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us Magorum “Opus Magorum”

Opus Magorum은 처음 들어본다. metal-archives에 따르면 2001년부터 활동했으니 블랙메탈의 1세대는 아닐지라도 이제 오랜 경력의 밴드임은 분명한데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니 아 난 그동안 뭐 들은 거지… 싶으면서도 그리스의 Moonblood를 꿈꿨는지 데모로만 점철되어 있으며 백장씩만 찍어냈다는(게다가 지금 이 데모의 오리지널은 60장만 찍어냈단다. 그냥 주변에만 뿌린 셈이다) 디스코그래피를 보매 그래 이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았겠냐? 하며 자연스레 합리화가 된다. 이런 걸 제때 돈 주고 샀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간다.

그래도 그리스 블랙메탈에서는 아는 사람은 아는 거물급이고 Kawir나 Ithaqua 같은 그리스 출신의 나름 묵직한 이름들과 교류했다고는 하지만 음악은 사실 그리스 특유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 Darkthrone과 Gorgoroth의 그림자가 고루 느껴지는 류의 전형적인 노르웨이풍 블랙메탈인데, 그래도 북구의 찬바람에는 관심이 없어서인지 그리 휘몰아치는 사운드는 아니고, (느리지는 않지만)이런 류의 블랙메탈치고는 꽤 여유 있는 템포로 몰아치기보다는 분위기에 주력하는 스타일이다. 덕분에 블랙메탈 데모 특유의 듣기 피곤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멜로디도 꽤 뚜렷하고, ‘Impalers Woods’나 ‘Journey of the Psychonaut’ 같은 곡은 과장 섞으면 그 시절 Darkthrone 같은 밴드를 굳이 왜 찾아듣는지에 대한 답을 단적으로 제시하는 듯한 비장한 멜로디를 들려준다.

오리지널이야 본 적도 없고 Inferna Profundus에서 2022년에 재발매를 했는데, 200장밖에 안 찍었다고 하나 아직도 여기저기 잘 보이므로(하긴 이쪽 장르에서 200장은 꼭 적은 숫자가 아니다) 관심있는 분은 늦기 전에 일청을 권해본다.

[Self-financed, 2013]

Caligula’s Horse “Bloom”

최근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들 중에서 가장 눈여겨볼 사례라는 식으로 소개받았기 때문인지 이 밴드의 음악이 귀에 들어오는 데는 생각보다 꽤 시간이 걸렸다. 이 앨범이 처음 접한 Caligula’s Horse의 앨범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좀 의외일 수도 있는데, 앨범에 붙어 있던 스티커에 Opeth, Haken, Porcupine Tree, Karnivool, Riverside의 팬에게 권한다고 붙어 있으니 이 밴드를 그저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라 소개하면 많이 곤란하다는 걸 그 때 짐작했어야 했다. 음악을 몇 년을 들었는데 이 정도에 낚이면 하 곤란하다.

그렇다고 음악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고, 사실 음악을 이루는 요소들을 뜯어보면 꽤 묵직하고 테크니컬한 리프를 가지고 있고, 대개는 그렇지 않지만 가끔은 Meshuggah풍까지 보여주기도 하며, 전형적인 메탈 보컬은 아니지만 Tool을 의식하지 않았을까 싶은(그리고 이 밴드를 왜 Porcupine Tree와 비교하는지를 알 수 있는) Jim Gray의 보컬은 이 밴드를 들어 메탈 밴드라 하더라도 고개를 저을 수는 없도록 한다. 말하자면 Caligula’s Horse가 보여주는 가장 개성적인 지점들 중 하나는 그런 요소들을 무척이나 매끄럽게 풀어가서 듣는 이로 하여금 이 앨범이 사실은 잘 들어 보면 꽤 역동적인 스타일이라는 사실을 까먹게 한다는 점이다.

그래도 앨범에서 가장 빛나는 곡들은 좀 더 묵직하고 공격적인 ‘Marigold’나 ‘Rust’라고 생각한다. Tessaract가 Moon Safari를 듣고 감명깊어 만들었을 법한 스타일이라고 하면 좀 과장이겠으나 그래도 Leprous의 가장 팝적인 시간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밴드의 팬들은 이런 곡들보다는 ‘Firelight’나… Pain of Salvation이 문득 떠오르는 전개의 ‘Daughter of the Mountain’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지만… 여기는 어쨌든 어느 메탈바보의 블로그인 만큼 그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가시라.

[Inside Out, 2015]

Will ‘O’ Wisp “Kosmo”

Will ‘O’ Wisp는 이탈리아 출신의 프로그레시브 데스 밴드이다. 사실 그리 유명하진 않고… 그나마 잘 알려진 멤버는 드럼을 맡고 있는 Oinos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뭔 소린가 싶겠지만 Sadist의 멤버이자 국내에도 라이센스되었던 Node에서 드럼을 맡고 있으니 이만하면 충분히 네임드임은 분명해 보인다. 거기다 덧붙인다면 베이스는 국내에도 데뷔작인 “No Waste of Flesh”가 소개되었던(그리고 물론 다들 관심이 없었던) 브루털 밴드 Antropofagus의 Jacopo Rossi가 그나마 알려진 인물이겠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이 쯤 되면 무명에 가깝다. 이 앨범을 구한 나로서도 미국의 Willow Wisp와 잠시 헷갈렸었는데… 이 정도 심포닉이면 2류인가 3류인가가 고민될 지경의 음악을 들려주었던 Willow Wisp와 비교되는 건 밴드 입장에서는 좋은 얘기가 아닐 테니 이쯤에서 넘어간다.

그럼 이 소개부터 헝그리한 밴드의 음악은 어떠한가? Oinos가 있다는 것도 그렇고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데스 밴드인만큼 Sadist와의 비교는 피할 수 없겠지만, “Season in Silence” 같은 앨범에서의 Sadist보다는 좀 덜 재즈적이고, 고풍스러운 스타일의 일렉트로닉을 도입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재즈적 어프로치가 Illogicist나 Gory Blister, Sadist같은 이탈리아의 다른 밴드들이 적극적으로 써먹던 방식이었다면 이들은 확실히 엇나가고 있는 편이다. 게다가 일렉트로닉스는 리프의 뒤에서 버티고 있으면서 퍽 국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간혹 등장하는 여성보컬과 역시나 에스닉한 신서사이저는 소시적의 Orphaned Land나 Betray My Secrets 같은 밴드를 연상케 하는 면도 있다. 말하자면 재즈적 리듬감과 그에 맞춰진 복잡한 리프로 무장한 대개의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데스 밴드들보다는 좀 더 여유 있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Going Back(My Samsara)’이라 생각한다. 간혹 과하게 댄서블하긴 하지만 프로그레시브 록에 가까울 구성까지 엿보이는 여유로운 전개는 Sadist류의 스타일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습은 아마 아닐 것이다.

다만…. 저 댄서블함을 쉬이 감당할 만한 데스메탈 팬은 그리 많지 않지 않을까 짐작도 들고, 때로는 당혹스러운 앰비언트풍을 보여주는 모습은 이 밴드가 하고 싶은 게 많았다는 증거가 될지 모르나 다소 난삽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Six Forms of Existence’ 나 ‘A Place of Rebirth’ 같은 인상적인 곡이 있으니 못 들어보셨다면 한번쯤은 기회를 줘봐도 좋을지도.

[Nadir Music, 2012]

Elder “Through Zero”

그래도 스토너 팬들에게는 유명을 넘어 현재 장르 최고의 밴드들 중 하나라고까지 얘기되는 밴드라지만 스토너라면 일단 색안경을 끼는 취향인지라 이 밴드를 접하게 된 건 나로서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나마 Elder라는 밴드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장르의 전형을 넘어 70년대 프로그의 향기와 인디 록, 스토너의 그림자가 드리운 둠 메탈이 흥미롭게 어우러지는 “Omens”가 계기였고, “Innate Passage”는 아마 일반적인 스토너 팬이라면 이거 왜 터지는 맛이 없냐고 고개를 갸웃거렸을지도 모르겠으나 원래 스토너에 별 정이 없고 오히려 프로그다운 웅장함을 엿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결국 Elder라는 밴드가 현재 걷고 있는 방향은 앨범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을지언정 프로그레시브 록(특히 크라우트록) 스타일을 역력히 의식한 류의 사이키델릭 둠 메탈 정도라고 하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 싶다.

“Through Zero”는 더 나아간다. “Innate Passage” 스타일의 웅장함은 조금은 자제되어 있지만 밴드는 이제 거의 Yes에 가까울 정도로 화려한 신서사이저를 내세우고 있고, ‘Sigil to Ruin’에서처럼 거친 리프는 분명히 살아 있지만 과격하지 않되 무게감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이 정도면 그냥 무게감을 강조한 Pink Floyd풍 프로그레시브 록인데 키보드만큼은 크라우트록의 가장 화려했던 부분을 재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음악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덕분에 앨범은 전반적으로 사색적인 분위기이지만 동시에 무척 강렬한 연주를 보여주고, 이쯤 되면 그저 인디 록 스타일의 보컬처럼 느껴졌던 Nick DiSalvo의 목소리도 어느샌가 John Anderson 스타일로 들리며(사실 꽤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러면서도 개별 파트들의 복잡한 연주들은 세심하게 배치되어 어느 하나 튀지 않고 평온하게 흘러가면서도 살짝 사이키함을 휘감은 따뜻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그런 면에서는 Ozric Tentacles가 90년대 초중반 그런지의 좋았던 시절과 그 이후의 매스 록(djent를 얘기하는 건 좀 과도해 보인다)을 참고하면서 좀 더 멜로딕해진 모습과도 비슷해 보인다.

그러니까 이쯤 되면 스토너고 뭐고 이 시대의 헤비 프로그 걸작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정말 멋진 앨범이다.

[Blues Funeral Recordings, 2026]

Rosetta Stone “An Eye for the Main Chance”

Rosetta Stone의 바야흐로 데뷔작. 말을 이렇게 해서 그렇지 The Sisters of Mercy 그림자를 지울 수 없는 스타일을 1991년에 들고 나왔으니 장르의 마일스톤과는 무척이나 먼 거리가 있지만, 80년대 초반 적당히 메탈적이고 적당히 어두웠던 포스트펑크의 스타일을 벌써 10년은 흘러간(그리고 ‘고딕’이라는 스타일에 대한 냉소를 감추지 않았던) 시절에서 이만큼 잘 살려낸 앨범은 보기 드물었고, 그런 면에서 이 데뷔작을 고딕 록의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견이 없지는 않겠지만 Nine Inch Nails를 지나치게 감명깊게 들었는지 인더스트리얼 물을 먹고 나온 이후의 앨범들은 이 앨범이 보여준 고딕의 전형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80년대 초중반 고딕 록의 스타일을 제대로 재현한 90년대의 퍽 드문 사례…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The Sisters of Mercy가 최고인 건 어쩔 수 없고 결국 이들이 ‘로제타 클론’이라는 멸칭도 떨쳐내긴 아마 요원하겠지만 그래도 ‘Deeper’나 ‘Leave me for Dead’ 처럼 화끈한 ‘리프'(덕분에 Fields of the Nephilim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를 보여주는 곡이 있고, ‘Subterfuge’처럼 장르 특유의 리버브 잔뜩 먹은 ‘mystic’한 분위기를 훌륭하게 재현하는 곡도 있고, 거기다 적당한 쟁글쟁글 기타와 아무래도 다이내믹과는 좀 거리가 있었던 The Sisters of Mercy에 비해 확실히 역동적인 면모를 보여주는지라 메탈헤드에게는 이 쪽이 더 꽂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Rosetta Stone 스스로가 이미 장르의 선구자 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고딕의 선구자들이 때로는 우스꽝스러워 보일 정도로 과한 진지함을 버리지 못했던 것에 비교하면 Rosetta Stone은 그저 본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 음악에서 감출 수 없는 댄서블함은 사실 그래서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마 그 댄서블함 때문에 Cleopatra 레코드가 90년대의 많은 고딕 록 밴드들을 제쳐두고 Rosetta Stone의 앨범들을 심심찮게 내놓는구나 싶기도 하다.

왜 인기가 없고 평가도 안 좋은지는 잘 알겠지만 뒤늦게 이 밴드의 팬이 돼버릴지도 모르겠다. 간만에 들으면서 솔직히 감명받고 있는 중이다.

[Expression,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