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rillion을 제외하고 브리티쉬 네오프로그를 대표하는 뮤지션을 딱 하나만 고른다면 그 답은 사실 대단히 애매하겠지만 가장 유력한 후보 중의 하나는 아마도 Clive Nolan 아닐까? 일단 80년대부터 정말 이런저런 다양한 밴드들과 솔로작들을 통해 거의 끊이지 않고 꾸준한 활동을 보여줬고, 흔히 네오프로그에 대한 볼멘소리들을 살펴볼 때 그런 얘기들이 가리키는 곳에는 높은 확률로 Clive Nolan이 있을 정도로 장르의 ‘나름의’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냈으며, 그러면서도 사실 어느 이상의 퀄리티는 충분히 뽑아주면서 장르의 구루마냥 꽤 굵직한 이름들과 항상 함께하는 인물인만큼 저런 평가는 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라면 애초에 네오프로그를 지금껏 듣는 이들은 사실 별로 없을 것이고, 이 근성의 사나이는 그런 볼멘소리들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타일을 절대 바꾸지 않을 만한 분이기 때문에 이 분이 나름의 성과를 인정받고 재평가될 일 같은 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하긴 재평가되기에는 이미 너무 유명한 양반이기도 하고.
이 분은 2013년의 “Alchemy”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솔로작들을 내놓기 시작했는데(물론 1991년의 “Conflicts” OST를 제외한다면) Ayreon의 성공을 바라보며 감흥을 받았는지 아니면 커리어 내내 어느정도 배고팠던 네오프로그의 동료들을 챙기기 위함인지 많은 뮤지션들을 참가시키는 뮤지컬 형태의 컨셉트 앨범들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반 헬싱도 아니고 Samuel King이라는 교수가 스팀펑크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악당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들을 이어나가면서 이 “The Mortal Light”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는 게 일반적인 소개다. 나로서는 “Alchemy”를 들어보지 못했으므로 그냥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이지만 이 스팀펑크 이야기를 보자니 Clive Nolan이 특유의 그 동화풍을 포기하지 못했으며 아마 그런 ‘예쁘장한’ 얘기들을 나름 스케일 크게 펼쳐냈을 거라는 짐작은 든다.
그리고 그 짐작은 비교적 잘 맞아 떨어진다. 사실 Clive Nolan 특유의 라이트모티프로 점철된 전개는 Arena나 Shadowland에서보다도 더욱 강조되어 있고, 무그와 빈티지 멜로트론 연주에 현악 4중주를 고심해서 배치한 덕에 앨범은 꽤 풍요로운 실내악을 갖춘 베리즈모 오페라처럼 흘러간다. 그러면서도 Andy Sears와 Clive Nolan 본인을 포함한 네오 프로그레시브의 걸출한 보컬들이 연주에 묻힐까 전반적으로 힘차게 불러주는지라 나름 화끈한 맛도 느낄 수 있다. ‘Decisions’ 처럼 서사가 돋보이는 곡도 있고, 유쾌한 분위기의 ‘Crime’이나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주는 ‘Siege’, 갈등의 화려한 해소를 보여주는 ‘Explosion’ 등, 사실 굳이 뜯어보면 다 뻔하지만 우리가 Clive Nolan이 커리어를 통틀어 보여준 네오프로그에서 즐겨왔던 모습들을 두루 갖춰놓는 충실함도 잊지 않는다. 그러니 Clive Nolan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앨범을 아마도 좋아하지 않을 요량이 없을 것이다. 솔직히 ‘Wedding’ 인트로부터 이미 만족했던 나 같은 사람은 더욱 그렇다.
[Crime, 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