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k(NOR) “Monolitt”

보면 Darkthrone의 앨범을 냈던 본가라서 그런가… Peaceville을 Darkthrone풍 블랙메탈 스타일의 레이블로 기억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간혹 Darkthrone 스타일을 훌륭하게 따라가는 후대의 밴드들을 잊을만하면 내놓는 곳도 또 Peaceville이라서 어쨌든 이 레이블을 얘기하매 블랙메탈을 떼어놓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그렇게 Mork는 이제 거의 10년을 Peaceville 로스터에 몸담고 있는 거물 블랙메탈 밴드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Mork와 Darkthrone의 닮은 부분을 더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둘 다 밴드이긴 하지만 결국은 Thomas Eriksen과 Fenriz의 원맨 프로젝트에 가까운 형태의 밴드이고, 블랙메탈을 하고 있긴 하지만 정작 뮤지션 본인은 블랙메탈 말고 다른 음악에 꽤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 등. 그러니까 후대의 밴드답게 음질이 훨씬 좋아졌고(달리 말하면 Darkthrone의 헝그리함에 비해서는 돈 바른 티 확실히 나고) 음악 말고 다른 뻘짓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 말고는 Darkthrone의 레거시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는 밴드들 중 선두주자 격이라고 해도 그리 틀리진 않아 보인다.

그래도 적어도 “Dypet”부터는 “Transylvanian Hunger” 스타일을 이어나가되 Master’s Hammer가 소시적에 그랬던 것처럼 이런저런 나름의 개성들을 더해나가고 있고, “Monolitt”에서도 그런 식의 방향성만큼은 여전하다. 아예 이거저거 다양하게 좀 해보겠다는 포부라도 있는 듯 Asgeir Mickelson을 드러머로 영입하고 그 본전을 뽑겠다는 듯 Slayer풍 스래쉬 리프와 그루브를 던져주는 ‘Under Vekten Av Verden’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텐데, ‘Ødelagt’ 후반의 둠적인 면모도 있는 침잠하는 분위기도 (좋다기보다는)흥미롭게 다가오고, Asgeir의 트리키한 심벌즈 플레이 덕분인지 복잡해진 드러밍에 실린 멜로딕 블랙메탈 사운드에서는 Mgla같은 밴드를 떠올리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결국 Darkthrone의 후예인 만큼 나 같은 청자는 결국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짙은 흔적을 찾아다닐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앨범의 백미는 단연 ‘Martyr’라고 생각한다. 밴드 로고까지 지워버린 단촐한 커버에 걸맞게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로만 승부하면서 예전의 그것에 비해서는 좀 더 돈맛 나는 사운드를 들을 일은 그리 흔치만은 않아 보인다. 말하자면 Darkthrone이 90년대 초중반의 그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거친 맛을 버리지만 않는 한도에서 레코딩에 돈을 발랐다면 나올 만한 음악이랄까? 꽤나 즐겁게 들었다.

[Peaceville, 2026]

Neptrecus “Ars Gallica”

Neptrecus는 꽤 재미있는 밴드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출신이지만 보통 프랑스 출신 밴드들이 보여주던 사운드보다는 퀘벡 밴드들의 조금은 호전적이면서도 웅장한 기운을 북돋우는 스타일에 가깝고,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pagan’한 기운을 담은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부류를 의식한 음악이지만(굳이 비교하자면 Satyricon) 역동적인 드럼에 힘입어 극적인 전개를 이끌어내는 스타일이다. pagan을 의식한 만큼 어느 정도는 Primordial 같은 밴드를 연상케 하는 어쿠스틱도 곁들이고, 행진곡풍의 멜로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흘러간 시절의 영광을 노래하는 류의 블랙메탈을 연주하는 밴드라고 할 수 있겠다.

흥미로운 점은 다채로운 리프보다는 반복되는 트레몰로 리프를 이용해 나름의 모티브를 명확히 제시하면서 어쿠스틱 간주나 리듬의 전환을 통해 다이내믹을 얻어내는 스타일인데, 솔로잉만큼은 블랙메탈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화려한 구석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Soyons terribles pour dispenser le peuple de l’être’의 태핑까지 이어지는 화려한 솔로잉은 Dimmu Borgir 같은 장르의 슈퍼스타의 앨범이 아니라면 찾아보기 어려울 모습인데, 그렇다고 그저 곡을 화려하게 만들기 위한 장식은 아니고 솔로잉을 통해 조금은 희미할 수 있는 멜로디라인을 명확히 하면서 나름의 개성을 찾으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다만… 그런 탓인지 ‘Fidelitas’처럼 인상적인 곡이 있는 반면 ‘Notre Berceau’처럼 평범한 곡도 있고, 밴드가 취한 노선이 기복 없이 고르게 앨범을 만들기는 쉽지 않은 방식이 아닌가(말하자면 솔로가 구리면 곡이 같이 구려지는 면이 없지 않다) 하는 생각이 든다. Svarga가 블랙메탈 보컬로서의 역량을 떠나서 노래를 그리 잘 하는 보컬리스트는 아니라는 사실도 아쉽다면 아쉽다. 하긴 그게 아니었다면 이런 음악을 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 하지만 뭐 그렇다.

[Purity Through Fire, 2019]

Kaevum “Ultra”

최근의 별 중요한 의미까지는 없을 소식 중 하나는 Darker than Black 레코드의 온라인 샵이 영업을 종료한다는 이야기였다. 공식적으로야 정치성과 무관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지만 애초에 Absurd의 앨범을 내기 위해 만들어졌고 Kristallnacht 등의 밴드들을 내놓은 레이블이 NS와 무관하다는 얘기를 믿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고 덕분에 중간중간 레이블 자체가 돌아가지 않았던 기간도 길었지만 꾸준하게 살아남은 이 악명높은 레이블이 어렵다는 소식이… 내 입장에서 아쉬울 이유야 전혀 없겠지만, 소위 ‘정통적인’ 형태의 블랙메탈이 나름의 자생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방증처럼 보이기도 해서 그것만큼은 좀 그렇다. 그러고 보니 No Colours도 아직 2026년에 앨범을 낸 적 자체가 없구나.

어쨌든 이 악명 높은 레이블의 발매작들 중 그래도 (역사적인 의미 같은 거 말고)뛰어난 음악을 담고 있었던 결과물이었다면 이 Kaevum의 앨범들이 마지막이 아니었는가 싶다. 90년대 중반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차갑지만 웅장한 리프를 솜씨 좋게 재현하고 있지만 “Kultur”까지의 밴드가 보여준 것보다 좀 더 뚜렷해진 멜로디와, 이쪽 앨범들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명확한 베이스가 받쳐주는 묵직한 사운드, 블랙메탈 보컬로서는 보기 드물게 연극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모습들은 때로는 Arckacum의 가장 극적이던 시절을 연상케 하는 면도 있다. 특히나 ‘Rottefangeren’은 어떻게 보면 잔재주 없이 거칠고 단조롭게 밀어붙이는 이 음악이 청자에게 어떻게 감정을 고양시키는지, 어떻게 그 시절 블랙메탈 특유의 ‘야만적인’ 분위기를 그려내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레이블 발매작들이 대개는 수준 이하의 음악으로 나름의 ‘정치적 위험성’을 떨어뜨린다면(그런 음악으로는 그 누구도 설득하지 못할지어다) Kaevum은 그런 의미에서 좀 더 ‘위험한’ 사례일 것이다. 그래도 전쟁 만세의 분위기보다는 지난 날의 향수에 호소하는 부류로 보이는만큼 그래도 좀 덜하려나? 하지만 이런 걸 들을 때는 가사야 안 들리지만 어쨌든 정신줄 다잡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음악이다.

[Darker than Black, 2025]

Verdunkeln “Weder Licht noch Schatten”

한때 가장 주목받는 독일 블랙메탈의 신성… 이었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Verdunkeln은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Einblick in den Qualenfall” 덕분에 The Ruins of Beverast와 더불어 독일 블랙메탈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이름들 중 하나였다. “Hvis Lyset Tar Oss” 시절 Burzum의 스타일에 터잡은 블랙메탈은 정말 널리고 널렸지만 이들만큼 나름의 방식으로 그 전형을 뒤튼 음악을 들려준 사례는 그리 흔치 않았고, 리버브 잔뜩 낀 드럼에서 Skepticism에 가까울 정도의 최면적인 묵직함까지 풍겨내는 면모는 이들을 독일 블랙메탈의 손꼽히는 이름들 중에 끼워넣기 충분해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까지 밴드의 마지막 작품인 이 앨범은 기대만큼은 분명 아니었다. 인상적인 코러스와 일견 사이키하면서도 분명한 멜로디라인은 여전하지만, 뭔가 영국 고쓰나 포스트펑크를 너무 많이 들었는지 묘한 그루브와 때로는 Ian Curtis 생각도 나는 클린 보컬까지 보여주는 Gnarl의 모습은 블랙메탈의 전형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다. 말하자면 동시대 ‘depressive’ 스타일과 일견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그 땅 꺼지는 분위기는 걷어내고 오히려 낭만성을 앞세우면서 클린 보컬을 통해 이를 강조하는 류라고 할 수 있겠는데(그런 면에서는 Urfaust 같은 밴드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극적인 전개보다는 일관된 분위기에 집중하는만큼 이걸 재미없다고 생각할 이도 은근 많을 것 같다. 리프만큼은 여전히 헤비하긴 하지만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블랙메탈의 전형에서 벗어난 사례라고 할 수 있어 보인다. ‘Des Antlitz der Himmels’의 왈츠 리듬은… 좋게 얘기하면 독일 밴드다운 개성이겠지만 조금은 당혹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다음 앨범을 만나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잘하던 거로 계속 했으면 좋겠다.

[Ván, 2012]

Agriculture “The Spiritual Sound”

여기 블랙메탈 블로그였는데 요새 이상하다는 주변의 평(이라기보다는 잡설)이 많아져서 한동안은 블랙메탈 위주로 업데이트를 해 볼까 한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해 놓고 올리는 밴드가 Agriculture라니 시작부터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긴 2018년 시작 이래 이 블로그가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이미 처음부터 뭔가 잘못돼 있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르지만 그게 적어도 내 스스로 할 말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각설하고.

이 LA 출신 ‘블랙메탈’ 밴드의 2025년작은 작년에 최고의 블랙메탈 발매작 중 하나라는 얘기를 많이 듣기도 했고 사실 이 밴드가 데뷔작 이래 평이 안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는 듯하지만 Liturgy를 위시한 이 동네 출신의 어그로 만렙 밴드들의 앨범들을 그리 즐기는 편은 못 되는 나로서는 그런 반응들을 쉬이 믿을 수 없다. 사실 밴드명을 Agriculture라고 짓고 영향받은 뮤지션은 Bob Dylan이나 Lou Reed를 언급하는 ‘ecstatic black metal’ 밴드야말로 진정 어그로의 첨단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얘기가 아닐까 싶다. 블랙메탈의 요소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 밴드의 음악을 블랙메탈이라 하는 건 장르의 통상에 익숙한 이로서는 그리 적절한 소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블랙게이즈, 하드코어, 스크리모, 노이즈 등 다양한 면모들이 블랙메탈보다는 포스트록의 흐름에서 나열되는데, 이 ‘흐름’의 시작점을 포함한 주요 지점들에 블랙메탈의 요소들을 배치한다는 게 Agriculture의 특징이랄까? 그래도 ‘Flea’나 ‘Dan’s Love Song’ 같은 곡의 노골적인 Projekt 레이블 스타일 슈게이징 무드와 ‘Hallelujah’ 같은 곡의 포크 바이브가 그런 흐름에 어울리는 청자에게 당혹스러움을 던져주고, 비교적 격렬한 앨범의 전반부에 비해 좀 더 감상적이지만 폭발적인 맛(특히 ‘The Reply’)을 보여주는 후반부는 그렇게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던 청자에게 그래도 메탈 앨범이라면 이런 거 하나는 있어야지 하는 듯 인상적인 마무리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Liturgy를 앞에서 언급하긴 했지만 솔직히 그 난삽함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나로서는 Agriculture 쪽이 훨씬 낫게 들린다. ‘Bodhidharma’의 솔로잉은… 잠깐이지만 Tom Morello가 미친 척하고 블랙게이즈를 연주한다면 이런 걸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굳이 블랙메탈 앨범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면 듣는 재미를 찾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The Flenser,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