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íny Plamenů “Ve špíně je pravda”

Stíny Plamenů, 그러니까 이름을 정확히 쓰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이 체코 블랙메탈 밴드는 Barbarian Wrath 하면 쉬이 떠오르는 거칠면서도 적당히 구리구리한 류의 블랙메탈을 연주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쁜 건 절대 아니고 개인 취향으로는 솔직히 구리다보다는 꽤 들어줄만 하다에 가깝긴 하지만 이 레이블 발매작들이 Nazgul’s Eyrie 시절부터 그랬듯이 유명세(라기보단 악명)에 비해서 딱히 기억에 남지는 않았던 나로서는 이 앨범이라고 딱히 달리 다가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세계 블랙메탈의 역사에 비춰 보더라도 전례없어 보이는 컨셉트로 이름을 날린 이 밴드의 진가를 알게 되는 데는 꽤나 시간이 흘렀다. 아니 앨범명이나 가사나 전부 체코말로 써놓는 통에 내용을 알 수 없었던 이 밴드의 컨셉트가 하수도 블랙메탈인 줄 누가 알았을까? 무슨 닌자거북이도 아니고 하수구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전투와 투쟁의 이야기를 블랙메탈 앨범에서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러니 편의상 하수도 전쟁이라 부를 이야기를 컨셉트로 하는 이 앨범의 진가를 체코어라고는 인사말조차 모르는 내가 파악하기는 어려울 일이고, 그러니 아쉬운대로 저 컨셉트는 진짜 궁금하긴 하지만 어쨌든 넘어가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음악은 꽤 들을만 하다. 래스핑으로 일관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다른 톤과 억양에다가 때로는 클린 보컬까지 선보이면서 연극적인 면모를 과시하는 보컬, 거칠긴 하지만 생각보다 멜로딕하고, 간혹 팀파니(아마도 샘플링이겠지만)까지 등장하면서 조성되는 살짝 포크 바이브 묻은 ‘ritual’한 분위기에서 Master’s Hammer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Marduk의 ‘Nightwing’을 커버하는 모습에서도 나타나지만 그 선배들보다는 좀 더 격렬한(스피드 빼고) 연주를 들려주는 편이다. 취향은 타겠다만 분명히 이 음악을 흥겹게 받아들일 이가 있을 것이다. 재미있다.

[Barbarian Wrath, 2001]

Destiny’s End “Breathe Deep the Dark”

James Rivera 얘기 나온 김에 간만에. James Rivera의 본진은 단연 Helstar이고 이 오랜 경력의 보컬리스트의 가장 빛나는 순간도 Helstar의 80년대였을 것이지만 이 좋게 얘기하면 다재다능하고 나쁘게 얘기하면 장르의 가장 대표적인 절창들에 비해서는 항상 한 박자 늦게 생각나던 이 보컬리스트의 가장 빛나는 한 장을 고른다면 Helstar가 아니라 바로 이 Destiny’s End가 아닐까? 하지만 90년대 초반도 아니고 1998년은 이런 메탈 앨범이 주목받을 만한 시점은 확실히 아니고, 지금이야 이 밴드가 짧았지만 괜찮았네 어쨌네 하지만 James Rivera가 Horacio Colmenares와 의기투합해서 New Eden을 만들었다가 몇 달도 안 돼서 밴드는 깨지고 갑자기 Horacio만 빼고 밴드의 다른 멤버들을 헤쳐모아 만든 밴드가 Destiny’s End였으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상을 떠나서 밴드에 대한 인상은 홍철 없는 홍철팀… 같은 수준이었다. 기대받을 만한 뭔가는 아니었던 셈이다.

어쨌든 그렇게 나온 밴드의 이 데뷔작은 놀라울 정도로 USPM, 그 중에서도 소위 ‘블루칼라 파워메탈’의 정수를 간직하고 있다. 스래쉬로 넘어가기 직전 수준으로 격렬하게 벼려진 파워메탈 리프(인지라 이걸 스피드메탈 마냥 부르는 이들도 없지 않지만)를 앞세워 달려가다가도 어느새 소시적 Helstar마냥 서사적인 면모를 과시하고, ‘Clutching at Straws’ 처럼 클래시컬함을 던져주는 곡도 있다. 그러면서도 앨범을 관통하는 질주감에 실려 끝없이 던져지는 USPM 리프, 그러면서도 웬만한 USPM보다도 더 무겁고 어두운 연주는 자칫 생각없는 마초 메탈마냥 오해되는 이 장르에 대한 편견을 지우는 데 가장 적절한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음악이야 어쨌든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안타까울 지경인지라 보인다면 무척 저렴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참고로 난 4천원(배송료 무료) 주고 샀다. 가성비도 이런 가성비가 없다.

[Metal Blade, 1998]

Leviathan(US) “Riddles, Questions, Poetry & Outrage”

Leviathan이라는 이름은 메탈 팬들에게는 꽤 익숙하다. David T. Chastain이 사장 노릇하는 Leviathan Records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겠고, 비교적 최근의 메탈 팬이라면 미국 블랙메탈 밴드를 떠올릴 수도 있겠고, 좀 삐딱한 이라면 미국이 아니라 스웨덴 블랙메탈 밴드를 떠올릴 수도 있겠고, 메탈보다는 나쁘진 않았지만 그래도 당대의 영국 밴드들의 레플리카 이상까지는 또 아니었던 미국 하드록 밴드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말하자면 이 이름으로 밴드명을 삼고 청자의 기억에 남기란 꽤 경쟁 심한 과업이라는 뜻인데, 예나 지금이나 인기는 딱히 없어 보이지만 현재까지도 – 한 번 해체하고 재결성하긴 했다만 – 나름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활동해 오고 있고 꾸준히 일정한 퀄리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그 많은 Leviathan 중에서도 단연 이들이 최고가 아닐까? 물론 저 미국 블랙메탈 밴드가 평가는 최고이겠다만 기복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인지라.

그럼 이 밴드의 고점은 어디였는가? 사실 데뷔 때부터 꾸준했고 딱히 스타일의 변화도 별로 없었던 이 콜로라도 밴드의 고점을 얘기하긴 애매하지만 그래도 밴드 역사에서 가장 메이저에 다가갔던 이 2집이 그래도 가장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Dream Theater 류가 아니라 Fates Warning의 80년대 시절 스타일이 파워메탈 물을 완전히 빼지 않는 한도에서 좀 더 복잡하고 극적인 면모를 수용한 류의 음악인데, 솔직히 John Arch나 Geoff Tate 같은 동종업계 절창들에 비해서는 개성적일지언정 확실히 매력도 파워도 떨어지는 보컬이 가장 큰 진입 장벽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소시적의 Fates Warning 마냥 터지는 맛도 없고 감상적인 발라드 같은 것도 없는 이 밴드의 기복 없는 스타일은 그런 무채색의 보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럼에도 앨범은 꽤 단단한 음악을 품고 있다. 밴드가 이후 보여주는 재즈퓨전의 색채 등은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이지만 그만큼 ‘파워메탈’로서의 면모는 명확했던 시절이었고, 그러면서도 대위법적인 리프와 트윈 기타의 하모니(에 적당히 섞어주는 어쿠스틱)를 통해 나름의 극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Census of Stars’나 ‘Madness Endeavor’ 같은 곡이 그런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데, 정말 레이블이 신경 안 써준 듯한 적당히 비어 있는 레코딩만 아니었다면 좀 더 풍성한 사운드가 되었을 것이다. 솔직히 ‘Are First Loves Forgotten?’은 내용도 좀 깨고 곡도 좀 더 간결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그게 맘대로 됐으면 이 밴드가 지금 자리에 있을 리가 있겠나. 장르의 매력만큼은 확실하게 보여주니 이로써 만족할 뿐이다.

[Century Media, 1996]

Clarent Blade “Return Into Forever”

Spectral Lore의 Ayloss는 Spectral Lore 말고도 이름 바꿔가면서 다양한 원맨 프로젝트들을 돌려가는 점으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인상적인 결과물을들 꾸준하게 내놓고 있고, 예전 같으면 그런 게 있다더라 하는 카더라만 분분했을 법한 음원들이 이제는 인터넷과 밴드캠프의 힘을 빌어 꽤 쉽게 구해 들어볼 수 있게 되었다. Spectral Lore의 팬을 자처하는 이로서 이런 사이드 프로젝트들은 Ayloss가 어떤 음악들을 들었고 좋아했으며 Spectral Lore의 음악에 어떤 모습들이 녹아들어갔을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가 되고, 뮤지션 본인도 나름 퀄리티에 만족했는지 거의 대부분을 CD화해서 꽤 합리적인 가격으로 팔고 있는지라 모으는 입장에서는 돈 쓰면서도 흐뭇하다. 그런 면에서 바야흐로 고환율시대.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메탈 팬이라면 Spectral Lore의 사이드 프로젝트들 컬렉션을 강력하게 권해 보는데… 하긴 일단 Spectral Lore부터 한 장 사서 들어보라고 말하는 게 먼저일 것 같기는 하다. 각설하고.

Clarent Blade는 누가 그리스 메탈 뮤지션 아니랠까봐 Manilla Road풍 에픽 메탈을 연주하는 프로젝트이다. 차이가 있다면 에픽 메탈이 대개 Manilla Road가 등장하기 이전의 헤비메탈이나 그 이전의 하드록, 개러지 록, 블루스는 물론이고 이후의 스래쉬메탈이나 USPM 등 다양한 스타일들을 빨아들이는 형태를 보여준다는 점인데, 블랙메탈 뮤지션의 프로젝트이기도 하고 시절이 2010년인 것도 그렇고 일반적인 에픽 메탈보다는 좀 더 화끈한 구석이 있다. 질주감 있지만 막상 따져보면 그리 빠르지는 않은 템포의 리프와 경쾌한 드러밍, 비중은 크지 않지만 어두운 분위기 가운데 청량하게 다가오는 신서사이저 연주 등은… 솔직히 이 정도면 보컬만 참아낼 수 있다면 멜로딕 스피드메탈 팬도 참고 들을 수 있지 않겠나 싶다.

다만… Ayloss의 클린 보컬을 아무래도 멜로딕 스피드메탈 팬이 참아줄 거 같진 않다. 사실 최고의 단점은 이 앨범을 듣고 Spectral Lore에서 왜 클린 보컬이 안 나오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거 같다는 점이 아닐까. 또 앨범이 나온다면 힘있는 파워메탈 보컬 한 분 데려다가 같이 했으면 좋겠다.

[Self-financed, 2012]

Spectral Lore “Sentinel”

바야흐로 Spectral Lore의 본격적인 출세작? 물론 절대 잘 팔릴 리 없어보이는 음악을 하고 있고 Ayloss 본인도 내가 대체 언제 출세를 했는지 반문할 법하지만 그래도 이제 나름 블랙메탈 열심히 찾아듣는다는 이들은 대충 알 만하고 이 동방의 어느 아재도 전작 컬렉션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허나 그게 쉽지 않다. 이 점을 봐서라도 Donald Trump는 저주받아야 한다고 이 아재 외쳐본다) 이쯤되면 수많은 골방 밴드들이 범람하는 21세기의 세계 블랙메탈의 무대에서 비교적 현실가능성 있으면서 본받을 만한 사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Deathspell Omega 정도로 뜨기란 아마 개인의 역량을 넘어선 문제일 것이고… 사실 Deathspell Omega도 본인들이 출세했다는 생각은 아마 안 할 것 같으므로 그렇다면 좀 더 가능성 있어보이는 Spectral Lore의 노선을 참고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얘기다. 물론 남 얘기니까 이렇게 과감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니 이 얘기는 이쯤하고.

원래 Blut aus Nord를 떠올릴 법한 구석이 있는 퍽 난해한 류의 블랙메탈 밴드는 이 앨범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우주적인’ 색채를 더하면서 어쨌든 Deathspell Omega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복잡하게 뒤틀린 리프를 앰비언트 연주와 리버브 짙게 깔린 자욱한 분위기를 엮어낸다. 사실 우주적이면서도 앰비언트풍의 사운드를 풀어내는 블랙메탈이라면 반복적인 연주를 통한 사이키한 분위기를 구현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라면(여기에는 아마 Darkspace의 죄가 크리라 본다) 그 Deathspell Omega스러운 리프와 변화가 심하지만 대체로 공격적인 리듬 패턴에 힘입은 역동적인 전개가 있다. ‘The Coming of Age’ 처럼 템포를 조절하며 나름의 그루브를 보여주는 곡도 있지만 생각보다 풍성한 심포닉과 함께 고조되는 분위기를 폭발시키는 면모가 결국 이 밴드의 최대 강점일 것이고, 따지고 보면 이 진입 장벽 높은 스타일을 굳이 찾아듣게 하는 부분이지 아닐까 싶다.

그리고 ‘Atlus (A World Within a World)’. 사실 이런 곡을 대개의 블랙메탈 팬들은 듣기 힘들어하겠지만 블랙메탈식 잼 세션에 어우러지는 우주적인 다크 앰비언트는 과장 좀 섞으면 Cold Meat Industry의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다. 리버브 잔뜩 먹은 다크 앰비언트를 들어보고 싶지만 차마 Deutsch Nepal에는 손이 가지 않는 이에게 차선책으로도 유용할 것이다. 정말 멋진 앨범이다.

[Stella Auditorium Prod.,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