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mkeep “The Nocturnes of Iswy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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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메탈만큼 천재가 많은 장르도 보기 드물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걸출한 인물들이 몰린다는 뜻은 물론 아니고 좁은 바닥이라 결국 소수의 인재들은 찾는 곳이 많고 그만큼 관여하는 작업도 많으며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놓는 사례도 빈번하다는 뜻이다. 결국 그냥 짧게 말하면 잘하는 놈이 뭐든지 잘한다는 사례(이를테면 Nagash, Ihsahn, Garm 등등…)가 블랙메탈에서 많았다는 뜻인데, 말하고 보니 그렇지 않은 분야가 있기는 한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서야 글이 처음부터 꼬여버릴 테니 이쯤에서 넘어간다.

Issac Faulk도 근래에 등장한 그런 의미의 천재 중 한 명이라 생각한다. 사실 그렇게 얘기하기엔 그리 다작하는 편까진 아니지만 그 활동이 Blood Incantation, Wayfarer이었으니 주목받기에는 충분했을 것이고, 그래도 만족하지 못했는지 Wayferer의 멤버들을 끌어들여 Stormkeep이란 이름으로 그간 하던 것과는 좀 다른 심포닉한 키보드가 맹활약하는 멜로딕 블랙메탈을 내놓았다. 이런 류의 음악이라면 아무래도 Emperor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2020년대답게 그 시절 블랙메탈과는 많이 다르다. Emperor가 블랙메탈의 어떤 전형을 내놓았다면 Stormkeep은 파워메탈이나 에픽메탈의 에토스로 선보이는 심포닉 블랙에 가까워 보인다. 사실 블랙메탈의 방법론을 빌렸으나 사실은 Rhapsody 같은 음악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lda라는 가상의 세계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앨가로드 얘기에 심취한 Rhapsody에 많이 닮아 보인다(가끔은 Bal-Sagoth 같은 부분도 있다).

그런 방향은 “The Nocturnes of Iswylm”에서도 동일하지만, 오케스트럴한 면모를 약간은 덜어내면서 기존의 노르웨이풍에서 좀 더 트리키하고 멜로딕 데스에 다가간 리프와 은근한 고딕풍의 분위기(특히 ‘Carnal Tapestries of Nailtorn Flesh’)는 데뷔작의 Emperor스러움보다는 오히려 Cradle of Filth에 가까워 보인다. ‘Imperious Sanguine Eroticism’은 이런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데, Cradle of Filth를 넘어 때로는 소시적의 Moonspell이나 The Blood Divine 같은 둠-데스의 양상을 반영한 전개에 Old Man’s Child를 연상케 하는 명료한 리프, 이러한 서사를 강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클린 보컬은 데뷔작에 비한다면 좀 덜 어둡지만 대신 더 낭만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그러면서도 어쨌든 곡의 중심에 있는 것은 심포닉이 아닌 기타 리프라는 점에서 장르의 외연을 철저히 준수하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는 생소할 건 전혀 없지만 심포닉블랙이란 장르의 요소들을 솜씨 좋게 배치하여 재조명하는 앨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들으면서 생각하는 거지만 얘 천재 맞는 것 같다.

[Verperian, 2026]

므레모사

김초엽에 대해서 이제는 딱히 소개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글로 밥벌이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게 일반인들은 흔히 ‘문송하기’ 마련인 세상에서는 거의 진리에 가까운 얘기일 것이고 작가가 그간의 저술로 살림살이 좀 나아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SF를 표방했다는 점에서 이 작가가 돈 생각하고 작가 생활을 시작한 건 아니라는 것은 더없이 분명해 보인다. 책을 들춰보지 않고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은 이 작가가 정말 성실하고 정력적인 창작 활동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고, 김초엽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을 대형서점 매대에서 벌써 여러 권 찾아볼 수 있으니 그래도 그럴 만한 반응을 얻어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도 얼치기 SF 팬으로서 김초엽이라는 작가에 대한 아쉬움이라면 현실에 지나치게 접근한 탓에 SF적 상상력이 그리 발휘되지 않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고(역시 문외한은 용감하게 막말하는 법이다), “므레모사”는 그런 모습을 더욱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명 무용수 유안이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고된 재활에 성공하지만, 주변의 찬사와는 달리 스스로는 사고 이전의 다리가 그림자마냥 남아 있다고 느끼면서 의족을 이물질마냥 여기게 되고, 그러면서 스스로 무너져 나가던 중 베일에 싸인 공간인 ‘므레모사’로의 여행을 선택한다는 게 대략의 줄거리인데, 유독성 화학물질 유출사고 이후 좀비 같은 귀환자들이 횡행하는 의문스러운 공간이라지만,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등을 지켜본 입장에서 이건 그리 대단한 아이디어가 아닐 것이다. 과학의 과장과 왜곡이 없지야 않겠으나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세상과 므레모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작가의 의도는 아마도 상처받은 주인공에 대한 흔한 위로와 응원이 대개의 극복 서사가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이는데, ‘므레모사’라는 공간이 그런 의도에 기여하는 바가 뭔지는 알 수가 없다. 재난 이후 펼쳐진 폐허에서 비합리적이며 때로는 오컬트한 질서가 형성되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일 수 있겠으나 결국은 이야기의 주된 흐름에는 전혀 기여하지 않는 악세사리처럼 보인다.

그럼 SF 얘기는 그렇다 치고 이 책은 읽을 만한 작품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어떻게 소외된 이들을 소설에서 다뤄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분명해 보이고, 어찌 보면 퇴행적인 선택에 이르는 주인공의 모습이 납득될 수 있도록 시종일관 설명하는 모습은 작가가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만큼은 명확히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묵직하게 들려오기에는 세상은 생각보다 많이 빡빡하다고 생각한다. SF를 굳이 표방했다면 현실 이상의 상상력은 당연한 덕목이라고 소심하게 외쳐본다.

[김초엽 저, 현대문학]

Kavinsky “Outrun”

신스웨이브 뮤지션 중 The Weeknd를 제외하면 Kavinsky만큼 크게 성공한 사례는 아마 없을 듯하고, 장르에 미친 영향이란 면을 고려하면 신스웨이브(중에서도 아웃런)의 최고 구루를 꼽는다면 가장 강력한 후보 중 하나가 Kavinsky라는 점도 이견이 없어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Kavinsky의 작품이 이 장르 최고의 결과물이었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좀 다를 수 있겠고, 신스웨이브라는 건 분명하지만 꼭 아웃런 스타일만 내놓은 것도 아니었으므로 누구를 가장 높은 자리에 둘 것이냐는 암만 좁은 필드 내의 얘기일지언정 생각들이 서로 다를 수도 있겠다. 어쨌든 Kavinsky가 어제 세상을 떠났다 하니 또 짧지만은 않았던 한 시절이 지나갔다는 느낌이 든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신스웨이브뿐만 아니라 많은 전자음악/일렉트로닉 뮤지션들이 그렇듯 Kavinsky도 굳이 앨범 단위로 활동하지는 않는 뮤지션이었으므로 결국 이 ‘데뷔 1집’도 Kavinsky가 2013년까지 내놓았던 많은 트랙들의 모음집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소개해서야 재미가 없으니 Kavinsky는 대충 뮤지션 본인의 오너캐로 보이는 주인공과 빨간색 페라리 테스타로사가 중심이 된 컨셉트를 정하고 그에 맞게 곡들을 큐레이션해서 앨범을 내놓았다. 물론 교통사고 후 페라리 테스타로사와 몸이 융합되어 좀비가 된(?!) 주인공이 일렉트로닉 음악을 만든다는 얘기를 보고 제대로 된 컨셉트 앨범 같은 걸 기대했다면 아마 기대한 쪽의 잘못이 더 클 것이다. 그보다는 80년대의 이런저런 모습들, 이를테면 석양이 지는 해변가 도로를 오픈카로 달리는 모습, 적당히 싼티나는 비주얼의 슬래셔 무비,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헤어메탈풍 기타(특히 ‘First Blood’) 등을 이래저래 콜라주한 모습을 생각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Rampage’에서 드래곤볼 Z 극장판에 나오던 메탈쿠우라 테마곡 샘플링을 발견할 정도가 되면 이제 이 앨범이 나름 컨셉트 앨범이었다는 건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저 유쾌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을 즐기면 충분할 것이고, 사실 신스웨이브 앨범이 그 정도면 충분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이제는 유행이 가도 몇 물은 갔고 이미 2013년에도 M83, Chromatics 같은 이름들이 등장한 이상 식상하다는 평가가 나오긴 하겠다만 태생부터 회고적이었던 이 장르와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얘기일 것이다.

[Record Makers, 2013]

IBIS “Sun Supreme”

New Trolls를 포함해 New Trolls 패밀리 밴드들(이라기엔 서로 사이가 그리 좋지만은 않겠다만)이 내놓은 앨범들 중에 최고를 꼽는다면 아무래도 New Trolls의 “UT”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후보가 됨직한 IBIS의 2집. 하지만 이쪽 음악에 관심있는 이라면 딱히 설명도 필요없을 이 앨범을 접한 건 나로서는 생각보다 오래 되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묻는다면 어찌 알겠냐마는 아무래도 IBIS라는 밴드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본 모 잡지에서 “Canti d’innocenza, canti d’esperienza”를 ‘유명 밴드의 이름값 되게도 못하는 형편없는 앨범’ 정도로 소개했던 게 이상할 정도로 기억에 남아서였는지도 모르겠는데… 나중에 정작 앨범을 접했을 때의 인상은 그 정도까진 절대 아니었으므로 그저 우매함을 탓할 뿐이다.

음악은 이탈리아 프로그 앨범들 중에서도 이만큼 Yes풍이 강한 앨범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Yes의 그림자가 짙은 편이다. Atomic Rooster에서 Rick Parnell도 데려오고 노래도 전부 영어도 부르겠다 바야흐로 브리티쉬 스타일로 거듭나겠다는 결심을 보여주는 건가 싶은데… 하긴 1974년이고 이들도 “Close to the Edge”와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를 들어봤을 테니 심포닉 프로그 밴드 치고 Yes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게 훨씬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Vittorio de Scalzi와 Nico di Palo가 같이는 못해먹겠다고 갈라진 게 IBIS의 시작이었음을 생각하면 이런 음악 할 거면 왜 굳이 싸우고 갈라졌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긴 싫어할 사람은 뭘 해도 싫어한다고 했듯이 인생은 그리도 어려운 것이렷다.

그래도 Nico의 예의 화끈한 하드록 스타일의 기타와 드라마틱한 전개만으로도 앨범의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호흡이 길다 못해 때로는 좀 느슨한 ‘Divinity’ 3부작에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특히 Rick Parnell의 드럼 솔로는 왜 넣었나 싶다) ‘To Be Over’ 스타일의 피날레를 들으면 혹시 이 분들이 “Relayer”를 어떻게 먼저 들어봤나 하는 의문도 든다. 적어도 그 시점에서 IBIS는 우리도 Yes 부럽지 않다!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래저래 좋은 앨범이다.

[Polydor, 1974]

Trelldom “…by the Word…”

앨범마다 제목에 말줄임표를 까먹지 않고 꼭 넣어주는 Trelldom의 2년만의 복귀작… 이라지만 이 밴드의 복귀작에 기대를 두고 있던 이를 보기란 (적어도 내 주변에서)생각보다 쉽지 않은 편이었다. 아무래도 이미 Gaahl’s Wyrd에서부터 기미가 보이기는 했지만 “…by the Shadows…”부터 Gaahl은 더 이상 기존의 ‘클래식한’ 스타일의 블랙메탈이 아니라 차라리 Oranssi Pazuzu 같은 최근의 조류에 따르기로 한 듯한 모습을 역력히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Trelldom이라는 이름을 굳이 기억하고 있을 만한 이들의 상당수가 Head Not Found에서 앨범내던 시절의 모습을 떠올릴 것임을 생각하면 “…by the Shadows”는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이게 Trelldom이 맞나 하는 게 대개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by the Word…”에서는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제 Trelldom은 아방가르드 블랙메탈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데, ‘I Speak Forgotten Voices’의 King Crimson풍 리프를 들으면 Ved Buens Ende 같은 밴드까지 생각날 정도이지만 사실 그렇게 프로그레시브하지는 않다. 결국은 디스토션보다는 퍼즈로 채워진 사이키함과, Ved Buens Ende의 그것과 비교하면 조금씩 덜그럭거리는 리듬감이 만들어내는 ‘chaotic’함이 앨범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모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곡이라면 ‘The Word Chose to Vanish’라고 생각한다. 역동적인 도입부에 이어지는 사색적인 분위기, 하지만 청자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도록 계속해서 등장하는 어쿠스틱 기타, 브라스, 그 외의 소음들이 계속해서 덜그럭거림을 선사한다. 간혹 블래스트비트나 거친 리프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지엽적인 모습에 그치고, 덕분에 때로는 이걸 블랙메탈이라 부르는 게 맞기는 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독특한 시도? 정도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앨범이라는 생각도 들고, 적어도 청자에게 불러오는 심상이나 정서 같은 면에서는 이 음악을 블랙메탈과 과히 구분할 수 있을까 싶으니 이런 걸 또 2020년대에 등장한 새로운 모습의 블랙메탈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되게 재미있게 들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Prophecy,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