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throne “Too Old Too Cold”

바야흐로 Darkthrone식 로큰롤 블랙메탈의 시작점? 물론 밴드가 크러스트코어 물을 보여준 것은 아무리 양보해도 “Sardonic Wrath”부터는 꽤 본격적이기는 했지만 그 새로운 스타일이 노골화된 건 이 EP에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시점상으로도 밴드가 간만에 Peaceville로 복귀하고 낸 첫 앨범이었고, Darkthrone의 이름으로 나오는 첫 번째 EP였으니 뭔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계기다! 라고 생각하기엔 이래저래 충분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새로운 모습이라는 게 이런 거였을 거라고 예상했을 팬들은 생각보다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Darkthrone의 앨범이 Pitchfork에 리뷰가 올라올 정도였으니 그것만으로도 이들을 아는 이들에게는 나름의 사건이었을 것이다.

지나서 보면 밴드가 “The Cult is Alive”에서 보여줄 blackened crust 사운드의 전초전격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이 EP때까지만 해도 블랙메탈의 물이 많이 빠지지는 않았다. 물론 4곡 모두 거의 쓰리 코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펑크풍의 전개이고, 그나마 블랙메탈의 형식에 가까워 보이는 ‘Too Old Too Cold’마저도 도입부의 펑크 리프와 (아직까지는 힘이 남아 있지만) 그에 얹히는 Nocturno Culto의 클린 보컬을 들으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며, 무려 Siouxsie & the Banshees의 ‘Love in a Void’ 커버는 그 ‘creepy’한 분위기 덕분에 Master’s Hammer 생각까지 날 정도이지만 어색함은 지울 수 없다. 앨범을 만들면서 낄낄거렸을 Fenriz의 모습이 연상되긴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그만큼 낄낄거리기는 쉽지가 않다.

물론 90년대 초중반 밴드의 빛나던 시절을 생각하니 그러할 것이다. 이 EP야말로 Darkthrone이란 밴드의 진짜배기 배짱을 보여준 사례라고 하는 이도 있고 실제로도 밴드는 이 앨범 이후 꽤 오랜 시간 ‘펑크쓰론’의 길을 걸었으니 의미있는 순간이라 부르긴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나는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누구나 기분 좋을 때 낄낄거리지는 않는 법이니까.

[Peaceville, 2006]

Gouge “Pure Deathfuck”

Avmakt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Avmakt의 Christoffer Bråthen가 하는 또 다른 듀오 밴드의 11년만의 근작? 솔직히 나로서는 이 밴드를 처음 접했기 때문에 복귀작이라고는 하나 복귀작이란 말이 그리 쉬이 나오진 않는다. 뭐 그래도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Hells Headbangers에서만 앨범이 나온 거 보면 레이블도 10년동안 개점휴업인 밴드를 쪼지도 않고 기다렸다는 얘기일테니 나름대로 기대를 가질 만한 구석은 있어 보인다.

그렇게 접한 음악은 꽤 훌륭하다. 기본적으로 90년대를 넘어 80년대 중반 즈음 데스메탈 태동기의 스래쉬와 데스의 구분조차 조금은 모호한 구석이 있는 사운드를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살짝 그라인드 물을 먹은 모습을 보여주는 리프는 Repulsion 같은 밴드를 연상케 하는 면모도 있다. 당연히 이 쯤 되면 먼저 떠오를 법한 이름은 Autopsy이고, 당장 Bråthen의 보컬도 Avmakt에서와는 달리 Chris Reifert를 좀 의식한 듯한 스타일인데, 그래서인지 ‘Enemies’에서는 Autopsy의 음습한 면모를 의식한 듯한 리프도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밴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이 나름 오래 된 스타일에 의외로 세련된 멜로디와 솔로잉을 덧붙혀내면서 의외일 정도로 깔끔한 ‘올드스쿨’ 사운드를 보여준다는 점일 것이다.

EP인지라 12분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게 문제인데, 보너스로 2012년의 “Doomed to Death” EP를 같이 붙여 놓았고 이것도 무척 멋지므로 이 정도면 용서해 줘야 하지 않겠나. 대단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흘러간 스타일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2012년에 비해 나름의 개성을 2026년에 어떻게 덧붙여냈는지 비교하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이겠다. 본인들도 그만큼 자신있었으니 그러지 않았겠나 싶기도 하고.

[Hells Headbangers, 2026]

Extra Hot Sauce “Taco of Death”

이 밴드의 이름을 볼 때마다 먼저 생각나는 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대학 시절 피자를 먹을 때마다 일반적인 핫소스로는 자기 입맛에 부족하다면서 하바네로 소스를 항상 갖고 다니던 미친자 이야기가 있고(지금은 어찌 살려나), 둘째는 과연 소스가 어느 정도 매워야 그냥 핫소스고 얼마나 더 매워야 ‘엑스트라’ 핫소스가 되는지 기준은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뭐가 됐든 음악과는 아무 상관없는 얘기니까 이쯤에서 넘어가고.

Peaceville은 메탈 레이블이기는 하지만 사실 특정 스타일에 국한해서 앨범들을 내놓는 곳은 아니고 이런저런 다양한 음악들을 선보이는 곳인데, 그래도 이 레이블에 대한 인상은 어쨌든 둠이나 둠-데스에 강점이 있는 레이블이라는 게 나도 그렇거니와 90년대 음악잡지를 통해 메탈을 공부한 이들의 대개의 생각이지 싶은데(일단 Paradise Lost, My Dying Bride, Anathema만으로도 거기엔 꽤 근거가 있어 보인다) 정작 레이블 카탈로그의 시작은 거의 하드코어나 크러스트코어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러니 Dan Lilker가 중심이 된 이 그라인드/크러스트 프로젝트의 앨범이 Peaceville에서 나왔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사실 본격 그라인드/크러스트라기보다는 꽤 이색적인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다. Howie의 보컬이나 ‘Lookout for the Cheeba Man’에서 익살스런 레게풍과 함께 드러나는 하드코어(굳이 비교하자면 Agnostic Front 스타일이 아닐까)도 그렇고, Dan Lilker의 작품 아니랠까봐 Nuclear Assault 스피드업처럼 느껴지는 ‘Passive Terrorism’, 대체 왜 했는지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무척 자극적으로 간추린 듯한 Lynyrd Skynyrd와 Led Zeppelin의 커버, 설마하니 정말로 비트박스를 선보이는 ‘Caucasian Beat Box’ 등 들으면서 일단 낄낄대기에는 충분한 넘버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사실 ‘Extreme Hatred’ 같은 소수의 곡을 제외하면 정말 유머로만 승부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게 문제이지만(그런 의미에서 ‘잊혀진 그라인드코어 명반’이라는 레이블측 광고문구는 사실 사기에 가깝다) 20여분의 짧은 시간, 두어 번 즐겁게 듣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Dan Lilker가 베이스나 기타가 아니라 무려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는 것도 나름의 웃음 포인트겠다. 하지만 어쨌든 듣다 보면 아니 웃기는 것도 좋지만 좀 너무하시지 않습니까… 하는 생각이 드는 나로서는 딱 거기까지.

[Peaceville, 1989]

Avmakt “Satanic Inversion of…”

Darkthrone 얘기를 해서 말이지만, Darkthrone의 이름이 대표하는 90년대 노르웨이 블랙메탈 스타일을 따라하는 밴드는 정말 엄청나게 많고 사실 인터넷의 발전으로 굳이 레이블을 통하지 않더라도 나름의 결과물을 공개할 수 있게 되면서 등장한 무수한 골방 프로젝트들의 상당수는 Darkthrone의 그림자 아래에 있을 것이다(일단 돈이 안 드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하지만 Darkthrone이 90년대 초중반 매년 빼먹지도 않고 꾸준하게 보여준 장르의 모범은 밴드 스스로도 최소한 “Panzerfaust” 이후로는 재현하지 못한 레벨이었고, 복잡하기보다는 미니멀하며 직설적이지만 반복적인 리프가 중심이 되는 이 스타일에서 밴드 나름의 개성이 들어갈 자리를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과업임을 수많은 후대의 밴드들이 몸소 입증해온 만큼 이제는 Darkthrone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가는 류의 밴드는 예전보다는 보기 드물어져 버렸다. 장사가 안 돼서 그런 거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이 장르에서 누군들 장사가 되겠나.

그런 의미에서 Avmakt의 이 데뷔작은 2024년 앨범임을 생각하면 보기 드물 정도로 Darkthrone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가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굳이 비교하자면 “Under a Funeral Moon”과 “Transylvanian Hunger”의 그림자가 짙은데, 특히나 ‘Ordnance’ 같은 곡은 리프에 살짝 묻어 있는 Celtic Frost의 그림자만 아니라면 Darkthrone의 오리지널이라고 해도 믿을 만할 것이다. ‘Sharpening Blades of Cynicism’ 처럼 꽤 서사적인 구성에 둠메탈 바이브까지 담아내는 모습에서 밴드가 Darkthrone만을 따라가려 하지는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사실 그런 모습도 “Sardonic Wrath”나 “Hate Them”에서 Darkthrone이 보여준 모습인 만큼, 이 밴드를 Darkthrone 아류라 하면 밴드 입장에서는 섭섭할지 몰라도 그리 틀린 얘기까진 아닐 것이다.

하지만 Darkthrone이 더 이상 그 시절의 블랙메탈 밴드가 아니게 된 지도 오래 되었는데 이만큼 Darkthrone의 블랙메탈 스타일을 재현하는 밴드가 있는들 그게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오히려 Darkthrone이 90년대에 연주하던 블랙메탈의 모습들을 계속해서 밀고 나가 지금에 이르렀다면 어떤 음악을 연주하고 있을까 생각한다면 Avmakt의 이 앨범이 꽤 설득력 있는 답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레이블까지도 Peaceville이고, 심지어 밴드를 레이블에 소개해 준 것도 Fenriz란다. 그저 멋지다.

[Peaceville, 2024]

Darkthrone “Soulside Journey”

간만에 Darkthrone의 앨범들을 찾아 들은 김에 이 데뷔작이야말로 정말 오랜만에. 사실 처음 블랙메탈을 알게 되고 이런저런 앨범들을 찾아 들을 때만 하더라도 이 데뷔작에 대한 평가는 밴드의 명성에 맞지 않는 평이하고, 덕분에 이후의 후대들이 듣자니 지루한 구석도 없잖은 데스메탈 앨범 정도였는데, 어느새부턴가 그런 평가는 반전되어 블랙메탈의 구루가 초창기에 내놓은 잊혀진 올드스쿨 데스 명작! 정도로 얘기되는 듯하다. 솔직히 그렇게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기는 하다만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이라 하더라도 이 데뷔작이 이후의 걸작들에 비견될 만하다는 입장은 아닐 테니 본인이 좋다는데 거기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하고 반박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니 일단 그런 시각도 있다 정도로 쳐주고 앨범 얘기를 하자면, 데뷔작이라고 하기에는 꽤 완성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멤버들도 Fenriz나 Nocturno Culto 같은 이름이 아닌 멀쩡한 보통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그 와중에도 Fenriz는 가명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Sunlight Studios에서 녹음된 앨범답게 – 물론 기타와 베이스가 너무 약하긴 하지만 – 이후의 앨범들에 비한다면 레코딩도 훌륭하고, 이걸 테크니컬하다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충분히 탄탄한 연주력도 보여준다. 사실 Fenriz의 드럼만 놓고 본다면 가장 연주력이 좋았던 시절은 바로 이 데뷔작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Paradise Lost풍의 음울함이 살짝 묻은 묵직하지만 명백히 스웨디시 데스에 가까워 보이는 리프를 때로는 Nocturnus 정도로 테크니컬하지만 전반적으로 여유 있는 템포를 보여주는 리듬에 얹어내는 이 음악을 데스메탈의 다양한 모습들을 두루 보여줘서 좋다기보다는 어느 하나 제대로 손 대지 못하고 방황한다고 여길 이들도 많아 보인다. 수록곡들은 깔끔하게 다듬어지긴 했지만 밴드의 이전 데모들에서 이미 만나볼 수 있었고, 동시대 스웨디시 데스 밴드들로부터 많은 것을 가져왔음도 분명해 보인다. 리프를 좀 더 Entombed나 Nihilst 식으로 다듬은 Dismember에 적당히 ‘eerie’한 키보드를 얹어내고, 가끔은 Paradise Lost를 넘어 Candlemass 생각도 나는 둠 리프를 섞어주면서 묵직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모습은 ‘Grave with a View’ 같은 나름의 성공사례를 제외하면 나쁘진 않지만 굳이 이 앨범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준다. 솔직히 1991년에 이 정도 해 주는 데스메탈 밴드는 흔하다고까지는 못해도 이런저런 이름들이 바로 떠오르는 편이니까.

[Peaceville,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