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petigo “Ultimo mondo cannibale”

Mark Sawickis가 죽었다. 아무래도 좁디좁은 인력 풀에서 인재를 찾다보니 잘한다는 인물은 이런저런 많은 밴드들에 함께 이름을 올리는 사례도 흔한 게 이쪽 동네라지만 장르의 네임드임에도 불구하고 Mark가 다른 밴드와 함께 활동한 경우는 게스트로 한 소절 휘갈겨주는 정도가 아니라면 찾아보기 어렵지만(있기는 있나?) Impetigo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장르의 역사에서 Mark를 기억할 이유는 차고도 넘칠 것이다.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빈다.

Impetigo는 이런저런 스플릿과 EP들을 제외한 정규반은 이 데뷔작과 “Horror of the Zombies”만을 내놓았고, 데스그라인드라는 레떼르답게 두 장 모두 데스메탈과 그라인드코어(앨범 테마가 테마이다보니 그 중에서도 고어그라인드)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Horror of the Zombies”가 둘 중에서는 좀 더 데스메탈에 다가간 편이랄 수 있겠다. 달리 말하면 밴드의 가장 그라인드코어 색채 강한 앨범은 바로 이 데뷔작이라는 것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Impetigo의 그라인드코어는 후대의 밴드들에 비해서는 훨씬 캣취하고 그루브한 편이기 때문에 그라인드코어 팬이 아니라도 좀 더 접근하기 쉬워 보인다. 아무래도 흔히 비교되는 것은 초창기 Carcass겠지만 그보다는 좀 더 펑크적이고 덜 테크니컬하며, 리듬감이라는 면에서는 차라리 Chris Barnes 시절의 Cannibal Corpse를 떠올리는 게 나을 것이다. 인트로도 그렇고 Lucio Fulci의 컨셉트로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모습에서는 Mortician(이나 Macabre)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벌써 이 저예산 앨범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는지 드러나 버린다.

그리고 그라인드코어 팬이 아니라도 ‘Mortado’나 ‘Dis-Organ-Ized’의 화끈한 리프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드코어의 그림자가 아직은 데스메탈/그라인드코어에 분명히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Wild Rags, 1990]

Allegiance(FR) “Beyond the Black Wave”

블랙메탈 좀 들었다는 사람에게 Allegiance라는 이름은 대개 No Fashion에서 앨범이 나왔던 Dissection풍 블랙메탈(이기 때문에 데스메탈이라 부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밴드일 것인지라 이 앨범 한 장 내고 활동은 지지부진한 프랑스 심포닉블랙 밴드의 현재까지의 유일한 정규작을 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긴 2018년에 120장 한정으로 낸 데뷔작이 지금까지 다 안 팔렸다는 사실이 밴드의 어려운 현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그래도 부클릿 끼울 자리 만드는 걸 깜박했었는지 디지팩 사이에 불안하게 끼워넣은 모습을 제외하면 웬만한 레이블 뺨칠 정도로 신경쓴 만듦새의 앨범인지라 이쯤 되면 앨범을 구하는 이들이 아니라 밴드 본인들이 제작비 본전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앨범은 슬프게도 아직도 품절이 아니다.

하지만 음악은 훌륭하다. 듣자마자 떠오르는 것은 “Anthems to the Welkin at Dusk”과 “IX Equillibrium” 시절의 Emperor인데, 간혹 예테보리풍 리프가 등장하긴 하지만 결국은 90년대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황금기를 재현하는 듯한 스타일이고, 특히나 ‘In Memory of My Essence’는 노르웨이 심포닉 블랙메탈의 전형을 그대로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Shadow from the Pyre’ 같은 곡이 그러면서도 극적인 전개를 통해 나름의 개성을 과시하지만 어쨌든 머릿속 어느 한켠에는 ‘An Elegy of Icarus’ 생각이 나는 것이 2018년에 Emperor 스타일 심포닉블랙을 내놓은 밴드의 한계랄까? 하지만 이런 스타일을 이 정도로 완성도 높게 보여준 밴드는 예전에는 그렇다치고 이제는 꽤나 오랫동안 드물었으므로 많이 반갑다. 하긴 이 앨범도 벌써 7년도 넘게 지났구나.

이 밴드의 신작을 만나볼 수 있으려나? 솔직히 좀 요원해 보이지만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Self-financed, 2018]

Woe “Hope Attrition”

Woe라는 이름은 나로서는 오랜만이다. 데뷔작이었던 “A Spell for the Death of Man”은 그 시절 DSBM의 한 타이밍 늦었지만 아쉬운대로 뛰어난 앨범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미국 밴드들이 그랬듯이 포스트펑크와 슬럿지 등의 면모들을 담아내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내 취향과는 많이 멀어져버렸다. “Withdrawal”에 대한 평은 좋았지만 어쨌든 잊을만 하면 쉬지 않고 튀어나오는 하드코어스러움은 못내 거슬렸던 모양이다. 그러니 이 앨범을 찾아듣는 데는 꽤 많은 망설임이 있었던 편이다. 하긴 그러니까 나온 지 8년도 넘게 지난 앨범을 이제 와서 어땠다고 쓰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어디 가서 블랙메탈 좀 찾아듣는다 하기도 좀 그렇다.

그래도 “Hope Attrition”은 그런 USBM 냉담자의 귀에도 꽤나 좋게 들린다. 당장 “A Spell for the Death of Man”에 실렸어도 어색하지 않아 보이는 ‘Unending Call of Woe'(덕분에 곡명부터 의미심장하게 보인다)부터 시작해서, 펑크풍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작들보다 확실히 무겁고 웅장해진 분위기(‘The Din of the Mourning’), 때로는 Drudkh의 좋았던 시절을 연상케 할 정도의 극적인 구성(‘Abject in Defeat’) 등을 보자면 내가 애초에 블랙메탈의 어떤 부분들을 좋아했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기대했던 수준을 꽤 상회하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

다만 데뷔작의 좀 더 ‘자욱한'(달리 말하면 ‘먹먹한’) 분위기가 이런 스타일에는 더 어울리지 않나 싶기는 한데, 좀 더 선명해진 멜로디를 보면 한 장이라도 더 팔리려면 이런 게 맞는 방향이겠구나 생각도 든다. 멋진 앨범이다.

[Vendetta, 2017]

PLJ Band “Armageddon”

Armageddon 얘기 나온 김에 한 장 더. 알고 보면 Vertigo에서 나온 이 그리스 프로그 밴드의 데뷔작은 나오자마자 신성모독을 이유로 판매금지를 얻어맞고 전량 회수조치에 들어갔으나…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카피들만이 시장에 남으면서 초절정 희귀반이 되었다라는 게 잘 알려진 얘기인데, 이제는 Vertigo 오리지널을 구하려는 게 아니라면야 여기저기서 재발매된 덕분에 꽤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처럼 헝그리한 음악 애호가라면 아마도 이건 부틀렉일까 아닐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Second Battle반을 구한 사례가 많지 않을까 싶다. 오피셜일 거라 일단 믿고 듣는 게 청자의 마음은 편할 것이다.

그래도 음악은 나쁘지는 않다. 아마게돈이라고 해서 화끈한 맛을 기대해선 곤란하고 앨범 전체가 사이키함을 강조한 정적인 분위기로 흘러가는 편인데(물론 ‘Armageddon II’ 같은 예외도 있다) 일반적인 프로그 팬이라면 과한 미니멀함에 피로함을 얘기할 수 있겠지만 Gong 같은 스타일을 좀 더 심각한 분위기로 풀어내면서 약간의 포크 바이브를 섞었다고 생각하면 좀 더 흥미로워질지도? Aphrodite’s Child의 “666” 마냥 등장하는 그리스어 나레이션도 학습효과 때문인지 이 묵시록 이야기와 잘 어울리게 느껴진다. 사실 신서사이저 연주는 Aphrodite’s Child보다는 Akritas 느낌이 강한 편인데… 뭐 어느 쪽이든 영국보다는 독일풍이란 것은 분명하니 그리스식 크라우트록이라 생각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류의 앨범들이 대개 그렇듯이 희귀한 만큼 대단한 걸작이냐 하면 그건 확실히 아니지만 좋은 앨범이다. “666”이 1972년작이니까 한 8년만 일찍 나왔으면 “666”의 시퀄마냥 훨씬 좋은 대접을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생각하면 1974년에 나왔어도 판매금지 맞았을 거 같으므로 그냥 팔자 사나운 밴드의 아까운 데뷔작이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Vertigo, 1982]

Armageddon(UK) “Armageddon”

Armageddon이란 단어는 록/메탈에서 밴드명이나 앨범명으로는 꽤 흔히 보이는 편이고, 단어가 단어인지라 대개는 꿈도 희망도 없는 분위기를 그려내곤 하는데, 그리다 못해 밴드의 운명조차 꿈도 희망도 없어져버린 사례들이 아무래도 대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작명은 매우 중요하다는 교훈… 을 얘기하려는 건 아니고, 그래도 록/메탈의 역사에서 Armageddon이란 이름을 써먹은 수많은 밴드들이 그래도 내놓은 의미있는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이 앨범이 가장 유력한 후보가 아니겠나 하는 게 사견. 물론 이 밴드조차 저 작명의 중요성을 극복하진 못한지라 밴드의 중심이 되었던 Keith Relf는 앨범이 나온 다음해 기타 치다가 감전으로 사망한다는 당혹스러운 사고의 주인공이 되었고, 이 한 장뿐인 앨범도 이후 다시 재발매되기까지는 한 15년 걸렸으니, 나름 그 시절 걸물들이 모여 만든 밴드의 팔자치고는 대단히 박복했던 셈이다. 말하고 보니 저런 사실을 들어 배철수를 한국의 Keith Relf라고 외치던 혹자가 기억나는데 아무 상관없는 얘기이니 각설하고.

그래도 결국 Renaissance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이 밴드의 음악은 어쩌다 저렇게 뽑혔는지 너무 헤비메탈처럼 보이는 커버만큼은 아니지만 멤버들의 본진을 생각하면 기대보다 많이 하드록에 기울어진 스타일이었다. 특히나 Bobby Caldwell(미국 AOR뮤지션 그 분 아님)의 드럼은 때로는 Motörhead가 생각날 정도로 스트레이트한 면모를 보여주는데, ‘Buzzard’ 처럼 이런 드러밍에 힘 잔뜩 들어간 기타 리프가 어우러진 곡을 혹자는 프로토-메탈의 모범사례로 꼽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앨범을 찾아듣는 이들은 아무래도 하드록보다는 프로그레시브 록을 더 좋아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Last Stand Before’ 처럼 이런 화끈함과 함께 이 분들의 본진은 어쨌든 프로그레시브 록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를 추천하는 게 좋아 보인다.

어쨌든 펑크가 폭발하기 전 영국 하드록의 의미 있었던 지점…. 이라고 생각하는데, 생각해 보니 이후 재발매되는 데 15년이나 걸린 거 보면 다른 사람들 생각은 꼭 그렇지는 않았었나 보다. 역시 판장사 할 팔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우치며 넘어간다.

[A&M,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