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e “In the Key of Twilight”

Irae는 Morte Incandescente의 Vulturius가 하는 원맨 프로젝트이다. 사실 활동으로 따지면 근 몇 년간은 이전보다 뜸하긴 했지만 Morte Incandescente보다 양적으로는 확실히 풍요로운 결과물을 남긴데다… 어쨌든 2인조인 Morte Incandescente에 비해서는 정말 Vulturius 혼자서 다 해먹는 Irae 쪽이 진정한 본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본진이건 아니건 스타일도 비슷하고 판매고도 아마 큰 차이까진 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니만큼 그걸 구별하는 게 큰 의미까진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름의 개성을 찾으려는 시도인지 “In the Key of Twilight”는 기본적으로는 직선적인 리프가 중심이 되는 90년대풍 블랙메탈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좀 더 깔끔해지고, 밴드의 초창기에 비해서는 확실히 멜로딕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걸 삐딱하게 받아들이자면 무척이나 깔끔해진 녹음도 그렇고 Watain이나 Mgla 같은 밴드로 대표되는 비교적 ‘잘 팔리는’ 스타일을 추구했다랄 수도 있겠으나… Signal Rex에서 앨범 내는 블랙메탈 밴드에게 할 만할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디스토션과 어쿠스틱의 절묘한 병치를 보여주는 ‘Key to the Darkest Path’나, 앨범에서 가장 호쾌한 면모를 보여주는 헤비메탈풍의 ‘There Will be Wrath’ 같은 곡을 듣자면 음악 오래 하면서 이제 서사적인 것도 그렇고 이것저것 좀 다른 걸 해보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이 든다. 후려치는 거야 Morte Incandescente나 Flagellum Dei 등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다만… 빠지는 곡도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기억에 남는 곡도 없다는 게 아쉽다. 하긴 원래 멜로디감각으로 승부하는 밴드는 아니었으므로 어쩔 수 없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Signal Rex, 2025]

ROME “Gates of Europe”

질문 자체가 사실 말이 안 되는 얘기기는 하지만 폭삭 망해버린 네오포크계에 남은 단 하나의 슈퍼스타를 꼽는다면 가장 유력한 답은 아마도 ROME의 Jerome Reuter가 아닐까? Albin Julius는 사망했고, Death in June의 음악이 예전같지 않은지는 한참 지났으며, 업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고른 퀄리티를 유지하던 Sol Invictus도 2018년의 “Necropolis” 이후로는 앨범을 내지 않고 있으니, 거의 이견 없이 뛰어나다고 평가되는 앨범들을 여럿 내놓았으면서 지금껏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례를 꼽는다면 ROME 이상가는 밴드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파시스트 혐의 짙은 밴드들로 북적대던 네오포크 씬에서도 보기 드물게 거의 이견 없이 그쪽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지는 밴드라는 점도 아마 밴드의 생존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 ‘정치적으로 보기 드문’ 밴드의 행보 중 가장 인상적인 하나를 고른다면 바로 이 앨범일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자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앨범은 그 명확한 의도 때문인지 밴드의 다른 앨범들에 비해서는 좀 더 직설적인 가사를 담고 있다. 앨범의 구성 자체가 2022년 2월 24일 전쟁의 시작으로부터 시간 순서로 구성되어 있고, 음악 스타일도 때로는 거의 신스팝에 가까워 보이기도 하던 ROME의 그 이전 앨범들에 비해서는 신서사이저의 비중이 줄어들고 좀 더 ‘포크’의 원형에 다가간 편이다. 일렉트로닉의 비중이 높은 ‘The Death of a Lifetime’마저도 그 전개는 사색적인 분위기의 포크에 가깝다.

하지만 앨범이 전쟁의 잔혹성을 감추는 것은 아니다. ‘Eagles of the Trident’처럼 호전적인 비트와 함께 침략자들에 맞서 무기를 들라고 호소하는 모습과, ‘Yellow and Blue’에서 보여주는러시아에 대한 맹렬한 비판은 물론, 이러한 위협이 비단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역설하는 ‘The Black Axis’ 같은 곡들은 이 앨범이 ROME의 가장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앨범임을 다시금 보여준다. 말하자면 ROME 특유의 서정적인 면모를 잊지 않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현실에 대한 각성을 호소하는 앨범이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는 밴드 최고의 문제작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이고, 네오포크라는 장르가 폭망하긴 했지만 죽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는 앨범이기도 하다.

[Trisol, 2023]

Louder Than Hell : The Definitive Oral History of Metal

메탈의 역사에 대한 책은 많기도 하고 이제 와서 헤비메탈 일반에 대한 역사에 대한 책에 관심 있는 이는 사실 그리 많지는 않아 보인다. 2026년 현재 헤비메탈을 듣고 있고 그 이전부터 계속 들어 왔던 이라면 책이던 인터넷이건 어떠한 경로로든 헤비메탈의 역사에 대하여는 나름 이미 아는 바가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사실 헤비메탈의 입문자이거나 나름 음악을 찾아 들었지만 앨범에 대한 파편적인 얘기 외에는 정말로 아는 게 없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책의 효용성은 꽤 떨어질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의 특이점이라면 그냥 역사가 아니라 장르를 둘러싼 구술사(oral history)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록되지 않은 이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승자라고 하긴 뭣하고 주류적인 시각 정도로 한다면 헤비메탈의 역사에 대한 주류적 시각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나름 웅대한 포부가 깃들어 있지 않을까 기대케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이 책은 일반적인 ‘구술사’ 책과는 무척이나 거리가 멀다. 저자들은 헤비메탈의 ‘주류적’ 역사에서 언급되는 거물 밴드들 외에 마이너한 밴드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거나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사실 그런 밴드들은 앨범 하나 내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서브장르도 아닌 헤비메탈 전제에 대하여 다룬다면 그런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이 저자 2명의 과업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분량이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들은 그런 방식보다는 거물 밴드들의 알려지지 않은 (트리비아에 가까운)이야기들이나 그 주변인들(이를테면 레코딩 스탭들이나 팬들이나), 그네들의 음악이 당대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등한 이야기들을 더 상세히 풀어낸다. 말하자면 메탈을 좋아하지만 그 밴드와 앨범들과 동시대를 살지는 못한 후대의 팬들이 그 시절은 대체 어땠습니까? 라는 질문이 떠오른다면 들춰볼 만한 책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30여년간 400건 이상의 인터뷰를 수집해 만들었다는 이 책은 둠메탈이나 멜로딕 데스, 프로그레시브 메탈 등 많은 하위장르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알려주는 것이 없다(둠메탈이 무려 NWOBHM 챕터에서 잠깐 나오는 수준). 저자의 취향이었는지 Metallica의 빅 히트 덕분인지 그에 비해 스래쉬메탈은 꽤 많은 볼륨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얘기는 가장 차트에서 성공한 밴드들과 덜 히트한 소수의 밴드들에 한정될 뿐이다. 게다가 거물 밴드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중에는 흥미로운 것들도 있지만 굳이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하는 게 더 많은데다(Rob Flynn의 기저귀 얘기라던가), 전반부에 등장하는 헤비메탈 공룡들의 ‘선구자다운 당당함’과 후반부에 등장하는 좀 더 최근의 밴드들의 상대적으로 트렌드 지향적이며 ‘싸가지 없어 보이는’ 모습들의 병치가 무의식적이었다고 느껴지지 않는 지점이 있다. 섹스와 마약 얘기를 들어내면 별로 남는 게 없어 보이는 80년대의 부분은 저자의 기본적인 시선이 어느 쪽에 있을지를 짐작케 하는 부분이 있다.

덕분에 꽤나 자극적이고 맥주와 함께 할 잡담거리로는 최적일 이야기들을 가득 담고 있으니 실용성은 확실하겠지만, 사실 헤비메탈 얘기를 하면서 술 먹을 이들이 별로 없음을 생각하면(애초에 술 먹으면서 굳이 무슨 메탈 얘기란 말이냐) 그것도 생각보다는 제한적이다. 끝내 본전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Katherine Turman & Jon Wiederhorn 저, HarperCollins]

White Willow “Signal to Noise”

White Willow가 본격 프로그 밴드냐 하면 밴드의 초기에는 이견이 없었을 것이고(레이블부터가 Laser’s Edge였으니) 같이 노는 밴드들이 Anglagard나 Anekdoten이었으니 그렇게 얘기하는 게 밴드의 현실과도 맞았겠지만 적어도 “Storm Season” 이후 이 밴드의 음악이 프로그레시브라는 레떼르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모습을 많이 품기 시작했던 것도 분명해 보인다. 당장 앨범의 프로듀서부터 Tommy Hansen인데다 “Storm Season”부터 본격적으로 묵직해지기 시작한 기타 리프, 아무래도 The Gathering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새로운 보컬리스트 Trude Eidtang의 목소리 등은 밴드의 음악을 다채로운 양상의 전개가 돋보이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전형보다는 좀 더 직선적이고 힘있게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이끈다. 밴드 초창기의 포크 바이브 깃든 심포닉 프로그는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프로그레시브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단적인 사례는 ‘Splinters’나 ‘Ghosts’일 것이다. 이 밴드가 어떻게 Anglagard나 Anekdoten과 비교될 수 있었을지에 대한 답변을 무그와 해먼드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통해 제시하는 것이 후자라면, 전자는 The Gathering이 “How to Measure a Planet?”을 만들기 전에 King Crimson을 듣고 감명깊은 나머지 방향을 좀 틀었다면 나오지 않았을까 싶은(그런데 정작 기타는 Mike Rutherford를 헤비하게 만든 듯한 연주라 더욱 이색적인) 스타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에 활동하는 밴드로서 그리 브리티쉬한 사운드를 내고 싶지 않았던 네오프로그 밴드거나, 기존에 여성보컬을 앞세운 둠-데스를 연주하다가 새로운 방향성을 찾고 싶었던 밴드라면 참고할 만한 앨범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네오프로그는 이미 네오프로그라는 용어가 등장할 때부터 반쯤은 죽어 있던 사조나 마찬가지였고, 2006년이면 많은 내노라 하던 둠-데스 밴드들이 모던록 쪽으로 삐딱선을 타다가 망해버린지도 조금 지난 시점이었으니, 2006년에 그런 ‘참고할 만한 앨범’을 내는 건 사실 죽은 자식 고환… 만지기나 마찬가지처럼 보일 가능성도 높다. 그러니까 이런저런 프로그 사이트에서 이 앨범을 밴드의 가장 떨어지는 작품으로 꼽는 건 이유없는 일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네오프로그도 좋아하고 적당히 팝적인 둠-데스도 열심히는 아니지만 간혹 찾아듣는 이로서는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 특히나 ‘Ghosts’나 ‘Dusk City’의 다소 몽환적이면서도 강렬한 연주는 밴드가 자신들의 강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참고로 이 앨범에서 베이스를 맡은 Marthe Berger Walthinsen는 Cybele의 데뷔작에도 참여했던 바로 그 분.

[The Laser’s Edge, 2006]

Cybele “Interactive Playground”

말 나온 김에 Cybele의 2집까지. 사실 별 얘기 없이 커버만 보더라도 밴드의 데뷔작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이 앨범을 마주했을 때의 당혹감을 넘어선 골때림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퀄리티 얘기는 둘째치고 어쨌든 분명히 메탈 앨범이었던 데뷔작을 냈던 5인조 밴드는 그간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기타를 담당하던 Elisabeth Østeby와 새로운 보컬인 Hilde Wahl의 듀오로 재편되었고, 메탈 못해먹겠다 싶었는지 무슨 유로댄스 그룹이라도 보는 듯한 커버로 새로운 앨범을 내놓았다. 웃기는 것은 멤버는 2명인데 커버에는 보란듯이 4명이 등장하고 있고, 제일 오른쪽의 탈모가 격렬하게 진행 중으로 보이는 저 청일점은 누군가 싶다. 밴드명이 키벨레인데 남성 멤버를 굳이 영입하는 게 맞는 선택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음악은 이후 많은 둠-데스 밴드들이 모던록 물을 먹으면서 말랑말랑해지는 경로를 본격적으로 걷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그런 방향성에서도 이들이 그리 빠른 것은 아니었고 이미 The Gathering이 “How to Measure a Planet?”으로 본격적인 방향전환을 예고하는 모습을 본 만큼 이게 그리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문제라면 그래도 메탈로 할 만큼 하고 그냥 평범한 모던록이 아니라 사이키델릭 스페이스록 마냥 나름의 다양한 시도들을 보여줬던 The Gathering에 비한다면 이들은 그냥 The Cranberries 스타일(특히나 ‘Unison’)을 좀 더 하드한 리프로 풀어내는 듯한 스타일에 가깝다는 점? 이렇게 서정으로 밀어붙이자면 The 3rd and the Mortal 정도는 돼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렇게 또 극적이진 않은지라 결국 퍽 밋밋해 보이는 결과물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Dreams’의 단정한 멜로디를 듣자면 이 밴드가 조금만 더 극적인 구성을 쓸 줄 알았다면 White Willow 같은 프로그 밴드처럼 될 수도 있었겠다 하는 생각도 들고, ‘Living Satellites’ 처럼 적당히 댄서블한 히트곡 하나 내보자는 야심이 엿보이는 곡을 듣자면 어차피 메탈 안 할 거 궁극의 댄스곡도 좀 넣고 해서 이런 팝송으로만 앨범 꽉 채웠다면 더 나을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 하다. 망했다고 아쉬울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이만큼 제대로 묻힐 정도는 또 아닌지라 한번쯤은 들어보시는 것도.

[Voices of Wonder,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