이 냈었던 Rising Sun에서 이 한 장만을 내고 사라진 토론토 출신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의 바로 그 유일작! 하지만 이렇게 소개해 봐야 아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나름 기구하다면 기구한 팔자의 밴드이자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런 팔자의 메탈 밴드는 꽤 흔한 편이므로 이들이 유난히 불운했다 하기도 어렵겠고, 이미 Dream Theater가 장르의 고점을 찍어놓은 상태에서 그쪽으론 안되겠다 싶었는지 Queensrÿche 스타일을 하다못해 그리 묵직하지도 않고 냉정히 얘기하면 좀 더 헤비해진 하드록에 가까울 이 스타일을 1995년에 연주하면서 인기를 기대하는 건 좀 어려울 얘기다. 밴드명이나 앨범명을 보더라도 이들이 인터넷 시대를 전혀 예견하지 못했을 거라는 점도 아마 분명하다. 저 이름으로 뭘 검색하겠는가.

그래도 음악은 꽤나 흥미롭다. 연주는 사실 그리 복잡하다 할 정도까진 아닌 듯하고(Fates Warning의 “Parallels” 정도랄까) 기본적으로 스케일 큰 대곡 같은 데는 별 관심 없이 웬만해서는 5분 언저리로 마무리하면서 적당히 그루브도 섞어주면서 이펙터 없이 깔끔하게 뽑아내는 리프, 키보드는 없지만 어쿠스틱의 비중을 높이고 어찌 들으면 Buddy Lackey처럼 들리는 연극적인 보컬이 이끄는 드라마틱함은 Dream Theater류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지간한 프로그메탈 팬의 귀를 솔깃하게 할 수 있어 보인다. 무서울 정도로 없어보이는 커버지만 음악은 그렇게 가난한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에 그리 걱정할 필요도 없다.

다만…. Dream Theater와 Rush의 앨범들에서 엔지니어로 참여한 Richard Chycki가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데도 전반적으로 꺼끌꺼끌한 음질이 귀에 걸리고, 고루 괜찮은 곡들이라 생각하지만 딱히 튀는 곡도 없으므로 까먹기도 참 좋아 보여서 못내 아쉽다. ‘Far Cry’ 같은 곡들을 만들었지만 망하려면 이렇게 이래저래 꼬이는 법이다.

[Rising Sun, 1995]

Opus Magorum “Opus Magorum”

Opus Magorum은 처음 들어본다. metal-archives에 따르면 2001년부터 활동했으니 블랙메탈의 1세대는 아닐지라도 이제 오랜 경력의 밴드임은 분명한데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니 아 난 그동안 뭐 들은 거지… 싶으면서도 그리스의 Moonblood를 꿈꿨는지 데모로만 점철되어 있으며 백장씩만 찍어냈다는(게다가 지금 이 데모의 오리지널은 60장만 찍어냈단다. 그냥 주변에만 뿌린 셈이다) 디스코그래피를 보매 그래 이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았겠냐? 하며 자연스레 합리화가 된다. 이런 걸 제때 돈 주고 샀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간다.

그래도 그리스 블랙메탈에서는 아는 사람은 아는 거물급이고 Kawir나 Ithaqua 같은 그리스 출신의 나름 묵직한 이름들과 교류했다고는 하지만 음악은 사실 그리스 특유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 Darkthrone과 Gorgoroth의 그림자가 고루 느껴지는 류의 전형적인 노르웨이풍 블랙메탈인데, 그래도 북구의 찬바람에는 관심이 없어서인지 그리 휘몰아치는 사운드는 아니고, (느리지는 않지만)이런 류의 블랙메탈치고는 꽤 여유 있는 템포로 몰아치기보다는 분위기에 주력하는 스타일이다. 덕분에 블랙메탈 데모 특유의 듣기 피곤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멜로디도 꽤 뚜렷하고, ‘Impalers Woods’나 ‘Journey of the Psychonaut’ 같은 곡은 과장 섞으면 그 시절 Darkthrone 같은 밴드를 굳이 왜 찾아듣는지에 대한 답을 단적으로 제시하는 듯한 비장한 멜로디를 들려준다.

오리지널이야 본 적도 없고 Inferna Profundus에서 2022년에 재발매를 했는데, 200장밖에 안 찍었다고 하나 아직도 여기저기 잘 보이므로(하긴 이쪽 장르에서 200장은 꼭 적은 숫자가 아니다) 관심있는 분은 늦기 전에 일청을 권해본다.

[Self-financed, 2013]

Caligula’s Horse “Bloom”

최근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들 중에서 가장 눈여겨볼 사례라는 식으로 소개받았기 때문인지 이 밴드의 음악이 귀에 들어오는 데는 생각보다 꽤 시간이 걸렸다. 이 앨범이 처음 접한 Caligula’s Horse의 앨범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좀 의외일 수도 있는데, 앨범에 붙어 있던 스티커에 Opeth, Haken, Porcupine Tree, Karnivool, Riverside의 팬에게 권한다고 붙어 있으니 이 밴드를 그저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라 소개하면 많이 곤란하다는 걸 그 때 짐작했어야 했다. 음악을 몇 년을 들었는데 이 정도에 낚이면 하 곤란하다.

그렇다고 음악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고, 사실 음악을 이루는 요소들을 뜯어보면 꽤 묵직하고 테크니컬한 리프를 가지고 있고, 대개는 그렇지 않지만 가끔은 Meshuggah풍까지 보여주기도 하며, 전형적인 메탈 보컬은 아니지만 Tool을 의식하지 않았을까 싶은(그리고 이 밴드를 왜 Porcupine Tree와 비교하는지를 알 수 있는) Jim Gray의 보컬은 이 밴드를 들어 메탈 밴드라 하더라도 고개를 저을 수는 없도록 한다. 말하자면 Caligula’s Horse가 보여주는 가장 개성적인 지점들 중 하나는 그런 요소들을 무척이나 매끄럽게 풀어가서 듣는 이로 하여금 이 앨범이 사실은 잘 들어 보면 꽤 역동적인 스타일이라는 사실을 까먹게 한다는 점이다.

그래도 앨범에서 가장 빛나는 곡들은 좀 더 묵직하고 공격적인 ‘Marigold’나 ‘Rust’라고 생각한다. Tessaract가 Moon Safari를 듣고 감명깊어 만들었을 법한 스타일이라고 하면 좀 과장이겠으나 그래도 Leprous의 가장 팝적인 시간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밴드의 팬들은 이런 곡들보다는 ‘Firelight’나… Pain of Salvation이 문득 떠오르는 전개의 ‘Daughter of the Mountain’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지만… 여기는 어쨌든 어느 메탈바보의 블로그인 만큼 그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가시라.

[Inside Out, 2015]

Will ‘O’ Wisp “Kosmo”

Will ‘O’ Wisp는 이탈리아 출신의 프로그레시브 데스 밴드이다. 사실 그리 유명하진 않고… 그나마 잘 알려진 멤버는 드럼을 맡고 있는 Oinos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뭔 소린가 싶겠지만 Sadist의 멤버이자 국내에도 라이센스되었던 Node에서 드럼을 맡고 있으니 이만하면 충분히 네임드임은 분명해 보인다. 거기다 덧붙인다면 베이스는 국내에도 데뷔작인 “No Waste of Flesh”가 소개되었던(그리고 물론 다들 관심이 없었던) 브루털 밴드 Antropofagus의 Jacopo Rossi가 그나마 알려진 인물이겠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이 쯤 되면 무명에 가깝다. 이 앨범을 구한 나로서도 미국의 Willow Wisp와 잠시 헷갈렸었는데… 이 정도 심포닉이면 2류인가 3류인가가 고민될 지경의 음악을 들려주었던 Willow Wisp와 비교되는 건 밴드 입장에서는 좋은 얘기가 아닐 테니 이쯤에서 넘어간다.

그럼 이 소개부터 헝그리한 밴드의 음악은 어떠한가? Oinos가 있다는 것도 그렇고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데스 밴드인만큼 Sadist와의 비교는 피할 수 없겠지만, “Season in Silence” 같은 앨범에서의 Sadist보다는 좀 덜 재즈적이고, 고풍스러운 스타일의 일렉트로닉을 도입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재즈적 어프로치가 Illogicist나 Gory Blister, Sadist같은 이탈리아의 다른 밴드들이 적극적으로 써먹던 방식이었다면 이들은 확실히 엇나가고 있는 편이다. 게다가 일렉트로닉스는 리프의 뒤에서 버티고 있으면서 퍽 국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간혹 등장하는 여성보컬과 역시나 에스닉한 신서사이저는 소시적의 Orphaned Land나 Betray My Secrets 같은 밴드를 연상케 하는 면도 있다. 말하자면 재즈적 리듬감과 그에 맞춰진 복잡한 리프로 무장한 대개의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데스 밴드들보다는 좀 더 여유 있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Going Back(My Samsara)’이라 생각한다. 간혹 과하게 댄서블하긴 하지만 프로그레시브 록에 가까울 구성까지 엿보이는 여유로운 전개는 Sadist류의 스타일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습은 아마 아닐 것이다.

다만…. 저 댄서블함을 쉬이 감당할 만한 데스메탈 팬은 그리 많지 않지 않을까 짐작도 들고, 때로는 당혹스러운 앰비언트풍을 보여주는 모습은 이 밴드가 하고 싶은 게 많았다는 증거가 될지 모르나 다소 난삽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Six Forms of Existence’ 나 ‘A Place of Rebirth’ 같은 인상적인 곡이 있으니 못 들어보셨다면 한번쯤은 기회를 줘봐도 좋을지도.

[Nadir Music,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