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bele “Interactive Playground”

말 나온 김에 Cybele의 2집까지. 사실 별 얘기 없이 커버만 보더라도 밴드의 데뷔작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이 앨범을 마주했을 때의 당혹감을 넘어선 골때림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퀄리티 얘기는 둘째치고 어쨌든 분명히 메탈 앨범이었던 데뷔작을 냈던 5인조 밴드는 그간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기타를 담당하던 Elisabeth Østeby와 새로운 보컬인 Hilde Wahl의 듀오로 재편되었고, 메탈 못해먹겠다 싶었는지 무슨 유로댄스 그룹이라도 보는 듯한 커버로 새로운 앨범을 내놓았다. 웃기는 것은 멤버는 2명인데 커버에는 보란듯이 4명이 등장하고 있고, 제일 오른쪽의 탈모가 격렬하게 진행 중으로 보이는 저 청일점은 누군가 싶다. 밴드명이 키벨레인데 남성 멤버를 굳이 영입하는 게 맞는 선택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음악은 이후 많은 둠-데스 밴드들이 모던록 물을 먹으면서 말랑말랑해지는 경로를 본격적으로 걷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그런 방향성에서도 이들이 그리 빠른 것은 아니었고 이미 The Gathering이 “How to Measure a Planet?”으로 본격적인 방향전환을 예고하는 모습을 본 만큼 이게 그리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문제라면 그래도 메탈로 할 만큼 하고 그냥 평범한 모던록이 아니라 사이키델릭 스페이스록 마냥 나름의 다양한 시도들을 보여줬던 The Gathering에 비한다면 이들은 그냥 The Cranberries 스타일(특히나 ‘Unison’)을 좀 더 하드한 리프로 풀어내는 듯한 스타일에 가깝다는 점? 이렇게 서정으로 밀어붙이자면 The 3rd and the Mortal 정도는 돼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렇게 또 극적이진 않은지라 결국 퍽 밋밋해 보이는 결과물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Dreams’의 단정한 멜로디를 듣자면 이 밴드가 조금만 더 극적인 구성을 쓸 줄 알았다면 White Willow 같은 프로그 밴드처럼 될 수도 있었겠다 하는 생각도 들고, ‘Living Satellites’ 처럼 적당히 댄서블한 히트곡 하나 내보자는 야심이 엿보이는 곡을 듣자면 어차피 메탈 안 할 거 궁극의 댄스곡도 좀 넣고 해서 이런 팝송으로만 앨범 꽉 채웠다면 더 나을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 하다. 망했다고 아쉬울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이만큼 제대로 묻힐 정도는 또 아닌지라 한번쯤은 들어보시는 것도.

[Voices of Wonder, 2001]

Cybele “Brightly Blackhearted”

이 호젓하고 인기 없는 블로그의 특징 중 하나라면 찾아주시는 이들의 거의 대부분이 이미 주인장과 안면이 있는 고인물같은 곳이라는 점인데(이 지점에서 나의 대중성을 몰라주는 세상에 일침을 날리려 하니 옆에서 헛소리하지 말라고 하는구나), 그럼에도 그 높은 장벽을 넘어 찾아주시는 분들이 보이면 으레 눈에 띄기 마련이고 심지어 댓글까지 남겼다면 더욱 그러하며 그 댓글이 대체 알 수 없는 내용이라면 그 진의를 파악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쓰기 마련이다. 뭐 나쁜 뜻은 아니었을 테니 넘어가고.

어쨌든 ‘여자로환상해’ 먹는다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나온 김에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밴드 하나. 사실 음악으로는 나쁠 것까지는 없어도 굳이 기억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고 실제로도 밴드의 생명은 그리 길지 않았으나 블랙메탈이 그래도 한창 주목을 받던 시기에 국내에까지 정식수입된 Head Not Found에서 나온 노르웨이 둠-데스 밴드의 앨범, 게다가 무려 멤버 전원이 여성이라고 하면 한번쯤 관심이 가기는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여성보컬을 앞세운 둠-데스 류는 개성있다는 소리를 듣기엔 너무 흔해져버린 90년대 후반이었고, 한편으로는 Dead Can Dance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Lene Vaagland의 보컬이 중심이 된 음울함(달리 말하면 Anneke 좀 많이 힘없는 버전)과 이를 뒷받침하는 건반이 앨범의 분위기를 꽤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지만, ‘Haze’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이 앨범을 다시 찾게 할 멜로디는 물론 인상적인 면모도 찾아보긴 어렵다. 느긋한 템포와 분위기, 바로 저 여성 보컬의 음울함 덕분에 어찌 보면 그 시절 비슷하게 분류되던 다른 밴드들에 비해서도 ‘goth’의 색채가 강한 편이었고, 그렇다면 사실 소위 ‘고딕 메탈’이라는 레떼르에 말 그래도 걸맞는 사례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밴드에겐 아쉽게도 저 용어는 그리 엄밀한 의미로 사용되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저 ‘Haze’ 만큼은 90년대 후반 둠-데스의 모범사례들 중에 끼워주기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우리의 Metalion 선생이 뭘 듣고 계약했을지는 충분히 짐작되는 부분이 있다. 사실 Theater of Tragedy 정도 레벨이면 모를까 이런 밴드와 As Divine Grace 정도 이름을 구별짓는 거라면 결국 좋은 멜로디가 있느냐의 정도일 것이다. 아쉽게도 Cybele는 그게 안 됐을 뿐이다. As Divine Grace가 그게 됐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좀 망설여지지만 뭐 그렇다.

[Head Not Found, 1998]

Black Funeral “Journeys Into Horizons Lost”

Black Funeral은 미국 블랙메탈의 꽤 오래 된 이름이고 지금까지도 비교적 꾸준하게 활동하는 보기 드문 사례이지만 커리어를 통틀어 이 밴드의 음악이 그리 기억에 남았던 적은 개인적으로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오래 된 밴드들이 많이들 그렇지만 데뷔작인 1995년의 “Vampyr – Throne of the Beast”가 보통 평이 좋은 편이고, 앨범명 덕분인지 그 시절의 소속 레이블이었던 Full moon Prod.는 이 밴드를 ‘vampyric black metal’이라고 소개하곤 했는데, 그렇다 보니 이 밴드의 앨범을 구한 이들은 Cradle of Filth 스타일을 기대하고 구하는 경우가 꽤 많았으며 30분간의 구리구리함에 질려버린 나머지 USBM에 오랫동안 학을 떼어버린 경우도 왕왕 있었다. 남 얘기인 듯하지만 내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저 데뷔작과 1년밖에 차이나지 않는 이 데모는 생각보다 훨씬 인상적인 음악을 담고 있다. 어쩌다 보니 뱀파이어 얘기로 밴드가 시작되긴 했지만 처음에는 반지의 제왕 이야기를 하던 밴드임도 드러나고, 영화판에서는 그냥 엘프들 죽으면 가는 천국마냥 묘사되던 발리노르가 원래는 전쟁도 하고 그리 평화로운 곳만은 아니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밴드를 주도하는 Akhtya Nachttoter가 Darkness Enshroud에서 다크 앰비언트가 어디까지 졸릴 수 있는지를 보여줬던 뮤지션임을 생각하면 때로는 Von이나 Blasphemy마저 떠오르는 이 거칠고 치열한 블랙메탈이 신기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데, 이런 거 하느라 피곤했으니까 그런 침실용 음악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양심상 이걸 명작이라고는 못 하겠으나… 인트로 ‘Within the Ballinok Mountains’는 그래도 정통적인 스타일로 분전하고 있는 뒤의 블랙메탈 트랙들을 조금은 초라하게 만들 정도로 멋들어진 분위기를 보여주는만큼 일청을 권한다. 과장 섞으면 90년대 중반 블랙메탈의 잊혀진 빛나는 순간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쓰고 보니 앨범에서 인트로가 제일 좋다고 하는 게 칭찬인가?

[Abyss, 1994]

Paradox Twin, The “A Romance of Many Dimensions”

The Paradox Twin은 2018년부터 앨범을 발표해 왔고 나름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 온 영국 프로그 밴드라고 하나 나로서는 처음 들어본다. 그래도 나온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는데 (많지만은 않지만)벌써부터 반응들이 나름 시끌시끌한데다… John Mitchell이 게스트로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지금껏 프로그레시브 록을 찾아 듣는다는 이라면 관심을 갖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당연히 나처럼 Arena나 Frost 같은 밴드를 좋아하는 경우라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그럼 나는 어쩌다가 이 밴드를 이제야 알게 되었는가? 하면 난들 이유를 어찌 알겠냐마는 앨범에서 흘러나오는 프로그레시브 ‘얼터너티브 록’ 사운드, 그러니까 메탈을 그만둔 이후의 The Gathering과 “Alternative 4” 이후의 Anathema를 연상시키되 적당한 일렉트로닉스와 프로그레시브한 구성을 통해 좀 더 극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류의 스타일을 마주하면 메탈헤드로서는 한 번에 꽂히긴 좀 어렵긴 했겠다는 생각도 든다. 섬세하지만 전체적으로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 때로는 이를 넘어 무력감을 묘사하는 이 앨범에서 – ‘Pixel Shader’ 정도를 제외하면 – 강렬함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Anathema의 “Weather Systems” 스타일에 적당히 거친 리프를 더한다면 비슷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Porcupine Tree 풍으로 나름의 격렬함을 보여주는 ‘My Main Function’이나, 이 앨범의 우울함을 마지막에 희망차게 바꿔놓는 멋진 보컬(과 John Mitchell의 솔로잉)이 돋보이는 ‘Nested Scratch’ 같은 곡이 있는만큼, 앨범의 매력적이지만 일반적인 사회인보다는 히키코모리에 가까워 보이는 화자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을 그저 우울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Bjork와 Stevie Nicks를 적당히 짬뽕한 듯한 여성보컬과 이상하게 그와 비슷하게 들리는 남성보컬의 듀엣이 돋보이는, 어둡지만 기대보다 훨씬 낭만적인 음악이라는 정도로 해 두자. 하긴 다차원의 로맨스라는데 당연한 얘긴가?

[White Star, 2026]

Këkht Aräkh “Morning Star”

“Pale Swordsman”으로 (좋든 나쁘든 간에)업계 최고의 어그로꾼으로 자리매김한 Këkht Aräkh의 신작. 로맨틱 블랙메탈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냐 아니냐를 떠나서 “Pale Swordsman”은 어쨌든 살짝 묻어 있는 포스트록의 색채만 빼고는 꽤 공고하게 블랙메탈의 컨벤션을 따라가는 앨범이었고, Lifelover풍의 건반을 제외한 리프는 의외로 90년대 중반 Darkthrone의 모습을 닮아 있기도 했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깔끔해진 음질로 선보이는 “Transylvanian Hunger” 짝퉁같은 느낌도 지울 수 없을 정도이므로, 사실 ‘로맨틱’ 어쩌고 하는 소개에 과하게 긁히지 않는다면 철혈의 메탈헤드가 이 앨범에 꽂혔다 한들 이상할 건 없어 보인다.

“Morning Star”는 어떤가? 우리의 이 어그로꾼은 앨범이 나오기도 전에 블랙메탈과는 아무 상관없는 나로서는 이름모를 뮤지션들(래퍼인 Bladee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특히 Varg²™은… 테크노 뮤지션의 블랙메탈식 말장난에 다름아닐 것이다)과의 협업을 예고함으로써 이미 상당한 우려와 어그로를 끌어놓았지만 그에 비해서 앨범은 꽤 무난한 블랙메탈에 가깝다. 중간중간 Ulver풍의 포크나 앰비언트를 곁들이는 전작과 유사한 스타일의 블랙메탈인데, 특히나 ‘Angest’나 ‘Land av evig natt II’는 좋았던 시절의 Judas Iscariot을 연상케 할 정도로 공격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포크 바이브 강한 ‘Genom Sorgen’처럼 전작에서 찾아볼 수 없던 멜로우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중간중간 보여주는 어쿠스틱 소품들은 사실 블랙메탈보다는 멜랑콜리한 포스트펑크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 면에서는 이 밴드가 성공적인지는 좀 애매하지만 확실히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Bladee가 그런 모습을 잘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래퍼라지만 오히려 Crying Orc보다도 멋들어진 클린 보컬을 선보여 사람을 놀래키지만, 역시나 Bladee의 손길이 닿았는지 언더그라운드 랩 느낌의 뮤직비디오, 꽤 우스꽝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비트의 배치가 모두 이 블랙메탈 앨범에 등장한다. 좀 더 들어봐야겠지만 되게 재미있는(삐딱하게 본다면 되게 ‘웃기고 자빠진’) 앨범이다.

[Sacred Bones,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