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tral Lore “Sentinel”

바야흐로 Spectral Lore의 본격적인 출세작? 물론 절대 잘 팔릴 리 없어보이는 음악을 하고 있고 Ayloss 본인도 내가 대체 언제 출세를 했는지 반문할 법하지만 그래도 이제 나름 블랙메탈 열심히 찾아듣는다는 이들은 대충 알 만하고 이 동방의 어느 아재도 전작 컬렉션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허나 그게 쉽지 않다. 이 점을 봐서라도 Donald Trump는 저주받아야 한다고 이 아재 외쳐본다) 이쯤되면 수많은 골방 밴드들이 범람하는 21세기의 세계 블랙메탈의 무대에서 비교적 현실가능성 있으면서 본받을 만한 사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Deathspell Omega 정도로 뜨기란 아마 개인의 역량을 넘어선 문제일 것이고… 사실 Deathspell Omega도 본인들이 출세했다는 생각은 아마 안 할 것 같으므로 그렇다면 좀 더 가능성 있어보이는 Spectral Lore의 노선을 참고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얘기다. 물론 남 얘기니까 이렇게 과감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니 이 얘기는 이쯤하고.

원래 Blut aus Nord를 떠올릴 법한 구석이 있는 퍽 난해한 류의 블랙메탈 밴드는 이 앨범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우주적인’ 색채를 더하면서 어쨌든 Deathspell Omega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복잡하게 뒤틀린 리프를 앰비언트 연주와 리버브 짙게 깔린 자욱한 분위기를 엮어낸다. 사실 우주적이면서도 앰비언트풍의 사운드를 풀어내는 블랙메탈이라면 반복적인 연주를 통한 사이키한 분위기를 구현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라면(여기에는 아마 Darkspace의 죄가 크리라 본다) 그 Deathspell Omega스러운 리프와 변화가 심하지만 대체로 공격적인 리듬 패턴에 힘입은 역동적인 전개가 있다. ‘The Coming of Age’ 처럼 템포를 조절하며 나름의 그루브를 보여주는 곡도 있지만 생각보다 풍성한 심포닉과 함께 고조되는 분위기를 폭발시키는 면모가 결국 이 밴드의 최대 강점일 것이고, 따지고 보면 이 진입 장벽 높은 스타일을 굳이 찾아듣게 하는 부분이지 아닐까 싶다.

그리고 ‘Atlus (A World Within a World)’. 사실 이런 곡을 대개의 블랙메탈 팬들은 듣기 힘들어하겠지만 블랙메탈식 잼 세션에 어우러지는 우주적인 다크 앰비언트는 과장 좀 섞으면 Cold Meat Industry의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다. 리버브 잔뜩 먹은 다크 앰비언트를 들어보고 싶지만 차마 Deutsch Nepal에는 손이 가지 않는 이에게 차선책으로도 유용할 것이다. 정말 멋진 앨범이다.

[Stella Auditorium Prod., 2012]

Kult ov Azazel / Humanicide / Obitus / Thylord “Gather Against Humanity”

Christcrusher Prod.는 나름 열심히 모았던 레이블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거에 비하면 아는 게 별로 없다. 더 알아볼래도 나오는 것도 거의 없거니와 하긴 이미 망한지도 한참 지나버린 이 영국 블랙메탈 골방 레이블을 알아보려는 이는 더욱 없겠거니 싶다. 그래도 예전에 레이블 사장이던 Herr Chemosh가 어느 인터뷰에서 자기는 CD나 테이프로 정식발매했다 품절된 음원은 재발매를 할 생각이 없다고 했던지라… 굳이 이 레이블 발매작을 부득불 찾아듣겠다는 이라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 레이블 발매작들 중에서 그래도 제일 자주 보이고 제일 저렴하며 제일 퀄리티 좋은 한 장을 고른다면 이 스플릿이 아닌가 싶다. 아이러니하게 카탈로그 넘버 1번 발매작인지라 이렇게 얘기하면 첫끝발이 그냥 다였던 레이블이랄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이후에 Toroidh나 Darkest Hate의 앨범을 내놓기도 했으니 그렇게 말한다면 좀 박하지 싶다. 어쨌든 이 스플릿의 4밴드 중 절반은 이 앨범 이후에도 스스로 살아남아 활동을 이어갔으니 어쨌든 이 레이블 로스터 중에서는 가장 검증된 이름들이었다고 해도 크게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그 중 고른다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위 ‘fast-black’ 스타일을 25년 전부터 연주하던, 4밴드 중 가장 웰메이드이지만 가장 평범한 Kult ov Azazel보다는 살짝 섞여들어간 인더스트리얼(달리 말하면 ‘뿅뿅거림’)이 취향을 탈지언정 좀 더 멜로딕한 면모가 돋보이는 Obitus(특히 ‘A Day of Gloom’)가 비교적 돋보이는 편이다. 사실 펑크풍이 과하다 못해 간혹 좀 허접하게 들리는 Humanicide만 뺀다면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B/C급 블랙메탈에 익숙해져 있는 이라면 전반적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나는 그런 편이다.

[Christcrusher Prod., 2001]

Ezra Brooks / Serpent Rider “Visions of Esoteric Splendor”

Serpent Rider는 그래도 이름이 익숙하지만 버번 위스키 이름을 여보라는 듯 박아넣은 Ezra Brooks의 당황스러운 네이밍 센스와 이와 상반될 정도로 멋지구리한 커버가 구매욕을 자극하는 두 밴드의 스플릿. 하지만 찾아보니 Ezra Brooks도 에픽 메탈을 열심히 찾아듣는 이라면 생소한 이름은 아니라고 하니 나름 No Remorse가 야심차게 내놓은 스플릿이라고 할 수 있겠다(그래서인지 월마트에서도 팔고 있더라. 어떻게 납품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니 익스트림메탈이 아닌 헤비메탈 쪽에서 스플릿 앨범을 구하는 것도 나로서는 되게 오랜만이다.

Ezra Brooks는 그런 레이블의 기대에 부응하듯 이름과 달리 술 냄새는 딱히 나지 않지만 꽤나 인상적인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The Helm of Sacorb’ 같은 곡명에서부터 드러나듯 Manilla Road나 Brocas Helm을 떠올릴 만한 스타일인데, Brocas Helm이 나쁘게 얘기하면 뒤죽박죽일 정도로 다양한 스타일들을 Hawkwind풍 사이키델릭 아래 헤비메탈 리프를 바탕으로 풀어낸다면 Ezra Brooks는 좀 더 현대적으로 다듬어진 듯한 인상을 준다. ‘When the Future Fails’는 과장 좀 섞으면 “Awaken the Guardian” 시절의 Fates Warning이 SF에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 풀어낸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구석도 있다. 물론 보컬은 John Arch와 판이한 스타일이지만 말이다.

Serpent Rider는 Drawn and Quartered 출신 멤버들이 주축이 된 밴드지만 데스메탈과는 분명 거리가 있고, 역시 Manilla Road를 떠올릴 수밖에 없지만 Varathron의 커버곡이 보여주듯 은근한 그리스풍이 묻어난다는 점에서는 Ezra Brooks와 확실히 차이가 있다. 그런 면에서는 SF보다는 차라리 Doomsword처럼 전사들 대검 휘두르는 류의 에픽메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메탈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별 기교 없이 단정하게 불러주는 여성보컬이 꽤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묵직한 연주와는 겉도는 감이 있지만 신비로운 분위기와는 오히려 어울리는 편인데, 그렇게 보면 역시 Lordian Guard 얘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물론 Lordian Guard의 처음 듣는 이라면 절대 잊지 못할 무시무시한 싼티와는 다르니 너무 걱정할 필요까진 없겠지만.

[No Remorse, 2021]

Judas Priest “Defenders of the Faith”

“Hail to England” 얘기 나온 김에 1984년작 한 장 더. “Hail to England” 때문에 흔히 생기곤 하는 오해지만 Manowar는 – 멤버들이 어쨌든 영국에서 연을 맺긴 했을지언정 – 뉴욕 출신의 미국 밴드였다. 물론 미국보다는 유럽에서 훨씬 인기가 많았고, 멀리 갈 것도 없이 “Kings of Metal”쯤 되면 자기들 앨범명을 나열하면서 잉글랜드만이 아니라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에 거의 유럽일주 수준으로 메탈의 형제국들을 언급하는 수준이지만 끝끝내 미국 얘기는 하질 않는다. 말하자면 Manowar를 당연히 영국 밴드라고 착각한다고 해도 그건 청자만의 잘못은 아무래도 아닐 거라는 얘긴데, 어쨌든 엄연히 미국 밴드인 Manowar에게 당대 영국 헤비메탈의 맹주 자리를 줄 수는 없어 보인다.

그럼 1984년의 시점에서 영국 헤비메탈의 맹주를 따진다면 2026년에 그게 무슨 무의미한 질문이냐? 라는 게 상식적인 대답이겠지만 어쨌든 질문자의 마음을 헤아려 성의있게 답을 찾아본다면 수많은 유력 후보군에도 불구하고 사견으로는 “Defenders of the Faith”를 내놓은 Judas Priest가 아닐까 싶다. “Screaming for Vengeance”에서 밴드는 차트와 비평을 막론하고 이미 충분해 보일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Freewheel Burning’부터 기존에 보여준 속도와 공격성이 오히려 업그레이드됐음을 보여준데다, Judas Priest의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강렬한 순간들 중 하나임에 분명해 보이는 ‘The Sentinel’ 등은 ‘헤비메탈 밴드’로서 진일보한 Judas Priest의 모습을 보여준다. ‘Night Comes Down’이 김빠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Beyond the Realms of Death’ 정도를 제외하면 밴드의 비교적 느긋한 템포의 곡들 중 이보다 낫다고 할 만한 것도 별로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 앨범의 돋보이는 점은 80년대 Judas Priest의 어느 앨범보다도 밴드 초창기의 어두운 분위기를 담아낸 면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녹음부터가 그렇지만 ‘Some Heads Are Gonna Roll’, ‘Night Comes Down’, ‘Love Bites’ 같은 곡들은 “Stained Class” 이후 밴드의 어느 앨범에도 들어가기 어려울 곡이라고 생각한다. Dave Holland보다도 좀 더 묵직하게 연주할 수 있는 드러머가 있었다면 Judas Priest의 메탈 맹주 자리는 좀 더 확고하지 않았을까?
하긴 더 올라갈 데도 없는 밴드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좀 웃기다. 그저 1984년 최고의 메탈 앨범이다 정도로 하는 게 깔끔할 것이다.

[Columbia, 1984]

Manowar “Hail to England”

지난 26일에 Ross the Boss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기에 간만에. 솔직히 Conan the Barbarian 컨셉트를 가장 멍청한 형태로 구현해내는 마초 메탈 밴드의 이미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밴드처럼 여겨지는 편이어서인지 이 밴드를 좋아한다고 자신있게 밝히는 이들은 메탈헤드 중에서도 별로 본 적이 없는 편이다. 따지고 보면 이미 Judas Priest 같은 선배들이 장르의 모범을 보여준 이후에도 헤비메탈보다는 하드록에 가까운 음악을 들고 데뷔한 밴드인만큼 장르의 역사에 비추어도 선구적이었다라기엔 많이 부족할 것이고, 저 근육 마초의 이미지마저 이미 Heavy Load가 이들보다 앞서 좀 더 있어보이는 형태로 보여주었으며, 싼티나는 마초맨의 모습이라면 이들보다는 역시 커리어 전체를 싼티로 휘감고 있는 Thor 같은 사례가 떠오르니 Manowar는 어쨌든 어떤 면에서건 선두주자였다기엔 2% 부족해 보이는 편이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인기야 물론 많았지만) 하드록 색채 덕에 근육만 키웠지 힘은 별로 없어보였던 2집까지의 모습을 일신하고 이 “Hail to England”에서 밴드는 비로소 힘이라면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어보이는 강력한 밴드로 거듭난다. 간결하지만 때로는 Iron Maiden이 연상될 정도로 탄력 있는 리듬감에 실린 강력한 리프가 돋보이고, 그러면서도 때로는 초창기 스래쉬메탈의 공격성을 보여주기도 하며(‘Kill with Power’), Heavy Load가 소시적에 보여준 극적인 구성을 좀 더 어두운 전개로 재현하기도 한다(‘Bridge of Death’).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선동적인 톤으로 불러주는 ‘metal makes us strong’ 같은 가사를 듣고서 외출하면서 바지 입는 걸 깜박하고 나온 듯한 화끈거림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훗날 트루 메탈을 외치는 수많은 고집불통 메탈헤드들의 세뇌의 근원 어느 한켠에는 Manowar의 기여가 있다는 점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양심상 좋은 곡이란 말은 못하겠지만 ‘Black Arrows’. 밴드를 상징하는 모습 중 하나인 Joey DeMaio의 베이스 솔로는 물론이거니와 서두의 ‘Let each note I now play be a black arrow of death, sent straight to the hearts of all those who play false metal’이란 외침은… 80년대 메탈 역사의 가장 코믹하면서도 상징적인 어느 한 순간임이 분명할 것이다.

[Music for Nations,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