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tumno “Across the Horizon”

Utumno는 꽤 독특한 밴드이다. 1991년에 등장한 스웨덴 데스메탈 밴드이니 Nihilst나 Dismember 등을 위시한 스웨디시 데스메탈의 선구자들보다는 한 박자 늦은 셈이고, “Left Hand Path”나 “Like an Ever Flowing Stream” 등이 이미 스웨디시 데스의 어떤 ‘전형’을 분명히 보여준 이후에야 밴드의 사실상의 유일작인 이 EP(엄밀히 말하면 1991년의 “The Light of Day” EP가 있기는 한데, 말이 EP지 이 앨범에 모두 수록되어 있는 2곡이 전부인 7인치 싱글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무척이나 비싸기도 하고)가 나왔지만 동향의 밴드들에 비해서는 플로리다 데스의 면모들을 좀 더 많이 가지고 있다. 확실히 동시대의 Grave나 Entombed 등에 비해서는 좀 더 스래쉬적이고, 트레몰로를 자주 들을 수 있지만 그만큼이나 조금은 느긋한 템포로 연주되는 뒤틀린 리프가 주도하는 음습함은 이 밴드가 스웨디시 데스의 그 ‘전형’에서 벗어나고 있지는 않으되 나름의 개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개성이 무엇인가 하면 스웨디시 데스 특유의 거친 맛을 분명히 간직하고 있지만, 프로그레시브하지 않으면서도 역동적인 전개와 ‘The Light of Day’ 같은 곡이 단적으로 보여주는듯 음울한 분위기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는 부분이 아닐까? Tomas Skogsberg의 프로듀스도 그 음울함 가운데 고스트 노트까지도 분명히 잡아내면서 모든 파트들의 존재감을 살려주는데, Sunlight Studio 사운드의 최고 장점이 연주의 명료함을 살려내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Tomas Skogsberg의 프로듀서로서의 최고 역작에는 여러 의견이 있기야 하겠지만 이 “Across the Horizon”이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일 것이다. 30분 조금 안 되는 6곡 중 빠지는 곡도 하나도 없고, 때로는 초기 Sepultura마냥 거칠지만 클린 보컬과 리버브를 이용한 자욱한 분위기를 뒤로 하고 At the Gates 풍의 인상적인 멜로디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노래하시는 Jonas Stålhammar는 훗날 정말로 At the Gates에 가입해 기타를 치시는 분이다. 이 EP가 아마 최고의 이력서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스웨디시 데스의 팬이라면 한 번쯤은 반드시.

[Cenotaph, 1993]

Mefitis “Offscourings”

야구팀도 도망가고 캘리포니아에 강림한 고담시티 마냥 이미지가 박힌 오클랜드 출신 데스메탈 밴드의 2집. 따지고 보면 2007년부터 시작된 나름 잔뼈 굵은 밴드지만 2024년에 나온 “The Skorian/The Greyleer”는 이 밴드가 이미 두 장의 앨범을 통해 얻은 위명에 비해서는 조금은 평범하다는 인상을 준 편이었다. 사실 레이블(Profound Lore)도 그렇고 신경쓴 티가 역력한 만듦새를 보면 그건 밴드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이미 2024년에 청자들은 Blood Incantation나 Tomb Mold를 위시해서 2020년대에 등장한 ‘스페이스한’ 데스메탈에 이미 익숙해진 탓에 가까워 보인다. 나쁘다는 건 아니고 본전 생각 살짝 났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밴드에게 현재의 명성을 안겨 준 것은 수려한 데뷔작도 있긴 하지만 단연 이 “Offscourings”가 아닐까 싶다. “Emberdawn”에서부터 그랬지만 이 밴드가 동시대의 다른 데스메탈 밴드들과 구별된 것은 80년대 스래쉬메탈/데스메탈 고전에 대한 향수를 감추지 않으면서도 그런 모습들을 명민하게 배치해서 마치 새로운 음악을 듣는 듯한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이었는데, 이 앨범에서도 그 점은 다르지 않지만 “Punishment for Decadence” 시절의 Coroner와 Voivod를 열심히 듣고 연구했는지 헤비 리프는 전작에 비해서 확실히 줄어들었고, 그보다는 메인 멜로디를 화려한 테크닉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형태들로 변주하면서 그 프레이즈들이 서로 ‘미끄러지는’ 지점을 통한 최면적인 분위기가 앨범의 중요한 부분을 꿰찬다. 사실 이런 방식은 데스메탈보다는 ‘weird folk’ 류의 음악에서 많이 등장하는 모습이고, 그리 클래시컬하지는 않다는 점만 빼면 오히려 소시적의 Obtained Enslavement를 생각나게 하는 부분도 있는데, 덕분에 처음에는 꽤 당황스러운 구석이 있지만 근래의 데스메탈 중에서 이만큼이나 극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앨범은 아마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Sonstead Blight’는…. Gorguts나 Deathspell Omega의 길을 걷지 않았지만 프로그레시브에 관심이 많았던 데스메탈 밴드가 80년대 스래쉬/데스의 유산을 잃지 않으면서 보여줄 수 있는 또다른 상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 귀에는 호오를 좀 타겠지만 이 정도라면 프로그레시브 데스의 팬이라면 아마 근 몇 년간 최고의 앨범으로 꼽을 이들도 있어 보인다. 일단 난 그쪽 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앨범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솔로도 별로 없는 앨범이 이렇게 화려할 수 있다는 게 새삼 또 신기해진다.

[Hessian Firm, 2021]

Darkthrone “Pre-Historic Metal”

블랙메탈의 화신 같은 밴드였다가 슬슬 소시적 좋아했던 음악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크러스트펑크의 기운을 과시하던 Darkthrone은 슬슬 “F.O.A.D”부터는 본격 헤비메탈의 면모를 함께 드러내기 시작했고(일단 멤버 본인들부터가 Manilla Road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후 앨범마다 어느정도 갈짓자 행보를 보여주긴 하지만 헤비메탈의 기운은 어느 정도는 항상 분명했다. 굳이 따지자면 Celtic Frost풍으로 블랙메탈을 변주한 모습을 보여준 “Old Star”나, 블랙이라기엔 둠에 가까워 보였던 “Astral Fortress” 정도가 좀 애매하다 싶긴 하지만 이 80년대 헤비메탈 빠돌이 밴드에게 헤비메탈 바이브는 버릴 수 없는 무언가가 된지 오래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럼 제목부터 흘러가도 잔뜩 흘러간 시절의 메탈을 탐구하는 듯한 “Pre-Historic Metal”은 어떨까? 굳이 pre-historic이란 말을 쓴 의도를 정확히 점칠 수는 없지만 처음부터 Mercyful Fate풍 리프로 Manilla Road식 헤비메탈을 재현하는 듯한 ‘They Found One of My Graves’가 등장하니 앨범의 정체성은 가히 분명하고, 예전부터 (반쯤은 개그마냥)보여주던 모습이기도 하지만 Fenriz의 약간 김빠진 King Diamond 모창을 만나볼 수 있는 ‘The Dry Wells of Hell’에 이르면 밴드의 취향이 변하지 않았음은 더욱 명확해진다. 사실 듣다 보면 Mercyful Fate보다는 이쯤 되면 Candlemass에 가까운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만든 양반의 잡식성 취향을 대변하듯 다양한 80년대 메탈의 흔적을 남겨놓는 앨범인만큼 이런 모습들을 난삽하다고 싫어할 사람도 꽤 있지 않을까 싶다. ‘Eat Eat Eat Your Pride’처럼 본격 크러스트펑크 재현의 시간을 갖는 곡이 많은 청자가 원했을 만한 화끈함을 선사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집중하기 어려워 보이는 앨범이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하긴 커버부터 뭔가 트롤링에 가까워 보이는 모양새이니 그런 게 밴드의 의도였을지도 모르지만 우매한 청자로서는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구나.

[Peaceville, 2026]

Sigh “Ghastly Funeral Theatre”

지난주에 본 Sigh 공연을 기억하며 간만에. 확실히 느낀 것은 어쨌든 블랙메탈 밴드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이 밴드만큼 블랙메탈 소리 들으면서 장르의 컨벤션을 많이 벗어나는 밴드도 흔치만은 않을 것이고, 그런 부류의 밴드들 중에서도 이 밴드만큼 파워메탈(나아가 때로는 쟈파메탈) 기운 강한 사례는 정말 드물어 보인다는 점이다. 밴드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정체성도 그랬을지는 모르나 공연에서 “Scorn Defeat”와 “Infidel Art”의 곡은 들은 기억이 없다. 나름 신곡 외에 예전 넘버들도 안배 잘 한 셋리스트였는데 그 시절의 Sigh와 지금의 Sigh는 이제 많이 다른 밴드가 되어 버렸다는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밴드가 연주했던 가장 오래된 넘버는 바로 이 EP의 ‘Soushiki’와 ‘Shingointachikawa’였고, 이후의 넘버들과도 그리 위화감 없이 어울렸던만큼 Sigh라는 밴드의 현재 모습의 맹아는 바로 이 “Ghastly Funeral Theatre”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어 보인다. 그래도 아직은 블랙메탈의 기운이 강하지만 “Infidel Art”의 화려하다 못해 과시적인 구석까지 있던 심포닉은 화려함을 덜어내고 좀 더 오컬트한 분위기로 기울었고, ‘Doman Seman’이나 ‘Ghastly Funeral Theatre’의 신서사이저가 중심이 된 프로그레시브한 전개는 훗날 밴드가 “Hangman’s Hymn”에서 보여줄 방향성을 예고한다. 밴드가 색소폰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앨범이기도 한데, 이 앨범에서야 그저 신서사이저 모듈 소리지만 “Gallows Gallery”에서부터는 드디어 사람이 색소폰을 연주하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으니 생각보다 많은 것을 시작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 EP를 밴드의 최고 명작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더라도 밴드가 가장 생산적이었던 시기의 결과물이라고 하는 건 무리가 없어 보인다.

Cacophonous 초판을 나름 애지중지하고 있었는데 금년 Peaceville 재발매반이 보너스가 엄청 알차다니 구해 봐야겠다.

[Cacophonous, 1997]

Clive Nolan “The Mortal Light”

Marillion을 제외하고 브리티쉬 네오프로그를 대표하는 뮤지션을 딱 하나만 고른다면 그 답은 사실 대단히 애매하겠지만 가장 유력한 후보 중의 하나는 아마도 Clive Nolan 아닐까? 일단 80년대부터 정말 이런저런 다양한 밴드들과 솔로작들을 통해 거의 끊이지 않고 꾸준한 활동을 보여줬고, 흔히 네오프로그에 대한 볼멘소리들을 살펴볼 때 그런 얘기들이 가리키는 곳에는 높은 확률로 Clive Nolan이 있을 정도로 장르의 ‘나름의’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냈으며, 그러면서도 사실 어느 이상의 퀄리티는 충분히 뽑아주면서 장르의 구루마냥 꽤 굵직한 이름들과 항상 함께하는 인물인만큼 저런 평가는 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라면 애초에 네오프로그를 지금껏 듣는 이들은 사실 별로 없을 것이고, 이 근성의 사나이는 그런 볼멘소리들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타일을 절대 바꾸지 않을 만한 분이기 때문에 이 분이 나름의 성과를 인정받고 재평가될 일 같은 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하긴 재평가되기에는 이미 너무 유명한 양반이기도 하고.

이 분은 2013년의 “Alchemy”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솔로작들을 내놓기 시작했는데(물론 1991년의 “Conflicts” OST를 제외한다면) Ayreon의 성공을 바라보며 감흥을 받았는지 아니면 커리어 내내 어느정도 배고팠던 네오프로그의 동료들을 챙기기 위함인지 많은 뮤지션들을 참가시키는 뮤지컬 형태의 컨셉트 앨범들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반 헬싱도 아니고 Samuel King이라는 교수가 스팀펑크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악당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들을 이어나가면서 이 “The Mortal Light”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는 게 일반적인 소개다. 나로서는 “Alchemy”를 들어보지 못했으므로 그냥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이지만 이 스팀펑크 이야기를 보자니 Clive Nolan이 특유의 그 동화풍을 포기하지 못했으며 아마 그런 ‘예쁘장한’ 얘기들을 나름 스케일 크게 펼쳐냈을 거라는 짐작은 든다.

그리고 그 짐작은 비교적 잘 맞아 떨어진다. 사실 Clive Nolan 특유의 라이트모티프로 점철된 전개는 Arena나 Shadowland에서보다도 더욱 강조되어 있고, 무그와 빈티지 멜로트론 연주에 현악 4중주를 고심해서 배치한 덕에 앨범은 꽤 풍요로운 실내악을 갖춘 베리즈모 오페라처럼 흘러간다. 그러면서도 Andy Sears와 Clive Nolan 본인을 포함한 네오 프로그레시브의 걸출한 보컬들이 연주에 묻힐까 전반적으로 힘차게 불러주는지라 나름 화끈한 맛도 느낄 수 있다. ‘Decisions’ 처럼 서사가 돋보이는 곡도 있고, 유쾌한 분위기의 ‘Crime’이나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주는 ‘Siege’, 갈등의 화려한 해소를 보여주는 ‘Explosion’ 등, 사실 굳이 뜯어보면 다 뻔하지만 우리가 Clive Nolan이 커리어를 통틀어 보여준 네오프로그에서 즐겨왔던 모습들을 두루 갖춰놓는 충실함도 잊지 않는다. 그러니 Clive Nolan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앨범을 아마도 좋아하지 않을 요량이 없을 것이다. 솔직히 ‘Wedding’ 인트로부터 이미 만족했던 나 같은 사람은 더욱 그렇다.

[Crime,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