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nom “Welcome to Hell”

Cronos가 죽었다. 뭐 무슨 장르든 그렇듯이 블랙메탈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도 나름 화끈한 갑론을박이 오가는 주제이고, 장르에 미친 영향을 떠나서 Venom을 블랙메탈 밴드라고 부르기는 그래도 좀 어렵지 않나 하는 게 사견이지만 어쨌든 저 기원의 가장 강력한 후보 중에는 분명 Venom의 이름이 있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Slayer나 Possessed 같은 밴드를 데스메탈이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Venom 또한 블랙메탈이라기보다는 기껏해야 블랙메탈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재차 따져본다. 2026년에 이런 얘기를 하고 있으니 역시 판장사할 팔자는 아니라 새삼 실감하면서 각설하고.

그래도 Venom이 확실히 뛰어났던 점은 사타닉한 이미지의 전면적 차용에서 대변되듯 메탈 밴드가 스테이지에서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고, 이를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고, 덕분에 굳이 따지자면 Motörhead식의 NWOBHM을 좀 더 극단화하면서 중간중간 Judas Priest식 전개를 엮어내는 이 특별할 것 없는 스타일은 동시에 엉망진창의 프로듀싱과 거칠고 때로는 너무 막 나가는 보컬과 연주, 직설적이다못해 유치한 가사 등과 만나 이 앨범을 당대의 메탈 앨범과는 다른 무언가로 만들어냈다. 당대의 NWOBHM 밴드들에 비해서 확실히 부족한 연주력이 좀 더 직선적이고 거칠며 헤비한 리프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는 혹자도 있었는데, 그런 거 보면 이 ‘엉망진창’으로 대변되는 애티튜드가 Profanatica나 Von 등이 보여주는 훗날의 막 나가는 모습을 먼저 예기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대체 뭔 약을 빨았길래 1981년에 이런 생각을 했는지는 신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당장 Venom 스스로도 “Black Metal”에서는 정작 이만큼 막 나가지는 못한만큼, 장르의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몇 번의 순간들 중 하나라고 할 수도 있어 보인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Venom의 음악을 블랙메탈 팬으로서 그저 ‘좋다’라고 얘기하긴 좀 망설여지는 구석이 있다. ‘In League with Satan’이나 ‘Live Like an Angel’ 같은 곡의 숨길 수 없는 로큰롤과 블루지함은 그 시절에야 충격적이었겠지만 후대의 블랙메탈의 자극적인 맛에 이미 길들여진 이라면 다소 김이 빠질 수도 있겠다. 후대의 진짜 나쁜놈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드는 이들에 비하면야 Venom은 그저 약물과 섹스 등을 소재로 곡을 연주하되 가사에는 무조건 사탄이 많이 등장하도록 다듬은 빡센 로큰롤을 연주하는 밴드처럼 보인다. 하긴 그런 것조차 후대의 Black ‘n’ Roll 밴드들이 열심히 따라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이 양반들이 대체 얼마나 시대를 앞서나갔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Neat, 1981]

Mork(NOR) “Monolitt”

보면 Darkthrone의 앨범을 냈던 본가라서 그런가… Peaceville을 Darkthrone풍 블랙메탈 스타일의 레이블로 기억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간혹 Darkthrone 스타일을 훌륭하게 따라가는 후대의 밴드들을 잊을만하면 내놓는 곳도 또 Peaceville이라서 어쨌든 이 레이블을 얘기하매 블랙메탈을 떼어놓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그렇게 Mork는 이제 거의 10년을 Peaceville 로스터에 몸담고 있는 거물 블랙메탈 밴드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Mork와 Darkthrone의 닮은 부분을 더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둘 다 밴드이긴 하지만 결국은 Thomas Eriksen과 Fenriz의 원맨 프로젝트에 가까운 형태의 밴드이고, 블랙메탈을 하고 있긴 하지만 정작 뮤지션 본인은 블랙메탈 말고 다른 음악에 꽤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 등. 그러니까 후대의 밴드답게 음질이 훨씬 좋아졌고(달리 말하면 Darkthrone의 헝그리함에 비해서는 돈 바른 티 확실히 나고) 음악 말고 다른 뻘짓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 말고는 Darkthrone의 레거시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는 밴드들 중 선두주자 격이라고 해도 그리 틀리진 않아 보인다.

그래도 적어도 “Dypet”부터는 “Transylvanian Hunger” 스타일을 이어나가되 Master’s Hammer가 소시적에 그랬던 것처럼 이런저런 나름의 개성들을 더해나가고 있고, “Monolitt”에서도 그런 식의 방향성만큼은 여전하다. 아예 이거저거 다양하게 좀 해보겠다는 포부라도 있는 듯 Asgeir Mickelson을 드러머로 영입하고 그 본전을 뽑겠다는 듯 Slayer풍 스래쉬 리프와 그루브를 던져주는 ‘Under Vekten Av Verden’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텐데, ‘Ødelagt’ 후반의 둠적인 면모도 있는 침잠하는 분위기도 (좋다기보다는)흥미롭게 다가오고, Asgeir의 트리키한 심벌즈 플레이 덕분인지 복잡해진 드러밍에 실린 멜로딕 블랙메탈 사운드에서는 Mgla같은 밴드를 떠올리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결국 Darkthrone의 후예인 만큼 나 같은 청자는 결국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짙은 흔적을 찾아다닐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앨범의 백미는 단연 ‘Martyr’라고 생각한다. 밴드 로고까지 지워버린 단촐한 커버에 걸맞게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로만 승부하면서 예전의 그것에 비해서는 좀 더 돈맛 나는 사운드를 들을 일은 그리 흔치만은 않아 보인다. 말하자면 Darkthrone이 90년대 초중반의 그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거친 맛을 버리지만 않는 한도에서 레코딩에 돈을 발랐다면 나올 만한 음악이랄까? 꽤나 즐겁게 들었다.

[Peaceville, 2026]

Neptrecus “Ars Gallica”

Neptrecus는 꽤 재미있는 밴드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출신이지만 보통 프랑스 출신 밴드들이 보여주던 사운드보다는 퀘벡 밴드들의 조금은 호전적이면서도 웅장한 기운을 북돋우는 스타일에 가깝고,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pagan’한 기운을 담은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부류를 의식한 음악이지만(굳이 비교하자면 Satyricon) 역동적인 드럼에 힘입어 극적인 전개를 이끌어내는 스타일이다. pagan을 의식한 만큼 어느 정도는 Primordial 같은 밴드를 연상케 하는 어쿠스틱도 곁들이고, 행진곡풍의 멜로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흘러간 시절의 영광을 노래하는 류의 블랙메탈을 연주하는 밴드라고 할 수 있겠다.

흥미로운 점은 다채로운 리프보다는 반복되는 트레몰로 리프를 이용해 나름의 모티브를 명확히 제시하면서 어쿠스틱 간주나 리듬의 전환을 통해 다이내믹을 얻어내는 스타일인데, 솔로잉만큼은 블랙메탈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화려한 구석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Soyons terribles pour dispenser le peuple de l’être’의 태핑까지 이어지는 화려한 솔로잉은 Dimmu Borgir 같은 장르의 슈퍼스타의 앨범이 아니라면 찾아보기 어려울 모습인데, 그렇다고 그저 곡을 화려하게 만들기 위한 장식은 아니고 솔로잉을 통해 조금은 희미할 수 있는 멜로디라인을 명확히 하면서 나름의 개성을 찾으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다만… 그런 탓인지 ‘Fidelitas’처럼 인상적인 곡이 있는 반면 ‘Notre Berceau’처럼 평범한 곡도 있고, 밴드가 취한 노선이 기복 없이 고르게 앨범을 만들기는 쉽지 않은 방식이 아닌가(말하자면 솔로가 구리면 곡이 같이 구려지는 면이 없지 않다) 하는 생각이 든다. Svarga가 블랙메탈 보컬로서의 역량을 떠나서 노래를 그리 잘 하는 보컬리스트는 아니라는 사실도 아쉽다면 아쉽다. 하긴 그게 아니었다면 이런 음악을 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 하지만 뭐 그렇다.

[Purity Through Fire, 2019]

Kaevum “Ultra”

최근의 별 중요한 의미까지는 없을 소식 중 하나는 Darker than Black 레코드의 온라인 샵이 영업을 종료한다는 이야기였다. 공식적으로야 정치성과 무관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지만 애초에 Absurd의 앨범을 내기 위해 만들어졌고 Kristallnacht 등의 밴드들을 내놓은 레이블이 NS와 무관하다는 얘기를 믿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고 덕분에 중간중간 레이블 자체가 돌아가지 않았던 기간도 길었지만 꾸준하게 살아남은 이 악명높은 레이블이 어렵다는 소식이… 내 입장에서 아쉬울 이유야 전혀 없겠지만, 소위 ‘정통적인’ 형태의 블랙메탈이 나름의 자생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방증처럼 보이기도 해서 그것만큼은 좀 그렇다. 그러고 보니 No Colours도 아직 2026년에 앨범을 낸 적 자체가 없구나.

어쨌든 이 악명 높은 레이블의 발매작들 중 그래도 (역사적인 의미 같은 거 말고)뛰어난 음악을 담고 있었던 결과물이었다면 이 Kaevum의 앨범들이 마지막이 아니었는가 싶다. 90년대 중반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차갑지만 웅장한 리프를 솜씨 좋게 재현하고 있지만 “Kultur”까지의 밴드가 보여준 것보다 좀 더 뚜렷해진 멜로디와, 이쪽 앨범들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명확한 베이스가 받쳐주는 묵직한 사운드, 블랙메탈 보컬로서는 보기 드물게 연극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모습들은 때로는 Arckacum의 가장 극적이던 시절을 연상케 하는 면도 있다. 특히나 ‘Rottefangeren’은 어떻게 보면 잔재주 없이 거칠고 단조롭게 밀어붙이는 이 음악이 청자에게 어떻게 감정을 고양시키는지, 어떻게 그 시절 블랙메탈 특유의 ‘야만적인’ 분위기를 그려내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레이블 발매작들이 대개는 수준 이하의 음악으로 나름의 ‘정치적 위험성’을 떨어뜨린다면(그런 음악으로는 그 누구도 설득하지 못할지어다) Kaevum은 그런 의미에서 좀 더 ‘위험한’ 사례일 것이다. 그래도 전쟁 만세의 분위기보다는 지난 날의 향수에 호소하는 부류로 보이는만큼 그래도 좀 덜하려나? 하지만 이런 걸 들을 때는 가사야 안 들리지만 어쨌든 정신줄 다잡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음악이다.

[Darker than Black, 2025]

Verdunkeln “Weder Licht noch Schatten”

한때 가장 주목받는 독일 블랙메탈의 신성… 이었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Verdunkeln은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Einblick in den Qualenfall” 덕분에 The Ruins of Beverast와 더불어 독일 블랙메탈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이름들 중 하나였다. “Hvis Lyset Tar Oss” 시절 Burzum의 스타일에 터잡은 블랙메탈은 정말 널리고 널렸지만 이들만큼 나름의 방식으로 그 전형을 뒤튼 음악을 들려준 사례는 그리 흔치 않았고, 리버브 잔뜩 낀 드럼에서 Skepticism에 가까울 정도의 최면적인 묵직함까지 풍겨내는 면모는 이들을 독일 블랙메탈의 손꼽히는 이름들 중에 끼워넣기 충분해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까지 밴드의 마지막 작품인 이 앨범은 기대만큼은 분명 아니었다. 인상적인 코러스와 일견 사이키하면서도 분명한 멜로디라인은 여전하지만, 뭔가 영국 고쓰나 포스트펑크를 너무 많이 들었는지 묘한 그루브와 때로는 Ian Curtis 생각도 나는 클린 보컬까지 보여주는 Gnarl의 모습은 블랙메탈의 전형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다. 말하자면 동시대 ‘depressive’ 스타일과 일견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그 땅 꺼지는 분위기는 걷어내고 오히려 낭만성을 앞세우면서 클린 보컬을 통해 이를 강조하는 류라고 할 수 있겠는데(그런 면에서는 Urfaust 같은 밴드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극적인 전개보다는 일관된 분위기에 집중하는만큼 이걸 재미없다고 생각할 이도 은근 많을 것 같다. 리프만큼은 여전히 헤비하긴 하지만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블랙메탈의 전형에서 벗어난 사례라고 할 수 있어 보인다. ‘Des Antlitz der Himmels’의 왈츠 리듬은… 좋게 얘기하면 독일 밴드다운 개성이겠지만 조금은 당혹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다음 앨범을 만나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잘하던 거로 계속 했으면 좋겠다.

[Ván,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