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ëkht Aräkh “Morning Star”

“Pale Swordsman”으로 (좋든 나쁘든 간에)업계 최고의 어그로꾼으로 자리매김한 Këkht Aräkh의 신작. 로맨틱 블랙메탈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냐 아니냐를 떠나서 “Pale Swordsman”은 어쨌든 살짝 묻어 있는 포스트록의 색채만 빼고는 꽤 공고하게 블랙메탈의 컨벤션을 따라가는 앨범이었고, Lifelover풍의 건반을 제외한 리프는 의외로 90년대 중반 Darkthrone의 모습을 닮아 있기도 했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깔끔해진 음질로 선보이는 “Transylvanian Hunger” 짝퉁같은 느낌도 지울 수 없을 정도이므로, 사실 ‘로맨틱’ 어쩌고 하는 소개에 과하게 긁히지 않는다면 철혈의 메탈헤드가 이 앨범에 꽂혔다 한들 이상할 건 없어 보인다.

“Morning Star”는 어떤가? 우리의 이 어그로꾼은 앨범이 나오기도 전에 블랙메탈과는 아무 상관없는 나로서는 이름모를 뮤지션들(래퍼인 Bladee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특히 Varg²™은… 테크노 뮤지션의 블랙메탈식 말장난에 다름아닐 것이다)과의 협업을 예고함으로써 이미 상당한 우려와 어그로를 끌어놓았지만 그에 비해서 앨범은 꽤 무난한 블랙메탈에 가깝다. 중간중간 Ulver풍의 포크나 앰비언트를 곁들이는 전작과 유사한 스타일의 블랙메탈인데, 특히나 ‘Angest’나 ‘Land av evig natt II’는 좋았던 시절의 Judas Iscariot을 연상케 할 정도로 공격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포크 바이브 강한 ‘Genom Sorgen’처럼 전작에서 찾아볼 수 없던 멜로우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중간중간 보여주는 어쿠스틱 소품들은 사실 블랙메탈보다는 멜랑콜리한 포스트펑크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 면에서는 이 밴드가 성공적인지는 좀 애매하지만 확실히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Bladee가 그런 모습을 잘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래퍼라지만 오히려 Crying Orc보다도 멋들어진 클린 보컬을 선보여 사람을 놀래키지만, 역시나 Bladee의 손길이 닿았는지 언더그라운드 랩 느낌의 뮤직비디오, 꽤 우스꽝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비트의 배치가 모두 이 블랙메탈 앨범에 등장한다. 좀 더 들어봐야겠지만 되게 재미있는(삐딱하게 본다면 되게 ‘웃기고 자빠진’) 앨범이다.

[Sacred Bones, 2026]

Apocryphon “Apocryphon”

샌프란시스코 출신 사이키델릭 데스메탈 밴드. Esoteric을 사이키델릭 둠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있으나 둠도 아니고 사이키-데스는 그래도 Blood Incantation 등장 이후에는 드물게 보이는 용어지만 2011년에는 이게 말이 되기는 하나 싶은 얘기였다. 굳이 따진다면 Blood Incantation이 사이키델릭 소리를 듣는 것도 이 밴드에 묻어 있는 스페이스록 스타일 때문일 것인데, Apocryphon은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 노골적이지는 않은데다 사실 가사를 제외하면 별로 사이키한 구석이 없는 이 음악을 사이키-데스라고 부르는 게 그리 내키지는 않지만 밴드 본인들이 그렇다는 데야 어쩔 수 없다.

음악은 베이에이리어 출신 답게 데스메탈이지만 때로는 슬램에 최적화된 리듬감을 과시하기도 하지만 간혹 그라인드코어마냥 갈아대는 면모도 엿보이고, 어쨌든 사이키-데스를 표방했기 때문인지 등장하는 샘플링(이를테면 ‘Blood of Serpents’)과 노이지함도 찾을 수 있다. 흥미롭다면 그러면서도 정작 음악의 골간이 되는 데스메탈은 꽤 정통적인 부류에 가깝다는 건데, 말하자면 그라인드코어가 섞여들어가는 부분에서 Circle of Dead Children 같은 사례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정작 리프는 Autopsy나 Immolation풍이라고 할까? 그러면서도 파충류 얘기나 조금은 잔혹한 데가 있는 유머(이건 생각해보니 또 Carnivore 스타일일지도)를 발견할 수 있는 음악이기도 하다. 데스메탈 팬이라면 꽤 많은 즐길거리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Jeff Leppard가 도와주기도 하고 나름 기대받는 줄 알았건만 이 EP 이후 싱글 딱 하나 내고 망해버렸더라(Fabricant와의 스플릿이 있긴 하지만 수록곡 하나가 바로 저 싱글인지라). 이런 밴드 순식간에 망해버리는 건 다반사이지만 꽤나 아쉽다. 한 장 내고 망하려고 데뷔 EP에 100장 한정 나무박스 버전을 준비하는 호사를 부렸을까.

[Self-financed, 2011]

One of Nine “Dawn of the Iron Shadow”

이 뭔지 모를 이름의 미국 블랙메탈 밴드는 아홉 나즈굴에서 밴드명을 따 왔다고 하니 톨킨 얘기로 점철된 류의 블랙메탈을 연주할 거라는 건 분명해 보이고, 그런 면에서 전통적이기보다는 좀 더 ‘모던한’ 류의 메탈 음악을 주로 내놓았던 Profound Lore에서 나올 만한 음악인가 생각도 들지만, 말 나온 김에 Profound Lore의 카탈로그를 잠시 살펴봤더니 Cruciamentum이나 Abruptum(물론 재발매)의 이름도 보이더라. 뭐 생각해 보면 Spectral Wound도 여기서 나왔으니 이 레이블이 전형적인 부류의 블랙메탈을 내놓는다 하여 이상하게 여길 것도 아니긴 하겠구나 싶다. 각설하고.

음악은 전형적인 심포닉이라고 하기는 좀 달라 보이고 그보다는 던전 신스 물 많이 먹은 멜로딕 블랙메탈 정도로 얘기하는 게 맞아 보인다. 톨킨 얘기로 점철된 근래의 이런 류의 스타일이라면 아무래도 Stormkeep같은 밴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겠지만 ‘Dreadful Leap’ 같은 곡에서 보여주는 행진곡풍의 전개에서는 “Dol Guldur”의 Summoning을 의식했을 법한 모습도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 앨범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Emperor와 Vinterland를 잘 섞어놓은 듯한 노르웨이풍 리프인데, 행진곡풍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격렬한 트레몰로와 함께 폭발시키는 전개에서는 한창 시절 노르웨이 심포닉 블랙메탈의 묵직한 이름들의 빛나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Of Desperate Valor’의 꽤 낭만적인 어쿠스틱 연주는 덤이다. 장르의 팬이라면 일청을 권한다.

[Profound Lore, 2025]

Vince Neil “Exposed”

Vince Neil의 첫번째 솔로작. 흔히 Nirvana를 위시한 얼터너티브가 80년대 차트를 수놓은 헤비메탈의 시대를 끝장내버렸고 특히나 헤어메탈이 직격탄을 맞았다더라… 하는 게 일반적인 얘기지만 그럼 대체 그렇게 끝장나버린 게 언제냐? 하면 여기에 답하기도 좀 애매하다. “Nevermind”가 등장한 1991년인가 하면 그 이전부터 메탈이 한창 시절같진 않음은 이미 징후적으로 드러나고 있었고, 따진다면 Nirvana 이전에도 이미 펑크가 폭발할 기운은 무르익고 있었다(이에 대하여는 “1991: The Year Punk Broke” 다큐멘터리를 보는 게 나을 것이다). 사실 끝장났다고 얘기해서 그렇지 헤어메탈을 포함한 메탈 음악이 얼터너티브 이후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이건 메인스트림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었을 때만 말이 되는 서사인 셈이다.

어쨌든 얼터너티브로 인한 헤비메탈의 종언 얘기가 맞는지 틀린지를 떠나서 이 Vince Neil의 솔로작이 헤어메탈이라는 장르가 차트에서 더 이상 생명력을 가지기 어려움을 명확하게 확인해 준 앨범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개차반같은 사생활을 떠나서 실력이나 인기나 단연 최고였던 Motley Crue의 멤버들 중에서도 최고의 개차반을 다투던 프론트맨 Vince Neil이 헤어메탈에 발을 담갔던 이들 중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하나일 Steve Stevens와 Ozzy Osbourne의 “The Ultimate Sin”을 통해 주가를 올리던 Phil Soussan(물론 앨범 나오기도 전에 쫓겨나긴 했지만)을 끌어들여 자기가 계속 해 왔던 스타일을 매끈하게 뽑아냈는데도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절이 바뀌었다고 새로운 음악을 하자니 그런지나 얼터너티브 팬들이 찾아들어줄 거 같진 않고, 그래서 잘 하던 걸 더 가다듬어 내놓았는데도 통하질 않으니 뭐냐 이거 답이 없네 하고 본진으로의 복귀를 선택했을 Vince Neil의 짜증섞인 난봉이 보이는 듯하다. 지나서 생각하면 그렇게 해서 만든 게 “Generation Swine”이었다는게 문제이긴 한데 Vince 본인도 그렇게 되리라곤 예상 못 했을 거 같으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앨범은 생각해 보면 어려운 시절을 집약된 역량으로 뛰어넘으려던 시도였던만큼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보컬리스트의 솔로 앨범이지만 어디 가서 절대 묻힐 캐릭터가 아닌 Steve Stevens가 있는 만큼 테크니컬한 솔로잉을 담고 있고, 앨범의 절반 가량은 Phil Soussan이 작곡한만큼 Jake E. Lee 시절의 Ozzy Osbourne의 음악을 연상케 하는 구석도 있는 헤비메탈도 찾아볼 수 있다(특히나 ‘The Edge’). 사실 그런 면에서 이 앨범을 그저 헤어메탈이라 하는 건 적절하지 않은 면이 있어 보인다. Damn Yankess풍의 ‘Can’t Change Me’나 ‘You’re Invited (But Your Friend Can’t Come)’도 그렇고, 그냥 80년대 AOR/팝 메탈이 1993년 시점에서 보여줄 수 있었던 첨단이었다고 해도 무방해 보인다. 달리 말하면 그 개차반 대마왕이었던 Vince Neil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한 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Warner Bros, 1993]

Wolverine “Anomailes”

“A Darkened Sun” EP를 제외한다면 Wolverine의 10년만의 복귀작. 저 EP도 어엿한 작품이거늘 왜 빼고 얘기하냐 한다면 전혀 할 말 없지만, 사실 밴드의 앨범이라기보다는 동명의 단편영화의 스코어 격으로 발표되기도 했거니와 밴드 본인들도 그건 공식 앨범은 아니라는데 박자를 맞춰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음악은 10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이전의 Wolverine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간다. 이들을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라고 부르곤 하지만 사실 그리 기타 리프의 힘이 강하진 않고 그보다는 신서사이저나 약간의 일렉트로닉스를 통해 공간감 넘치는 사운드를 구현하는 데 좀 더 신경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곤 했던 밴드인데, 이번 앨범에서도 좀 더 묵직해지긴 했지만 그런 방향성에는 전혀 변화가 없어 보인다. ‘A Sudden Demise’ 같은 정도를 제외하면 강력한 리프는 찾아보기 어렵고, 보통 화려한 드러밍을 동반한 변화무쌍한 리듬감을 과시하는 것이 이 장르의 통례라면 적극적인 드럼머신 사용과 때로는 앰비언트에 가까울 정도의 사운드는 사실 메탈 팬에게 이 밴드를 추천하기 망설이게 하는 면이 있다. 좀 더 고전적인 발라드 형태의 곡들이 많기는 하지만 덕분에 이 앨범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밴드는 (최근의)Riverside이다.

그래도 앨범을 조금은 지루한 발라드 패키지마냥 느껴지지 않게 하는 것은 감성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뽐내는 보컬과 무척이나 연극적인 전개, 그리고 자칫 무척 심심해 보일 수 있는 음악을 화려하게 덧칠하는 건반이다. ‘Scarlet Tide’의 결말은 근래 들어본 프로그레시브 메탈 앨범들 중에 가장 감상적이면서도 기억에 남는 부분일 것이다. 애인에게 차이고 멜랑콜리한 뭔가를 듣고 싶은데 그래도 청승맞아 보이긴 싫다면 최고의 선택일 것이다. 물론 혹시 Wolverine 듣는다고 차인 거라면 달리 생각해 봐야겠지만 그럴 리가 있을리야?

[Music Theories Recordings,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