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lldom “…by the Word…”

앨범마다 제목에 말줄임표를 까먹지 않고 꼭 넣어주는 Trelldom의 2년만의 복귀작… 이라지만 이 밴드의 복귀작에 기대를 두고 있던 이를 보기란 (적어도 내 주변에서)생각보다 쉽지 않은 편이었다. 아무래도 이미 Gaahl’s Wyrd에서부터 기미가 보이기는 했지만 “…by the Shadows…”부터 Gaahl은 더 이상 기존의 ‘클래식한’ 스타일의 블랙메탈이 아니라 차라리 Oranssi Pazuzu 같은 최근의 조류에 따르기로 한 듯한 모습을 역력히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Trelldom이라는 이름을 굳이 기억하고 있을 만한 이들의 상당수가 Head Not Found에서 앨범내던 시절의 모습을 떠올릴 것임을 생각하면 “…by the Shadows”는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이게 Trelldom이 맞나 하는 게 대개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by the Word…”에서는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제 Trelldom은 아방가르드 블랙메탈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데, ‘I Speak Forgotten Voices’의 King Crimson풍 리프를 들으면 Ved Buens Ende 같은 밴드까지 생각날 정도이지만 사실 그렇게 프로그레시브하지는 않다. 결국은 디스토션보다는 퍼즈로 채워진 사이키함과, Ved Buens Ende의 그것과 비교하면 조금씩 덜그럭거리는 리듬감이 만들어내는 ‘chaotic’함이 앨범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모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곡이라면 ‘The Word Chose to Vanish’라고 생각한다. 역동적인 도입부에 이어지는 사색적인 분위기, 하지만 청자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도록 계속해서 등장하는 어쿠스틱 기타, 브라스, 그 외의 소음들이 계속해서 덜그럭거림을 선사한다. 간혹 블래스트비트나 거친 리프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지엽적인 모습에 그치고, 덕분에 때로는 이걸 블랙메탈이라 부르는 게 맞기는 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독특한 시도? 정도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앨범이라는 생각도 들고, 적어도 청자에게 불러오는 심상이나 정서 같은 면에서는 이 음악을 블랙메탈과 과히 구분할 수 있을까 싶으니 이런 걸 또 2020년대에 등장한 새로운 모습의 블랙메탈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되게 재미있게 들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Prophecy, 2026]

Dark Star(GBR) “Dark Star”

내가 아는 Darkstar라는 밴드 2개 중 나머지 하나인 영국 NWOBHM 밴드의 데뷔작. 사실 정확히 쓰면 Darkstar가 아니라 Dark Star이지만 저 띄어쓰기 하나가 유의미한 차이를 가져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뭐 나야 한글 띄어쓰기도 틀릴 때가 많으니 그 정도는 이 블로그 주인장의 부족함이려니 하고 넘어가면 좀 더 관대한 사람이 되실 수 있을지어다. 그러니까 내가 여러분께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소소한 기회를 지금 드리고 있는 것이다. 뭐래니 싶겠지만 글쓴이 스스로도 잘 모르겠으므로 이쯤에서 넘어간다.

사실 NWOBHM으로 분류되는 그 시절의 밴드들 중에서는 Dark Star는 처음부터 좀 더 멜로딕한 부류에 속했고, 아무래도 메탈이라기보단 하드록에 가까운 사운드를 들려주기도 했는데(이 점에서는 Praying Mantis 같은 밴드와 비교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Oi! 펑크의 뛰어난 밴드가 그랬듯이 따라부르기 좋으면서 귀에 잘 박히는 코러스를 만들 줄 알았고 테크니컬하진 않지만 뇌리에 남는 멜로디를 연주하는 기타 연주를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었다. 갑자기 Simon and Garfunkel을 따라하는 듯한 포크 발라드 ‘The Musician’처럼 당혹스러운(나쁘다는 얘기까지는 아님) 곡이 없지 않지만 ‘Lady of Mars’ 같은 곡은 ‘팝적인 멜로디를 전면에 내세운 NWOBHM’ 같은 걸 얘기한다면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될 수 있어 보인다.

앨범의 빛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차이가 은근히 좀 난다는 문제가 있지만 NWOBHM의 팬이라면 즐거이 들을 만한 앨범일 것이다. 만일 Def Leppard가 나름 밴드의 노선을 고심하면서 “On Through the Night”에 애매한 포크 발라드 한두 곡 정도 넣고 망해버렸다면 이 밴드와 비슷해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세상 일에 만약이란 건 없으니 하는 얘기다.

[Avatar, 1981]

Darkstar(GER) “Marching Into Oblivion”

얘기 나온 김에 독일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Darkstar의 데뷔작. 흔히 Psychotic Waltz의 사이드 프로젝트마냥 소개되곤 하는데, Psychotic Waltz의 기타를 맡았던 Dan Rock이 End Amen을 같이 했던 Siggi Blasey와 함께 결성한 밴드인만큼 그런 소개는 사실 그리 정확하진 않다. 그럼에도 그런 소개말이 붙은 이유를 굳이 이래저래 짐작하자면 End Amen부터가 꽤 프로그레시브한 스래쉬를 연주하던 밴드였고 거기에는 당연히 Psychotic Waltz의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Uwe Osterlehner도 Deathrow에서 야심찬 프로그 스래쉬(“Deception Ignored”)를 내놓은 바 있으니 Deathrow 입장에서는 저 소개말이 좀 섭섭하게 보일지도. 하지만 “Life Beyond”에서 느꼈던 묘한 지루함을 생각하면 Deathrow보다는 Psychotic Waltz에 추가 기우는 것도 이해못할 바는 아닐 것이다. 각설하고.

End Amen에서 보컬이 아쉬웠음인지 이렇게 두 멤버가 다시 헤쳐모여 내놓은 음악은 앰비언트풍이 꽤 강한 인스트루멘탈로만 이루어진 프로그레시브 메탈이었는데, 보컬 대신 이런저런 영화에서 따온 샘플링들이 공간감 강한 신서사이저 연주에 얹히면서 ‘우주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Confusion on a Grand Scale’처럼 Psychotic Waltz의 소시적이 떠오르는 기타가 돋보이는 곡도 있지만 그마저도 일반적인 메탈 곡이라기보다는 존스타운 참사의 이런저런 음향들을 샘플링하면서 분위기 자체에 집중하도록 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반적으로 Vangelis나 Mike Oldfield를 더욱 어둡게 만든 듯한 신서사이저와, 리프라기보다는 특정 테마에 집중하는 반복적인 기타 연주가 중심이 되는데, 이걸 무척 혁신적인 프로그메탈이라고 찬사를 보내는 이도 있었겠지만 나로서는 좀 듣기 피곤하다. Dan의 기타 연주도 이전에 참여한 밴드들에서 보여준 에너제틱함보다는 글리산도나 비브라토가 돋보이는 매끈한 흐름이 주가 되는데(해서 가끔은 Allan Holdsworth 생각이 난다), 꽤 다층적인 연주를 보여주는 기타나 신서사이저에 비해 퍽 단조로운 리듬 파트가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 통상적인 메탈 팬이 즐겨들을 만한 스타일은 아닐 것이다. Tankard 출신 드러머를 데려와서 만들어낸 리듬이 이래서는 좀 곤란하다.

그러니 Psychotic Waltz의 팬보다는 헤비 리프에 그리 거부감이 크지 않으면서 한때 크라우트록에 관심을 갖다가 모든 밴드가 신서사이저에 관심있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취향을 다잡았던 이가 우연히 접하고 ‘아니 세상에 이런 음악이!’라며 놀라워할 만한 앨범… 정도로 설명하는 게 나을 것이다. 하지만 Psychotic Waltz의 팬이 아니라면 과연 이 밴드에 관심을 가진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게 세상 일이 참 마음같지만은 않다는 진리를 다시금 실감한다.

[Institute of Art, 1996]

Darxtar “Sju”

Darkstar도 아니고 Darxtar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progarchives에 의하면 K. Sören Bengtsson이 1970년대 초반 Hawkwind같은 음악을 하고 싶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시작한 스웨덴 밴드라는데 저게 얼마나 돋보이는 거 없는 얘기인지는 별로 첨언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그래도 Darxtar는 결국 Darkstar의 말장난일 것이고, 그리 센스가 돋보이지는 않아 보이는 이름이지만 Darkstar라는 밴드명으로 활동하는 밴드 치고 맘에 안 들었던 적도 딱히 없었으므로(라기엔 표본이 2개밖에 없기는 하지만) 그냥 밴드명 같은 거 별로 신경 안 쓰고 음악 하나에만 집중했기를 바라며 들을 뿐이다. Black Widow도 Hawkwind풍 스페이스록에는 나름 일가견 있다…고까지는 못해도 꽤 수준작들을 내놓은 바 있으니 괜히 이런 앨범을 내지는 않았을 거라는 기대도 있다.

앨범은 그 정도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데는 충분해 보인다. 굳이 비교하자면 Hawkwind풍 스페이스록에서 하드함을 좀 덜어내고 대신 Pink Floyd풍의 ‘부유하는’ 분위기(“A Saucerful of Secrets” 시절의)로 빈자리를 메꾼 스타일인데, 그래도 사실 16분을 넘는 ‘7’(중에서도 David Gilmour를 연상할 수밖에 없는 솔로잉)을 제외하고는 노골적으로 Pink Floyd스러움을 드러내는 부분은 별로 없다. 오히려 ‘This Alien Nation’은 꽤 절도있는 비트와 헤비 리프에 해먼드 오르간을 끼얹은 의외로 ‘전형적인’ 전개의 헤비 록인데, 또 이어지는 ‘Eastern Wind’는 반대로 즉흥성을 가미한 연주를 보여주고 있어 의외로 다채로운 매력들을 발견할 수 있다. Porcupine Tree의 “The Sky Moves Sideaways”가 1995년이었으니, 그보다 살짝 늦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 시절의 Darxtar는 Porcupine Tree와 비교하더라도 많이 밀릴 것까지는 없었던 밴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긴 1995년의 Porcupine Tree도 Pink Floyd 따라쟁이라고 싫은 소리 듣던 건 마찬가지였구나.

늦게 알았지만 하나씩 슬슬 구해 봐야겠다.

[Black Widow, 1996]

Purzum “Filosofeline”

Burzum의 이름 한번 못 들어본 블랙메탈 팬은 아마 별로 없었을 것이고, Varg Vikernes부터가 블랙메탈의 역사에서 가장 악명높은 불한당(이자 어그로꾼)의 하나였으므로 이 장르의 때로는 좀 지나쳐보이는 심각함을 삐딱하게 바라본 이라면 Burzum의 이름이나 음악을 가지고 장난 한 번 쳐보지 않은 이도 별로 없었을 것인데, Bathory의 경우에는 어쨌든 음원까지 존재했던 밭소리가 있었다면 Burzum의 경우에는 음원까진 아니어도 ‘뻘쭘’ 정도의 말장난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 뮤지션은 아니지만 comfy synth를 표방하고 정말 이런 이름으로 음악을 내놓는 뮤지션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낄낄거리면서 얘기할 만한 소재로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사실 뻘쭘보다는 펄쭘 정도로 불러주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 이쯤 되면 청자 입장에서는 정확한 발음이 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Burzum의 스타일과는 많이 거리가 먼 스타일이다. Burzum은 본격적으로 다크 앰비언트를 선보이기 전 어쨌든 “Filosofem”까지는 앰비언트성 짙을지언정 지글거리는 기타가 등장하는 음악을 연주했다면 Purzum은 “Filosofem” 이후 Burzum이 써먹었을 만한 편성으로 꽤 평화로운 분위기의 음악을 들려준다. 기본적으로 던전 신스라고 해야겠지만 보통 던전 신스가 어두컴컴한 가운데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를 분위기를 그려낸다면(이를테면 모르도르로 가는 키리스 웅골의 풍경이라던가) 던전은커녕 모험 중간에 등장하는 평화로운 마을에 잠시 들러서 저녁밥 먹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류라고 할까? 게다가 곡명들만 봐도 알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넘버들을 이용한 유쾌한 패러디들이기 때문에(‘Painhealer’, ‘Slumber of the Beast’, ‘Countdown to Relaxation’ 등) 이 음악을 심각한 표정을 하고 듣는 모습은 아무래도 떠올리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comfy synth’라는 서브장르라기에도 좀 많이 ‘sub’한 이 스타일의 정의에는 지극히 충실한 음악인 셈이다.

계속 찾아들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으나 유쾌함만큼은 확실한 앨범이다.

[WereGnome,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