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epmime “Chiaroscuro”

Creepmine은 데뷔작인 “Shadows”가 국내에도 라이센스되는 기염을 토한 덕에(정말 그 시절 메탈포스는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곳이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건 물론 아니지만 네덜란드 데스메탈의 좋았던 시절을 얘기한다면 어쨌든 이 밴드를 넘어갈 순 없겠다. Pestilence나 Asphyx, Sinister 같은 소수의 그래도 잘 풀린 사례들에 비한다면 그 정도로 잘 되진 않았고 앨범도 2장밖에 남기지 못했으니 조용히 사라져버린 사례마냥 생각해도 무리는 없을 텐데, 그 2장이 모두 수준 이상의 작품들이었고 네덜란드 데스메탈의 가장 굵직한 두 흐름들(이라는 건 내 생각이긴 하지만)이었던 둠적인 면모 강한 데스메탈과 프로그레시브-테크니컬 데스를 모두 선보였으니, 그 시절 네덜란드 데스메탈이 대충 어떤 음악을 보여주었는지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밴드를 고른다면 바로 이 Creepmime이라는 게 사견. 그러니까 메탈포스가 조금만 더 오래 버텼다면 “Shadows”뿐만 아니라 이 앨범도 라이센스로 만나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무의미한 예상을 해 보는데… 하긴 이런 거 내고 있었으니 그렇게 일찍 없어진 게 아닌가 싶다.

Creepmime의 두 앨범은 모두 프로그레시브한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둠적인 색채가 강했던 게 “Shadows”였다면 “Chiaroscuro”에서 밴드는 둠의 기운을 걷어내고 대신 Voivod풍 스래쉬 물을 먹은 류의 테크니컬 데스로 거듭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Death는 “Symbolic”을 내놓았으니 비교할 수밖에 없을 듯한데, 둘 다 당대 데스메탈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차이가 있으나 Death가 좀 더 멜로딕하고 ‘올드스쿨’의 모습을 걷어냈다면 Creepmime은 어쨌든 올드스쿨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나름의 개성을 확보하기 위해 분투한 사례로 보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복잡한 리프가 앨범을 이끌고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만나볼 수 있는 앨범이지만 덕분에 구조적으로는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은데, ‘God’s Thoughts’나 ‘In the Flesh’의 그루브하면서도 독특한 리듬감은 밴드가 그 ‘비교적 평이한’ 구조 가운데 어떻게 나름의 개성과 역동성을 확보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는 어찌 보면 “Symbolic”보다도 더욱 후대의 밴드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에너제틱한 리듬감을 적당한 키보드를 동반한 잿빛 분위기로 둘러싸고 있다는 것도 어디 가서 찾아보기 힘든 개성일 것이다. 이래저래 듣다 보면 참 신기한 앨범이다.

[Mascot, 1995]

In the Silence “A Fair Dream Gone Mad”

프로그레시브 메탈 레이블로서 Sensory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 가장 주된 이유는 Dream Theater 스타일이 평정했다고 해도 과하지는 않아 보이는 이 장르에서 이만큼 Dream Theater 클론이 아닌 밴드들을 찾아다니는 곳도 별로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Dream Theater 물을 안 먹을 수는 없을 것이고 Canvas Solaris나 Age of Nemesis 같은 굵직한 이름들은 결국 Dream Theater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음악을 들려주었지만 Spiral Architect나 Leprous, Diablo Swing Orchestra 같은 이름들을 로스터에 담고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건 애초에 레이블 사장님 관심분야가 프로그레시브 메탈이 아니라 프로그레시브 록이었기 때문에 Dream Theater 류보다는 좀 다른 스타일을 굳이 찾아다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게 개인적인 예상인데, 딱히 근거가 있는 생각도 아닌데다 Antidepressive Delivery 같은 밴드를 The Laser’s Edge에서 내놓는 모습을 보면 그냥 하다 보니 그렇게 돼버린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뭐 발매작들은 대개 만족스러웠으니 그게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In the Silence는 Sensory에서 내놓은 밴드들 중에서도 가장 Dream Theater류와 좀 거리가 있어 보이는 밴드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앨범 커버나 음악에 전반적으로 깔린 음울한 분위기는 사실 Katatonia를 좀 더 테크니컬하게 다듬은 류의 스타일인데, 사실 이렇게 얘기하면 적당히 프로그레시브한 요소를 받아들인 둠-데스 밴드들(이를테면 Dark Suns라던가)의 모습을 먼저 연상하는 게 맞겠지만 그보다는 좀 덜 감상적이고 더 직선적인 리프를 선보일 줄 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말하자면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가 둠-데스의 분위기를 대대적으로 받아들인 사례랄까? 사실 그래서인지 리프에 비해서 솔로잉이 지나치게 화려하다 못해 좀 겉도는 느낌이 있지만 Josh Burke의 절제된 보컬이 곡들의 분위기를 산만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준다. ‘Serenity’나 ‘Beneath These Falling Leaves’의 고조되는 분위기를 강렬하게 폭발시키는 전개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모습을 보면 “Damnation”에서의 Opeth가 떠오르는 부분도 있다. 그렇게 앨범이 끝날 때쯤에는 어느새 기억해야 할 이름이 하나 또 추가돼 있었다. 멋진 앨범이다.

[Sensory, 2013]

Afflicted “Dawn of Glory”

90년대 초중반 스웨디시 데스메탈의 가장 미스터리한 부분들을 딱히 꼽는 이는 별로 없지만(하긴 그걸 누가 궁금해한다고) 그런 게 있다고 치고 굳이 생각해 본다면 꽤 인상적인 프로그레시브/테크니컬 데스메탈을 들려줬던 Afflicted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2집에서 갑자기 본격 파워메탈 밴드로 거듭나 버렸을까를 빼놓을 수 없지 않을까 하는 게 사견. 그만큼 “Prodigal Sun”은 동시대의 다른 밴드들에 비하여 좀 튈지언정 인상적이라고 하기에는 충분할 만한 앨범이었다. 대체 저 Triumph 저가형 버전 같은 앨범 커버는 뭐고 이 음악은 뭐란 말인가?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이 잊혀지지 않는 탓에 처음부터 잡설이 길어진다.

데스메탈의 기운은 완연히 사라지고 Grave Digger나 Running Wild에 가까울 헤비메탈로 변모한 이 앨범은 그런 헤비메탈로서는 괜찮았는가? 사실 밴드가 욕 먹은 정도에 비해서는 앨범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원래 연주력은 괜찮은 밴드였고 Michael van der Graaf의 보컬도 그리 나쁘지 않았으며 꽤 괜찮은 솔로잉을 보여주기도 한다. 문제는 Grave Digger나 Running Wild처럼 질주감을 과시할 줄 알아야 하는 스타일이지만 원래 꽤 프로그레시브한 밴드여서 그랬는지 제대로 달릴 줄을 모른다는 것과(‘Son of Earth’처럼 달려가다가 넘어지는 듯한 급격한 템포체인지가 이 장르에 어울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 ‘파워메탈’ 앨범이 Tomas Skogsberg가 그 시절 녹음하던 데스메탈의 톤 그대로 녹음되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뭐 이래저래 들을만하다고 하는 이들도 꽤 되기야 하겠지만 솔직히 그 시절 이 정도 하는 파워메탈 밴드는 많이 흔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치면 헤비메탈의 수호자를 표방했던 이 밴드의 선택은 본인들이야 만족했을런지 모르나 자기 팔자를 스스로 꼬는 선택이었으니 지나고 보매 아쉬울 뿐이다.

[Massacre, 1995]

Boreal “The Battle of VOSAD”

Boreal이란 이름은 생소하다. Nebulae Artifacta라는 레이블도 딱히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Starless Domain의 “URSA”가 나왔던 곳이고 일단 회사 이름이 이름이니만큼 공간감 강하고 앰비언트 기운 짙은 류의 음악을 주로 내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다. 말하고 보니 이런 스타일은 Aesthetic Death 같은 곳에서 잘 내던 거로 기억하는데(일단 Starless Domain의 초기작을 재발매하기도 했고) 뭐 잘 알지도 못하는 밴드에다가 레이블 이름만 갖고 이렇게 잡설이 길어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기도 하다. 각설하고.

Boreal은 그리 중세풍까지는 아니지만 앨범을 채우고 있는 자욱한 리버브와 컴프레션을 걷어내면 결국은 묵직한 비트가 돋보이는 Summoning 풍의 블랙메탈을 연주한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나 ‘The Battle’이 보여주는 웅장한 도입부는 Summoning을 Limbonic Art식 키보드로 변주한 듯한 인상을 주는데, 그래도 이들의 음악을 그저 Summoning풍이라고 말하기 어렵게 하는 모습은 여기에 이어지는 Mysticum식 인더스트리얼 블랙메탈을 연상케 하는 거칠면서도 휘몰아치는 전개이다. 사실 그 휘몰아치는 비트만 제외하면 꽤나 낭만적인 구석이 있는 멜로디를 발견할 수 있는데, ‘The Battle’ 연작의 휘몰아치는 분위기에서 ‘Dawn’의 의외의 낭만과 ‘Dusk’의 의외로 creepy한 던전 신스풍 분위기를 연결하는 모습에서 밴드가 극적인 전개를 만드는 데 꽤 솜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이라는 오리건 출신 밴드가 뭘 보고 살았길래 이런 사운드가 나올까 하는 생각도 든다.

VOSAD가 무슨 뜻인지는 아직도 사실 모르겠지만 좋은 앨범이다.

[Nebulae Artifacta, 2006]

Stormkeep “The Nocturnes of Iswylm”

블랙메탈만큼 천재가 많은 장르도 보기 드물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걸출한 인물들이 몰린다는 뜻은 물론 아니고 좁은 바닥이라 결국 소수의 인재들은 찾는 곳이 많고 그만큼 관여하는 작업도 많으며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놓는 사례도 빈번하다는 뜻이다. 결국 그냥 짧게 말하면 잘하는 놈이 뭐든지 잘한다는 사례(이를테면 Nagash, Ihsahn, Garm 등등…)가 블랙메탈에서 많았다는 뜻인데, 말하고 보니 그렇지 않은 분야가 있기는 한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서야 글이 처음부터 꼬여버릴 테니 이쯤에서 넘어간다.

Issac Faulk도 근래에 등장한 그런 의미의 천재 중 한 명이라 생각한다. 사실 그렇게 얘기하기엔 그리 다작하는 편까진 아니지만 그 활동이 Blood Incantation, Wayfarer이었으니 주목받기에는 충분했을 것이고, 그래도 만족하지 못했는지 Wayfarer의 멤버들을 끌어들여 Stormkeep이란 이름으로 그간 하던 것과는 좀 다른 심포닉한 키보드가 맹활약하는 멜로딕 블랙메탈을 내놓았다. 이런 류의 음악이라면 아무래도 Emperor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2020년대답게 그 시절 블랙메탈과는 많이 다르다. Emperor가 블랙메탈의 어떤 전형을 내놓았다면 Stormkeep은 파워메탈이나 에픽메탈의 에토스로 선보이는 심포닉 블랙에 가까워 보인다. 사실 블랙메탈의 방법론을 빌렸으나 사실은 Rhapsody 같은 음악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lda라는 가상의 세계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앨가로드 얘기에 심취한 Rhapsody에 많이 닮아 보인다(가끔은 Bal-Sagoth 같은 부분도 있다).

그런 방향은 “The Nocturnes of Iswylm”에서도 동일하지만, 오케스트럴한 면모를 약간은 덜어내면서 기존의 노르웨이풍에서 좀 더 트리키하고 멜로딕 데스에 다가간 리프와 은근한 고딕풍의 분위기(특히 ‘Carnal Tapestries of Nailtorn Flesh’)는 데뷔작의 Emperor스러움보다는 오히려 Cradle of Filth에 가까워 보인다. ‘Imperious Sanguine Eroticism’은 이런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데, Cradle of Filth를 넘어 때로는 소시적의 Moonspell이나 The Blood Divine 같은 둠-데스의 양상을 반영한 전개에 Old Man’s Child를 연상케 하는 명료한 리프, 이러한 서사를 강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클린 보컬은 데뷔작에 비한다면 좀 덜 어둡지만 대신 더 낭만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그러면서도 어쨌든 곡의 중심에 있는 것은 심포닉이 아닌 기타 리프라는 점에서 장르의 외연을 철저히 준수하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는 생소할 건 전혀 없지만 심포닉블랙이란 장르의 요소들을 솜씨 좋게 배치하여 재조명하는 앨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들으면서 생각하는 거지만 얘 천재 맞는 것 같다.

[Verperian,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