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tape “Faded Flowers”

덕트 테이프를 밴드네임으로 정하는 이들은 과연 무슨 생각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도록 하는 터키(아니 튀르키예) 다크웨이브 듀오? 하지만 이 분들 하고 다니시는 모습도 그렇고 찾아보면 이들을 다크웨이브로 소개하는 경우와 포스트펑크로 소개하는 경우가 거의 비등비등해 보이니 대충 콜드웨이브 또는 그 중에서 좀 더 뉴웨이브에 치우친 류의 스타일이지 아닐까 짐작할 수 있겠다. 그렇게 자기들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음악을 하는지를 입증하려는 생각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기존의 작품들을 통해서 꽤 눈부신 반응을 얻어냈다는(하지만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 듀오는 최근에 스트라스부르로 거점을 옮겨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하긴 저 고쓰 코스튬 입고 콜드웨이브를 한다면 결국은 프랑스만한 무대도 없었을 것이다.

“Faded Flowers”는 그런 예상에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음악을 담고 있다. 기본적으로 고쓰풍 포스트펑크에 기반한 음악이고, 거기에 The Sisters of Mercy 등이 그랬듯이 전자 드럼과 다크웨이브식 신서사이저가 어우러지는 류의 음악인데, Çağla Güleray의 적당히 음울하지만 힘있는 보컬이 자칫 댄스 플로어 비트와 함께 경박해질지 모르는 이 스타일의 중심을 꽤 단단히 잡아주는 편이다. 이런 면모가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Obscure’라고 생각하는데, 거의 EBM에 가까울 정도의 경쾌한 비트에 음울한 멜로디와 보랏빛 목소리로 거의 자기파괴에 가까워 보이는 고독감을 노래하는 보컬은 고쓰풍 짙은 프랑스식 콜드웨이브를 어째서 (많지는 않았지만) 꾸준하게 사람들이 찾아다녔는지를 알려주는 사례일 것이다. 가끔은 “Ultra” 시절의 Depeche Mode가 그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하되 ‘People Are People’을 부르던 시절의 댄서블함을 유려하게 엮어낸다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고쓰 클럽용으로 만든 듯한 댄스플로어용 트랙 ‘D.E.R.T’ 같은 걸 들으면 가끔은 이들이 혹시나 너무 우울해질까 싶다 보니 흥겨움에 대한 강박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긴 원래 콜드웨이브가 그런 경향이 없지는 않은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줌 뿐인 콜드웨이브 팬들이 늦은 밤 고쓰 클럽에 모여 서로 뭉치면서 단합하려면 이런 댄스 뮤직이 꼭 필요한 거였나 싶기도 하다.

물론 댄스풍만 있는 앨범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덕분에 진중한 고쓰를 원했던 이라면 조금은 고민이 필요할지도? 나처럼 잡다한 취향이라면 크게 문제될만큼은 아니긴 하겠지만 나이 먹으니까 세상에는 참 다양한 이들이 있더라.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들었다.

[Swiss Dark Nights, 2026]

Tung Bandits, The “The Tung Bandits”

이 괴이한 이름의 피츠버그 밴드는 1990년에 이 한 장의 앨범만을 내놓고 사라져버렸고, 앨범은 2021년 Heaven and Hell Records가 재발매하기까지 거의 30년을 묻혀 있었다. 레이블에 의하면 짧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멜로딕 하드록과 펜실베이니아 헤비메탈의 hidden gem으로 자리매김한 앨범으로 Lilian Axe, Banshee, Loudness, King Cobra, Lion의 팬에게 권한다…고 하고 있는데, 비슷하면서도 은근히 다른 저 다섯 밴드의 음악들을 생각하면 이런 밴드의 팬들을 모두 만족시킬 정도의 걸작이었다면 묻혀버리기도 쉽지 않았을텐데 뭘 어쨌길래… 하는 생각도 든다. 하긴 1990년에 팝 메탈/하드록은 이제 성공을 담보할 수 없는 스타일이었으니 80년대 미국의 클럽가 현황을 모르는 나 같은 이로서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펜실베이니아 지역의 80년대 메탈 얘기는 “Rusted Metal : A Guide to Heavy Metal and Hard Rock Music in the Pacific Northwest(1970-1995)”를 참고하라는 혹자가 있어서 책을 샀는데… 생각해 보니 펜실베이니아는 북동부이므로 그조차 뻘짓이었다. 인생 참 어렵다.

어쨌든 밴드의 이 유일작은 나름 활기차고 직선적인 리프를 가지고 있지만 어쨌든 헤비메탈보다는 하드록에 좀 더 가까운 스타일이고, 비교적 평이한 리듬 파트에 꽤 화끈한 손맛의 솔로잉을 선보이는 기타와, 가난함을 감출 수 없는 적당히 먹먹한 음질마저 뚫고 나오는 고음역의 보컬은 밴드에게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한 장 내고 묻힌 하드록 밴드에 있기는 아까워 보이기까지 하는 지점이 있다. ‘Don’t Turn Away’나 ‘Back It Up’처럼 과장 섞으면 소시적의 George Lynch마냥 그저 흥겨운 리프에 비해서는 확실히 공격적인 솔로잉을 보여주는 면모가 있고, ‘Down in the Dark’처럼 마냥 ‘건강한’ 코러스를 내세우는 전형적인 형태의 하드록도 평이하지만 지겹지는 않게 만들 수 있다. 암만 들어봐도 레이블의 설명과 달리 Lilian Axe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이 정도면 무난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그 시절 이것보다 더 월등한 음악으로도 순식간에 망해버린 많은 밴드들을 알고 있고 이 밴드의 운명도 결국 저 개떡같은 커버가 보여주듯 그런 사례들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렇게 같이 묻혀버릴 뻔한 출중했던 보컬리스트는 새로운 길을 이래저래 모색하다가 Judas Priest의 새 보컬 오디션에서 떨어졌을지언정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고 곧 어느 덴마크 밴드의 새 보컬로 합류하여 드디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의 이야기는 Royal Hunt의 바이오그래피를 참조할 것.

[Deans Penis Records, 1990]

Countess “The End of Time”

Countess의 특징이라면 90년대 초중반 블랙메탈의 무시할 수 없는 흔적이자 그 시절 블랙메탈을 추구하면서도 노르웨이풍을 좇지 않았던 드문 사례라는 점일 것이고, 이것보다 더 중요한 특징은 좋게 얘기하면 헤비메탈의 클래식들을 늘 기억하게 하는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나름 블랙메탈의 기운을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그랬고 나름 이름이 알려진 이후에도 결코 변치 않았으며 30년 이상 밴드를 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한 그 구리구리함 덕분에 이만큼 나름 알려진 밴드들 중에서 호오가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도 흔치만은 않을 것이다. 짐작건대 여기에는 블랙메탈의 역사에서 구리구리함으로는 손꼽을 만한 레이블이었던 Nazgul’s Eyrie 덕분인 것도 있을 것이다. 밴드와 함께 영광과 굴욕의 역사의 상당부분을 함께해 온 Opyros의 프로듀스는… 나는 이 분이 스튜디오에서 손 댄 앨범들 중에 구리구리하지 않았던 경우를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늘 그랬던 건 아니지만 흥겨움이라면 어디 가서 쉬이 밀리지 않는 스타일의 Cruachan마저도 Opyros와 함께한 시절에는 구리구리했다. 각설하고.

어쨌든 그래도 이 근성의 밴드는 레이블을 떠난 뒤에도 포기하지 않고 활동을 계속해서 금년에는 드디어 17번째 정규작을 내놓았고, 이번에는 곡명만 보면 Countess보다는 Amon Amarth 같은 밴드가 떠오를 만한, 전쟁이나 이에 참여하는 전사들, 전설적인 존재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실 이 밴드가 적어도 “Fires of Destiny”부터는 헤비메탈의 기운이 더욱 강해지면서 이제는 블랙메탈이라 부르기 조금은 애매해진 음악을 연주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Amon Amarth보다는 Manilla Road 같은 밴드를 연상하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전임자인 Zagan에 비해서는 확실히 덜 어두운 톤을 선보이는 Valgard의 기타도 그렇고, 더 올라가 70년대 하드록풍까지 나아가는 Häxa의 건반과 Mortüüm의 드럼(솔직히 Ian Paice 생각이 난다. 블랙메탈 드러머가 이게 웬말이냐)에 어우러지는 Orlok 특유의 걸걸한 샤우팅은 서로 잘 어울릴지언정 블랙메탈 앨범에서 기대할 만한 그것과는 좀 거리가 있다.

그래도 이 밴드가 언제는 안 그랬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헤비메탈의 기운이 좀 더 짙어진 덕에 근작들에 비해서는 좀 더 경쾌하게 들을 수 있는 앨범일 것이다. 그나마 기존의 펑크풍 짙은 스타일을 보여주는 ‘Slaves Shall Serve’ 같은 곡에서 밴드 본연의 모습을 찾는 이들은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뭐가 됐든 Orlok 이 양반은 애초에 노래를 왜 이 따위로 부릅니까?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결국은 특유의 구리구리함을 유지하고 있는 이 앨범이 그리 반가울 리 없을 것이다. 뭐가 됐든 하 구리다.

[Self-financed, 2026]

마감하면서 듣는 음악

워크룸프레스에서 나오는 ‘OO하면서 듣는 음악’ 시리즈로 나온 에세이집? “청소하면서 듣는 음악”만 하더라도 일단 제목을 보고 혹시나 청소할 때 틀어놓을 만한 나름의 플레이리스트를 추천하는 일종의 실용문을 기대할 여지가 있었(고 내용으로 그런 기대를 허물어뜨린다고 한)다면, 이제 제목부터 그런 류의 실용문이 아니라는 점은 좀 더 명확해졌다. 마감하면서 듣는 음악이라는데 마감이라는 작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매월 또는 매 분기 식으로 주기적으로 그간 행한 업무의 과정/결과 등을 결산하거나, 아니면 그런 일정 기간의 최종 결과물을 마무리하는 작업을 편의상 마감이라고 칭한다면 업무 주기가 불규칙적이거나, 전체 작업 과정의 일부만을 할당받는 식으로 수행하거나, 적어도 노동의 가시적인 결과물을 확인하기 어려운 부류의 근로자라면 마감작업이라고 칭할 만한 작업을 하고 있는가? 이런 류의 작업을 마감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 작업은 환경적인 측면이나 또는 다른 제반 사정을 고려했을 때 음악을 틀어놓고 할 만한 작업이라 할 수 있는가? 이런 식으로 쪼잔하게 따진다면, “청소하면서 듣는 음악”의 경우에 비할 때 이 책은 제목부터 독자의 공감 등은 그리 고려에 없이 쓰여졌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독자에 대한 고려는 별로 없었더라도 책을 펴보기도 전에 기획의도에 대한 짐작만으로 많은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이 책은 내용을 보면 사실 마감하면서 듣는 음악을 담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18년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200여 권의 잡지를 마감한 편집자였다는 저자가 그간의 세월 동안 쌓아올린 음악편력을 엿볼 수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 중에 마감작업 중 이런 음악을 들었는데 어떻더라… 식으로 쓰여 있는 앨범은 한 장도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치면 마감하면서 듣는 음악이라는 책의 제목과 관련지을 수 있을 만한 부분은 기껏해야 책의 표지에 짤막하게 나오는 디자인 & 브랜드 디렉터로서의 저자의 약력 뿐이니 제목으로서 그리 잘 지어진 이름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OO하면서 듣는 음악’ 시리즈로 나온 만큼 책 제목에 있어서 선택지는 애초에 별로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고 ‘펜대 굴리면서 듣는 음악’, ‘키보드 두들기면서 듣는 음악’ 식으로 제목을 정할 생각은 아니었을 테니 나온 결과물이겠거니 싶다.

그래서 음악 소개용 실용문이나 마감작업과 관련된 얘기를 제쳐두고 에세이로서 이 책을 본다면 대개 이른 아침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오전의 늦지 않은 적당한 시점부터 올빼미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늦은 시간까지 나름대로 빈틈없이 짜여진 스케줄을 소화하며 생각보다 자주 해외출장도 다니고 그런 와중에 여유시간에도 뭔가 있어보이는 여가를 보내며 보람찬 시간을 가질 듯한 어느 이상적인 에디터상에 가까워 보이는 인물이 일상에서 들었던 음악을 화두처럼 던지고 이를 통해 신변잡기식 이야기를 늘어놓는 류의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에 실린 앨범들에 대한 음악적인 얘기는 당연히 기대할 수 없음은 분명하고, 어떤 앨범들이 선택되어 책에 수록되었는지부터가 저 ‘어느 이상적인 에디터상에 가까워 보이는’ 모습을 구성할 내용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로저 이버트의 비평집 서문까지 인용해 가면서 엔니오 모리코네의 데뷔 60주년 기념(이라지만 사실 따져보면 60년을 명목으로 걍 패키지 갈아끼워 나온 베스트) 앨범에 대한 글을 쓰지만, 사실 로저 이버트의 저 글은 앨범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결국 요지는 살다보면 다양한 인간의 감정들을 직접 경험하고 마주하게 되는데, 그래도 긍정적인 감정들을 경험하는 순간에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bgm으로 제격일 거라는 한 줄 정도로 정리 가능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엔니오 모리코네를 선택해 그 앨범을 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실체 없는 마감작업용 플레이리스트로서는 별 가치가 없겠지만, 어느 소위 사회 최상층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유식함을 과시하게에는 충분해 보이는 계급인의 아비투스를 캐주얼한 소재로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로는 꽤 훌륭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내용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부르디외의 이론을 현실에서 실증하는 사례로서 기억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열심히 쓴 책을 이런 식으로 읽는다면 저자 입장에서는 좀 섭섭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돈주고 샀으니 좀 봐주세요.

[전은경 저, 워크룸프레스]

Satarial “The Queen of the Elves’ Land”

뭐가 됐든 Satarial이란 밴드의 이름을 알리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하였음은 분명해 보이는 밴드의 1998년작. 솔직히 계속 데뷔작으로 알고 있었지만 metal-archives에 의하면 이게 2집이라는데, 진짜 1집이라는 “…and the Flame will take the Temples of Christ”는 1996년에 테이프로만 나왔었고 2005년에야 CD화됐다니 이쯤 되면 그냥 이 앨범을 계속 데뷔작으로 착각하고 있는대도 밴드 본인들의 억울함이야 없지 않겠으나 납득 못할 건 없어보인다. 밴드 본인들이야 자기들이 사실은 러시아 블랙메탈의 시초격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데뷔시기에 관심이 많을 수도 있겠지만 나 같은 일개 청자에게는 그래서 뭐 달라질 건 없을 일이다. 굳이 러시아 블랙메탈의 역사를 따진다면야 1995년에 “Dwellers of the Cursed Forest”를 내놓은 Drauwath 같은 사례도 있는데 1996년으로 비빌 것도 아니다 싶고, 사실 러시아에서 이렇게 자웅을 겨뤄본들 결국 바로 옆동네의 Nokturnal Mortum 보기에는 뭔 부질없는 짓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각설하고.

그럼 Satarial이 원래 연주하는 스타일은 무엇이었나? 하면 그 즈음의 Nokturnal Mortum이 그랬던 것처럼 포크풍 강한 블랙메탈에 약간의 심포닉을 곁들인(물론 Nokturnal Mortum 쪽이 훨씬 화려하긴 하다) 류의 음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플루트에 바이올린까지 챙긴 나름 대편성의 라인업에 비해서는 연주하는 음악은 직선적이다못해 다소 심플한 전개의 블랙메탈인데, 중간중간 플루트 간주를 통해 나름의 극적인 맛을 더하는 정도? 여성보컬만 빼면 사실 적당히 전원적인(달리 얘기하면 좀 경박한) 멜로디와 쿵짝쿵짝 분위기가 소시적의 Graveland 생각이 나는 구석도 있는데, Graveland에 비해서는 묵직한 맛은 전혀 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이 밴드의 수준을 그런 A급에 비교하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저 90년대 중후반 pagan한 맛을 나름 잘 살려내던 포크 블랙메탈 스타일을 기억하는 이라면 퍽 익숙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스타일에 익숙한 이라면 A급이 아니다 뿐이지 전체적으로 편히 듣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복잡하게 가지 않고 직선적으로 밴드 나름의 매력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I Damned You Holy One!’이 앨범의 백미.

[Hobgoblin,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