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owar “Hail to England”

지난 26일에 Ross the Boss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기에 간만에. 솔직히 Conan the Barbarian 컨셉트를 가장 멍청한 형태로 구현해내는 마초 메탈 밴드의 이미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밴드처럼 여겨지는 편이어서인지 이 밴드를 좋아한다고 자신있게 밝히는 이들은 메탈헤드 중에서도 별로 본 적이 없는 편이다. 따지고 보면 이미 Judas Priest 같은 선배들이 장르의 모범을 보여준 이후에도 헤비메탈보다는 하드록에 가까운 음악을 들고 데뷔한 밴드인만큼 장르의 역사에 비추어도 선구적이었다라기엔 많이 부족할 것이고, 저 근육 마초의 이미지마저 이미 Heavy Load가 이들보다 앞서 좀 더 있어보이는 형태로 보여주었으며, 싼티나는 마초맨의 모습이라면 이들보다는 역시 커리어 전체를 싼티로 휘감고 있는 Thor 같은 사례가 떠오르니 Manowar는 어쨌든 어떤 면에서건 선두주자였다기엔 2% 부족해 보이는 편이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인기야 물론 많았지만) 하드록 색채 덕에 근육만 키웠지 힘은 별로 없어보였던 2집까지의 모습을 일신하고 이 “Hail to England”에서 밴드는 비로소 힘이라면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어보이는 강력한 밴드로 거듭난다. 간결하지만 때로는 Iron Maiden이 연상될 정도로 탄력 있는 리듬감에 실린 강력한 리프가 돋보이고, 그러면서도 때로는 초창기 스래쉬메탈의 공격성을 보여주기도 하며(‘Kill with Power’), Heavy Load가 소시적에 보여준 극적인 구성을 좀 더 어두운 전개로 재현하기도 한다(‘Bridge of Death’).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선동적인 톤으로 불러주는 ‘metal makes us strong’ 같은 가사를 듣고서 외출하면서 바지 입는 걸 깜박하고 나온 듯한 화끈거림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훗날 트루 메탈을 외치는 수많은 고집불통 메탈헤드들의 세뇌의 근원 어느 한켠에는 Manowar의 기여가 있다는 점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양심상 좋은 곡이란 말은 못하겠지만 ‘Black Arrows’. 밴드를 상징하는 모습 중 하나인 Joey DeMaio의 베이스 솔로는 물론이거니와 서두의 ‘Let each note I now play be a black arrow of death, sent straight to the hearts of all those who play false metal’이란 외침은… 80년대 메탈 역사의 가장 코믹하면서도 상징적인 어느 한 순간임이 분명할 것이다.

[Music for Nations, 1984]

Wildside “Under the Influence”

Nirvana의 “Nevermind”가 나온 것이 1992년 1월이었으니 이미 시절은 헤어메탈을 원하지 않고 있었을 1992년에 패기있게 트렌드 따위 신경쓰지 않고 1988년에 나왔으면 대박났을 법한 사운드를 선보인 Wildside의 데뷔작. 그래도 어쨌든 Capitol에서 앨범이 나왔고 국내에도 라이센스될 수 있었으니(추억의 EMI/계몽사) 시대를 잘못 타고났을지언정 나름 받은 기대는 적지 않았을 것이고, Van Halen의 프로듀서였던 Andy Jones가 키를 잡고 5150 스튜디오에서 녹음했으니 레이블도 밀어줄만큼은 밀어줬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앨범의 내용물을 살펴보면 그런 레이블의 기대와 투자는 결코 괜한 것이 아니었으며 이 앨범에 흔히 붙곤 하는 저주받은 걸작 류의 문구가 과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납득할 수 있다. Axl Rose와 Vince Neil을 적절히 짬뽕한 듯한 Drew Hannah의 걸출한 보컬과 Danger Danger, Tuff, Dangerous Toys 등 다양한 밴드들의 흔적을 두루 찾아볼 수 있는 Brent Woods의 수려한 기타가 있으며, ‘Lad in Sin’처럼 의외의 극적인 구성을 발견할 수 있는 곡도 있다. 헤어메탈에 Savatage 한 스푼 더한 스타일이라면 좀 그런가 싶으면서도 어쨌든 이 밴드가 수려한 멜로디의 헤어메탈이되 그 이상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1992년에 이런 앨범을 내놓던 과감성은 어디가고 2집에서 그런지 물을 애매하게 먹은 스타일을 선보이면서 90년대 초반 메탈의 폭망이 무엇인지 지나치게 제대로 맛본 탓인지 생각보다 이 앨범을 들어봤다는 사람은 적어도 내 주변엔 별로 안 보이고, Drew Hannah는 이후 포르노 영화 제작을 하면서 살았다는 후문을 듣자니 다른 동네라고 반응이 더 좋았을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그런 걸 보면 때로는 인생은 좀 지나치게 타이밍이다. 듣다 보니 더욱 아쉬워진다.

[Capitol, 1992]

Lantlôs “Nothing In Between Forever”

Lantlôs의 2026년 복귀작. Prophecy 그랜드 서포터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레이블의 발매작들을 공식 발매일보다 조금 먼저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이고(이 앨범은 4월 3일이 발매일이다), 나쁜 점은 요새처럼 환율이 미쳐 날뛰는 시절에는 매월 월급마냥 빠져나가는 금액이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뭐 이렇게 받아보지 않더라도 언제고 사긴 했을 만한 앨범들이 많으니 시점의 문제이지 나갈 돈이었다라고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라면 그게 말이 되겠는가. 인생은 그보다는 대개 좀 더 팍팍하다. 각설하고.

이 밴드가 블랙게이즈로 시작하긴 했지만 Neige와의 결별 이후 Herbst의 사실상 세션맨들 낀 원맨 밴드(라고 하면 다른 멤버들은 그게 뭔 망발이냐 하겠지만)마냥 운영되면서 원래도 그리 짙지 않았던 블랙메탈의 기운은 본격적으로 걷혀나가고 있었고, 이 앨범은 이제 한때 블랙게이즈였고 하는 얘기도 그저 사족에 가까워보일 정도로 블랙메탈과 상관없는 음악을 담고 있다. 말하자면 “Melting Sun”과 “Wildhund” 식의 얼터너티브 메탈 노선을 더욱 끌고 나갔다랄 수 있겠는데, 어쨌든 Deftones와 Hum을 잘 섞어놓은 듯한 묵직함이 있었지만 이 앨범에서는 그런 묵직함도 어느 정도 덜어냈다랄까? 쟁글쟁글 기타에 일렉트로닉에 오토튠까지 등장하는 ‘Oxygen’은 오히려 90년대 얼터너티브 리바이벌을 꿈꾸는 밴드의 야심작처럼 보인다. ‘Numb TV Superstar’나 ‘Autoguard’의 몽환적인 분위기에 적당히 활기찬 일렉트로닉스가 묻은 얼터너티브는 듣다 보면 ‘My Girlfriend’s Girlfriend’를 연주하던 시절의 Type O Negative가 음울함과 보컬의 느끼함을 덜어내고 연주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곧 ‘WIildhunter’의 진중하지만 무겁지는 않은 마무리가 재차 Type O Negative의 그림자를 불러온다.

그러니까 레이블의 ‘슬럿지-팝’ 같은 홍보문구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어 보이고, 듣다 보면 여기저기서 생각나는 90년대 얼터너티브가 묵직함과 나름의 개성들을 동시에 보여주려 했던 모습들을 떠올리며 듣는 게 나을 것이다. 가끔은 이 양반 독일이 아니라 미국 출신 아닌지 궁금해진다.

[Prophecy, 2026]

Motörhead “1916”

Phil Campbell이 지난 13일에 돌아가셨다는데 이제야 이 소식을 접했으니 확실히 어디가서 메탈 열심히 듣고 다닌다는 소리는 못 할 팔자다. 이 앨범을 덕분에 간만에 들어보고 있으니 내가 Motörhead에 많이 소원했다는 생각도 새삼 든다. 하긴 Motörhead의 팬을 자처하는 이들은 주변에 널렸고 대개는 나로서는 비교할 수 없어 보일 정도로 강렬한 빠심을 과시하니만큼 나로서는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다. 각설하고.

Motörhead만큼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기복이 별로 없는 밴드도 드문 편이긴 하지만 생각하면 Phil Campbell이 참여한 시절은 사실 Motörhead의 보통 얘기하는 전성기와 딱 겹치지는 않는 편인데, 그래도 Phil이 참여한 Motörhead의 앨범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을 꼽는다면 이 앨범이다. 일단 국내 라이센스된 Motörhead의 몇 안 되는 앨범들 중 하나일 것이고, “Another Perfect Day” 같은 앨범과는 달리 CD로도 찍어준 덕에 그래도 돈없는 학생이 노려볼 만한 물건이었다. Motörhead의 앨범을 사면서 음악이 별로일까 걱정할 이유는 별로 없었으므로 돈만 있다면야 충분히 안전해 보이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만난 앨범은 Motörhead의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서도 이만큼 다양한 스타일(이래봐야 전부 Motörhead의 색채가 짙게 묻어나긴 하지만)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916’에서 무슨 루이 암스트롱마냥 신서사이저 연주에 거친 목소리로 노래하는 Lemmy의 모습은 무척 당혹스러웠지만, 앨범 마지막에서 주제에 걸맞게 병사들을 위한 Motörhead식 장송곡을 넣어놨다고 이해하면 넘어가는 데는 무리는 없다. 그런가하면 Motörhead식 로커빌리를 보여주는 ‘Going to Brazil’이나, 메탈의 리프가 얼마나 단순해질 수 있는지(그리고 Ramones가 얼마나 훌륭한 리프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을 보여주는 ‘Ramones’, 밴드를 상징하는 곡들 중 하나인 ‘Make My Day’ 같은 곡이 있다. 이제는 이 앨범을 만든 4인조가 모두 돌아가셨다는 게 그저 아쉬울 뿐이다. 명복을 빈다.

[WTG, 1991]

Ainur “Children of Hurin”

밴드명부터도 그렇지만 데뷔부터 지금까지 톨킨의 유산만을 소재로 앨범들을 내놓고 있는 이탈리아 심포닉 프로그레시브 밴드의 2집. 물론 톨킨의 작품을 소재로 삼은 록/메탈 밴드는 셀 수 없이 많고 특히나 서사를 따지는 프로그레시브 록에서는 더욱 그렇지만, 반지의 제왕과 실마릴리온이 아닌 작품을 소재로 삼은 사례는 찾아보면 없지야 않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딱히 떠오르지도 않는다. 톨킨의 작품을 통틀어서도 이만큼 우울한 이야기도 없을 것이고 파멸하는 주인공이라면 첫손가락일텐데 좀 의외다. 하긴 톨킨의 작품들 중에 후린의 아이들을 제일 좋아하기도 어렵긴 할 테니 일단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간다.

이 밴드의 특징이라면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라고는 하지만 기타/건반/드럼의 3인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나레이션이나 소프라노/바리톤 성부의 보컬, 베이스, 하프, 바이올린, 비올라, 프렌치호른, 플루트 등이니 일반적인 밴드라기보다는 많이 확대된 편성의 실내악단에 가까워 보인다는 점이다(멤버 중에는 댄서를 맡은 인물도 있다. 정말 춤을 추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세풍의 일부 간주나 마드리갈, 레치타티보 등 노골적으로 클래시컬한 일부분을 제외하면 결국은 Gianluca Castelli의 무그가 음악을 주도하는만큼 프로그레시브 레떼르가 어색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에너제틱한 리듬을 만나볼 수 있는 ‘Glaurung’s Death’나 웅장한 리프가 돋보이는 ‘The Sack of Nargothrond’ 정도를 제외하면 록 밴드다운 박력을 만나볼 수 있는 부분은 생각보다 별로 없어 보인다. 주인공이 프로도 저리가라 수준으로 온갖 고생을 다 하다 끝내 파멸에 이르는(좋게 얘기하면 무척이나 바그너적인) 원작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이렇게 잔잔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꽤 김빠진 음악이라는 게 사견이지만 세평은 들어본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훨씬 좋은 모양이다. 5유로 주고 산 앨범이 어딘가에서는 절대 사지 말라는 뻥카가 의도였는지 130파운드에 올라와 있으니 아쉬움은 어느새 땡잡았다에 가까운 유쾌함으로 변모한다. 다시 한 번 들어봐야겠다.

[Electromantic,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