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throne “The Underground Resistance”

Darkthrone의 16집. 뭐 이 긴 커리어의 밴드의 앨범 가운데 16집이 딱히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면 뾰족한 답이 없어 보이는 건 사실인데, 그래도 최소한 “Ravishing Grimness” 이후 밴드가 예전의 블랙메탈 밴드와는 좀 달라졌음은 분명해졌고, 슬슬 강해지던 펑크풍은 “Hate Them”에서 사실은 Motörhead에 대한 Fenriz의 팬심을 반영한 모습이 아니었나라는 짐작을 설득력 있어 보이게 하는 정도에 이르렀으며, 2007년의 “NWOBHM” EP는 이런 변화를 계속 지켜보던 이들에게는 아마도 결정타에 가까웠다. 이후 “F.O.A.D”부터의 모습은 어째 Motörhead도 아니고 Discharge풍 크러스트펑크에 가까워 보인다는 게 의외기는 했지만 그래도 밴드가 메탈에서 펑크로 방향성을 틀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아 보였다. 여기까지가 아마 “Circle the Wagons”까지의 행보에 대한 일반의 대체적인 단평(이자 내 생각과도 그리 다르지 않은 얘기)일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쌓아놓은 까방권을 꾸준하게 깎아먹는 행보를 보여주던 Darkthrone이 반전을 보여준 것이 바로 이 “The Underground Resistance”라고 생각한다.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인지 이 앨범에서 Darkthrone식의 크러스트펑크는 그 이전의 Motörhead풍과 어울려 또다른 밴드의 개성을 완성해 냈다. 덕분에 어찌 보면 밴드가 ‘펑크쓰론’ 소리를 듣기 시작한 이후에 나온 가장 메탈릭한 앨범이라 할 수 있을 텐데, ‘Dead Early’를 위시한 Nocturno Culto의 곡이 좀 더 펑크적인 모습이 강한 반면 ‘Valkyrie’, ‘The Ones You Left Behind’ 같은 Fenriz의 곡은 때로는 Motörhead를 넘어 파워 메탈에 가까워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그래도 지울 수 없는 펑크풍이 있는 탓에 파워 메탈보다는 Overkill이나 초기 Anthrax 같은 스래쉬가 생각나는 게 사실이지만 어쨌든 밴드가 ‘메탈 밴드’로서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게다가 그동안 은근 욕 좀 먹은 걸 본인들도 알아서인지(사실 보여준 모습에 비하면 그 정도 욕은 양반이겠지만) 앨범은 Darkthrone의 이전까지의 여느 앨범들에 비해서도 더욱 다양한 모습들을 담고 있다. Darkthrone의 곡 치고는 상당히 둠적인 색채가 강한 ‘Come Warfare, the Entire Doom’ 의 모습이나 ‘Valkyrie’ 의 어쿠스틱 모티브, (익숙한 미니멀과 더불어)앨범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건강한’ 느낌의 파워메탈식 코러스는 우리 Fenriz 선생이 예전부터 듣던 헤비메탈 앨범들의 모습들을 앨범에 집어넣으면서 낄낄거리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난 이 앨범이 Darkthrone의 디스코그라피를 통틀어서도 되게 유쾌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엄청 재밌게 산다 싶어서 새삼 부러워진다.

[Peaceville, 2013]

Erik Norlander “Music Machine”

Erik Norlander가 얼마나 인정받는 뮤지션인지는 사실 감이 잘 없는데, 난 이 분이 동화적인 맛은 좀 덜하더라도 영국에 Clive Nolan이 있다면 미국에는 Erik Norlander가 있다…는 식으로 비견될 만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Rocket Scientists는 괜찮은 밴드이지만 그래도 Arena나 Strangers on a Train이 보여준 고점에는 미치지 못하고, 때로는 격정적인 데가 있지만 어쨌든 네오프로그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Clive Nolan에 비해서는 훨씬 하드록이나 헤비메탈의 영역에 발을 쉬이 담그는 Erik Norlander인지라 이런 비교는 내가 말해 놓고서도 꼭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나름의 록 오페라나 뮤지컬 식의 작품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으면서 본인 포지션이 포지션인지라 빈티지 키보드 연주가 상당한 활약을 보여주는 류의 스타일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유사점도 분명해 보인다. 말이 하드록이나 헤비메탈이지 사실 Erik이 그렇다고 파워를 추구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저 적당히 메탈릭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던 Ayreon 같은 음악을 하고 싶었으나 그 정도의 인맥왕까지는 아니었던지라 여건 되는 대로 만들다보니 나온 결과물이 역시나 그만큼 화려하진 않을지언정 Ayreon풍을 어쨌든 담고 있었다… 정도로 얘기하는 게 진실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런 뮤지션의 스타일이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 작품이 바로 “Music Machine”일 것이다. 다른 앨범에서도 어느 정도 그랬지만 이 앨범에서 Erik은 Arjen Lucassen에 밀리지 않으려는 듯 화려한 게스트진을 보여주는데, Mark Boals, Vinnie Appice, Kelly Keeling, Buck Dharma, Gregg Bissonette 등의 이름부터가 애초에 이 앨범이 평이한 네오프로그 앨범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실제로도 프로그레시브한 전개가 없지 않으나 앨범은 Ayreon의 스타일을 좀 더 직선적이고 하드하게 만든 류의 스타일에 가까워 보인다. 특히나 ‘Heavy Metal Symphony’나 ‘Beware the Vampires’ 같은 곡에서 보여주는 네오클래시컬이나 Dio풍 헤비메탈의 면모는 Erik의 다른 솔로작에서도 이 정도로 노골적으로 드러난 적이 없을 것이다. Buck Dharma의 참여도 그렇고 군데군데 묻어나는 Blue Oyster Cult 풍의 하드록이나 ‘When Johnny Comes Marching Home’의 변주 같은 부분을 보면 미국식으로 변주된 네오프로그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한 줄로 정리한다면 록스타를 꿈꿨으나 그 정도로 성공하지는 못한 어느 90년대 프로그 뮤지션이 본인의 꿈까지도 살짝 담아 민들어낸 ‘어느 록스타의 흥망성쇠’ 식의 네오프로그 오페라 앨범… 정도로 이 앨범을 얘기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탓에 좀 더 제대로 ‘proggy’한 음악을 원하는 이들은 이 앨범보다는 “Into the Sunset”을 듣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그래도 난 꽤나 재미있게 들었다. 네오프로그로서 가장 프로그레시브 메탈에 다가간 부류라 할 수도 있겠고, Clive Nolan 얘기로 시작해서 말이지만 “The Crimson Idol” 같은 컨셉트를 적당히 동화적으로 풀어낸 류의 앨범이랄 수도 있겠다. 해서 동의하는 이 별로 없으나 오늘도 Clive Nolan과 Erik Norlander는 사실 그 놈이 그 놈이다… 론을 밀어붙여 본다. 언젠가 한 명은 편들어주겠지 뭐.

[Think Tank Media, 2003]

Utumno “Across the Horizon”

Utumno는 꽤 독특한 밴드이다. 1991년에 등장한 스웨덴 데스메탈 밴드이니 Nihilst나 Dismember 등을 위시한 스웨디시 데스메탈의 선구자들보다는 한 박자 늦은 셈이고, “Left Hand Path”나 “Like an Ever Flowing Stream” 등이 이미 스웨디시 데스의 어떤 ‘전형’을 분명히 보여준 이후에야 밴드의 사실상의 유일작인 이 EP(엄밀히 말하면 1991년의 “The Light of Day” EP가 있기는 한데, 말이 EP지 이 앨범에 모두 수록되어 있는 2곡이 전부인 7인치 싱글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무척이나 비싸기도 하고)가 나왔지만 동향의 밴드들에 비해서는 플로리다 데스의 면모들을 좀 더 많이 가지고 있다. 확실히 동시대의 Grave나 Entombed 등에 비해서는 좀 더 스래쉬적이고, 트레몰로를 자주 들을 수 있지만 그만큼이나 조금은 느긋한 템포로 연주되는 뒤틀린 리프가 주도하는 음습함은 이 밴드가 스웨디시 데스의 그 ‘전형’에서 벗어나고 있지는 않으되 나름의 개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개성이 무엇인가 하면 스웨디시 데스 특유의 거친 맛을 분명히 간직하고 있지만, 프로그레시브하지 않으면서도 역동적인 전개와 ‘The Light of Day’ 같은 곡이 단적으로 보여주는듯 음울한 분위기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는 부분이 아닐까? Tomas Skogsberg의 프로듀스도 그 음울함 가운데 고스트 노트까지도 분명히 잡아내면서 모든 파트들의 존재감을 살려주는데, Sunlight Studio 사운드의 최고 장점이 연주의 명료함을 살려내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Tomas Skogsberg의 프로듀서로서의 최고 역작에는 여러 의견이 있기야 하겠지만 이 “Across the Horizon”이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일 것이다. 30분 조금 안 되는 6곡 중 빠지는 곡도 하나도 없고, 때로는 초기 Sepultura마냥 거칠지만 클린 보컬과 리버브를 이용한 자욱한 분위기를 뒤로 하고 At the Gates 풍의 인상적인 멜로디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노래하시는 Jonas Stålhammar는 훗날 정말로 At the Gates에 가입해 기타를 치시는 분이다. 이 EP가 아마 최고의 이력서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스웨디시 데스의 팬이라면 한 번쯤은 반드시.

[Cenotaph, 1993]

Mefitis “Offscourings”

야구팀도 도망가고 캘리포니아에 강림한 고담시티 마냥 이미지가 박힌 오클랜드 출신 데스메탈 밴드의 2집. 따지고 보면 2007년부터 시작된 나름 잔뼈 굵은 밴드지만 2024년에 나온 “The Skorian/The Greyleer”는 이 밴드가 이미 두 장의 앨범을 통해 얻은 위명에 비해서는 조금은 평범하다는 인상을 준 편이었다. 사실 레이블(Profound Lore)도 그렇고 신경쓴 티가 역력한 만듦새를 보면 그건 밴드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이미 2024년에 청자들은 Blood Incantation나 Tomb Mold를 위시해서 2020년대에 등장한 ‘스페이스한’ 데스메탈에 이미 익숙해진 탓에 가까워 보인다. 나쁘다는 건 아니고 본전 생각 살짝 났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밴드에게 현재의 명성을 안겨 준 것은 수려한 데뷔작도 있긴 하지만 단연 이 “Offscourings”가 아닐까 싶다. “Emberdawn”에서부터 그랬지만 이 밴드가 동시대의 다른 데스메탈 밴드들과 구별된 것은 80년대 스래쉬메탈/데스메탈 고전에 대한 향수를 감추지 않으면서도 그런 모습들을 명민하게 배치해서 마치 새로운 음악을 듣는 듯한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이었는데, 이 앨범에서도 그 점은 다르지 않지만 “Punishment for Decadence” 시절의 Coroner와 Voivod를 열심히 듣고 연구했는지 헤비 리프는 전작에 비해서 확실히 줄어들었고, 그보다는 메인 멜로디를 화려한 테크닉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형태들로 변주하면서 그 프레이즈들이 서로 ‘미끄러지는’ 지점을 통한 최면적인 분위기가 앨범의 중요한 부분을 꿰찬다. 사실 이런 방식은 데스메탈보다는 ‘weird folk’ 류의 음악에서 많이 등장하는 모습이고, 그리 클래시컬하지는 않다는 점만 빼면 오히려 소시적의 Obtained Enslavement를 생각나게 하는 부분도 있는데, 덕분에 처음에는 꽤 당황스러운 구석이 있지만 근래의 데스메탈 중에서 이만큼이나 극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앨범은 아마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Sonstead Blight’는…. Gorguts나 Deathspell Omega의 길을 걷지 않았지만 프로그레시브에 관심이 많았던 데스메탈 밴드가 80년대 스래쉬/데스의 유산을 잃지 않으면서 보여줄 수 있는 또다른 상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 귀에는 호오를 좀 타겠지만 이 정도라면 프로그레시브 데스의 팬이라면 아마 근 몇 년간 최고의 앨범으로 꼽을 이들도 있어 보인다. 일단 난 그쪽 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앨범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솔로도 별로 없는 앨범이 이렇게 화려할 수 있다는 게 새삼 또 신기해진다.

[Hessian Firm, 2021]

Darkthrone “Pre-Historic Metal”

블랙메탈의 화신 같은 밴드였다가 슬슬 소시적 좋아했던 음악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크러스트펑크의 기운을 과시하던 Darkthrone은 슬슬 “F.O.A.D”부터는 본격 헤비메탈의 면모를 함께 드러내기 시작했고(일단 멤버 본인들부터가 Manilla Road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후 앨범마다 어느정도 갈짓자 행보를 보여주긴 하지만 헤비메탈의 기운은 어느 정도는 항상 분명했다. 굳이 따지자면 Celtic Frost풍으로 블랙메탈을 변주한 모습을 보여준 “Old Star”나, 블랙이라기엔 둠에 가까워 보였던 “Astral Fortress” 정도가 좀 애매하다 싶긴 하지만 이 80년대 헤비메탈 빠돌이 밴드에게 헤비메탈 바이브는 버릴 수 없는 무언가가 된지 오래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럼 제목부터 흘러가도 잔뜩 흘러간 시절의 메탈을 탐구하는 듯한 “Pre-Historic Metal”은 어떨까? 굳이 pre-historic이란 말을 쓴 의도를 정확히 점칠 수는 없지만 처음부터 Mercyful Fate풍 리프로 Manilla Road식 헤비메탈을 재현하는 듯한 ‘They Found One of My Graves’가 등장하니 앨범의 정체성은 가히 분명하고, 예전부터 (반쯤은 개그마냥)보여주던 모습이기도 하지만 Fenriz의 약간 김빠진 King Diamond 모창을 만나볼 수 있는 ‘The Dry Wells of Hell’에 이르면 밴드의 취향이 변하지 않았음은 더욱 명확해진다. 사실 듣다 보면 Mercyful Fate보다는 이쯤 되면 Candlemass에 가까운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만든 양반의 잡식성 취향을 대변하듯 다양한 80년대 메탈의 흔적을 남겨놓는 앨범인만큼 이런 모습들을 난삽하다고 싫어할 사람도 꽤 있지 않을까 싶다. ‘Eat Eat Eat Your Pride’처럼 본격 크러스트펑크 재현의 시간을 갖는 곡이 많은 청자가 원했을 만한 화끈함을 선사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집중하기 어려워 보이는 앨범이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하긴 커버부터 뭔가 트롤링에 가까워 보이는 모양새이니 그런 게 밴드의 의도였을지도 모르지만 우매한 청자로서는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구나.

[Peaceville,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