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gie “Power Supply”

Budgie를 되게 좋아한다고 자처하는 편이고 이 밴드가 후대의 메탈 밴드들에게 부정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음도 분명하지만 이 밴드를 걸출한 ‘헤비메탈 밴드’라고 부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밴드를 보통 메탈 밴드라고 부르곤 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 밴드를 아는 이들의 상당수는 애초에 Metallica 덕분에 이 밴드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역시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난 훗날의 밥벌이를 걱정하지만 딱히 아이디어는 없고 해서 다음주도 근근이 살아남을 것을 다짐하곤 하는데 쓸데없는 얘기는 이쯤하고.

1980년의 Budgie도 (뭐 나랑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만)어찌 보면 비슷한 것이 이미 밴드는 “Bandolier” 이후부터는 슬슬 시절에 뒤처진다는 평가를 들어오고 있었고, 펑크의 폭발 이후에는 더욱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었으며, 그렇다고 밴드가 본격 헤비메탈이었던 적도 딱히 없었던 듯하니 NWOBHM 딱지를 붙이기도 애매했을 것이다. 나쁘진 않았지만 성공적이지도 않았던 “Impeckable”를 마지막으로 탁월한 리프메이커였던 Tony Bourge도 떠나버렸다. 말하자면 Burke Shelley도 밥줄을 걱정하는 이 블로그 주인장마냥 선택을 요구받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밴드가 유지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지는 Deep Purple의 멤버들이 잘 보여주고 있었으니 골머리 썩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여기서 Budgie의 선택은 본격적으로 NWOBHM에의 합류였고, “Power Supply”가 바로 그 결과물이었다. 덕분에 밴드의 기존 프로그레시브하고 서사적인 면모를 기대한 이들은 아마 실망스러웠을 것이고, 어찌 보면 “British Steel”의 열화판마냥 대부분의 곡들이 유사한 모티프와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 점도 그리 기껍지는 않다. 하지만 ‘Forearm Smash’의 강렬한 리프와 Judas Priest와 이제는 보컬까지 비슷하게 가는 ‘Hellbender’, 아이러니하게도 밴드 기존의 분위기가 살아있지만 제목만큼은 헤비메탈 찬가가 돼버린 ‘Metal Revolution’ 등 모든 곡이 당대의 어느 메탈 앨범에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힘을 보여준다.

물론 그렇다고 이 앨범을 Budgie의 최고 걸작으로 꼽을 이는 아마 없다시피하겠지만, 어쨌든 이젠 헤비메탈의 숨겨진 구루처럼 대접받는 이 밴드의 가장 메탈적인 앨범은 누가 뭐래도 “Power Supply”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Dream Theater 내한공연을 또 못 가고 집에서 밥줄 걱정을 하고 있는 동안에 굳이 이 앨범을 한번 더 찾아 듣는다. 결국은 모두들 잘 먹고 잘 살자라는 게 이 앨범에 대한 주된 감상이렷다. 그런데 이게 앨범 리뷰가 맞나?

[Active, 1980]

Fer de Lance “Fires on the Mountainside”

시카고 출신 헤비메탈 밴드의 2집. 사실 헤비메탈이란 말보다는 ‘epic’이란 단어가 더 자주 붙는 편이지만 여기서 ‘epic’은 Manilla Road 식의 메탈을 가리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걸 Rhapsody풍 파워메탈마냥 오해할 필요는 없다(커버 때문에 굳이 하는 말이긴 하다).

그래도 이런 류의 밴드들 중에서는 좀 더 다양한 장르의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는 편이다. Manilla Road가 그랬듯 둠과 프로그레시브의 면모는 당연해 보이지만 거기에 블랙메탈/바이킹메탈(굳이 고른다면 Bathory)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고, ‘Ravens Fly(Dreams of Daidalos)’에서는 바이킹이라고 하기도 좀 부족해 보일 정도의 흥겨운 포크 바이브를 찾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어느 하나가 두드러지지 않고 나름의 웅장한 서사를 이뤄 간다는 게 앨범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어 보인다. 이런 건 사실 Rotting Christ 같은 밴드가 제일 잘 하는 것이긴 한데… 밴드가 인터뷰에서 Deep Purple과 Rotting Christ 사이 어딘가의 음악을 목표로 한다고 하는 걸 보면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Children of the Sea and Sky’ 같은 Manowar풍 웅장함을 드러내는 헤비메탈이 결국은 앨범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이 한 곡만으로도 이 앨범을 2025년 최고의 헤비메탈 걸작들 중 하나로 꼽는대도 나로서는 불만이 없다. 기억할 이름이 또 늘었다.

[Cruz del Sur, 2025]

Impetigo “Ultimo mondo cannibale”

Mark Sawickis가 죽었다. 아무래도 좁디좁은 인력 풀에서 인재를 찾다보니 잘한다는 인물은 이런저런 많은 밴드들에 함께 이름을 올리는 사례도 흔한 게 이쪽 동네라지만 장르의 네임드임에도 불구하고 Mark가 다른 밴드와 함께 활동한 경우는 게스트로 한 소절 휘갈겨주는 정도가 아니라면 찾아보기 어렵지만(있기는 있나?) Impetigo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장르의 역사에서 Mark를 기억할 이유는 차고도 넘칠 것이다.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빈다.

Impetigo는 이런저런 스플릿과 EP들을 제외한 정규반은 이 데뷔작과 “Horror of the Zombies”만을 내놓았고, 데스그라인드라는 레떼르답게 두 장 모두 데스메탈과 그라인드코어(앨범 테마가 테마이다보니 그 중에서도 고어그라인드)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Horror of the Zombies”가 둘 중에서는 좀 더 데스메탈에 다가간 편이랄 수 있겠다. 달리 말하면 밴드의 가장 그라인드코어 색채 강한 앨범은 바로 이 데뷔작이라는 것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Impetigo의 그라인드코어는 후대의 밴드들에 비해서는 훨씬 캣취하고 그루브한 편이기 때문에 그라인드코어 팬이 아니라도 좀 더 접근하기 쉬워 보인다. 아무래도 흔히 비교되는 것은 초창기 Carcass겠지만 그보다는 좀 더 펑크적이고 덜 테크니컬하며, 리듬감이라는 면에서는 차라리 Chris Barnes 시절의 Cannibal Corpse를 떠올리는 게 나을 것이다. 인트로도 그렇고 Lucio Fulci의 컨셉트로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모습에서는 Mortician(이나 Macabre)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벌써 이 저예산 앨범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는지 드러나 버린다.

그리고 그라인드코어 팬이 아니라도 ‘Mortado’나 ‘Dis-Organ-Ized’의 화끈한 리프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드코어의 그림자가 아직은 데스메탈/그라인드코어에 분명히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Wild Rags, 1990]

Allegiance(FR) “Beyond the Black Wave”

블랙메탈 좀 들었다는 사람에게 Allegiance라는 이름은 대개 No Fashion에서 앨범이 나왔던 Dissection풍 블랙메탈(이기 때문에 데스메탈이라 부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밴드일 것인지라 이 앨범 한 장 내고 활동은 지지부진한 프랑스 심포닉블랙 밴드의 현재까지의 유일한 정규작을 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긴 2018년에 120장 한정으로 낸 데뷔작이 지금까지 다 안 팔렸다는 사실이 밴드의 어려운 현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그래도 부클릿 끼울 자리 만드는 걸 깜박했었는지 디지팩 사이에 불안하게 끼워넣은 모습을 제외하면 웬만한 레이블 뺨칠 정도로 신경쓴 만듦새의 앨범인지라 이쯤 되면 앨범을 구하는 이들이 아니라 밴드 본인들이 제작비 본전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앨범은 슬프게도 아직도 품절이 아니다.

하지만 음악은 훌륭하다. 듣자마자 떠오르는 것은 “Anthems to the Welkin at Dusk”과 “IX Equillibrium” 시절의 Emperor인데, 간혹 예테보리풍 리프가 등장하긴 하지만 결국은 90년대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황금기를 재현하는 듯한 스타일이고, 특히나 ‘In Memory of My Essence’는 노르웨이 심포닉 블랙메탈의 전형을 그대로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Shadow from the Pyre’ 같은 곡이 그러면서도 극적인 전개를 통해 나름의 개성을 과시하지만 어쨌든 머릿속 어느 한켠에는 ‘An Elegy of Icarus’ 생각이 나는 것이 2018년에 Emperor 스타일 심포닉블랙을 내놓은 밴드의 한계랄까? 하지만 이런 스타일을 이 정도로 완성도 높게 보여준 밴드는 예전에는 그렇다치고 이제는 꽤나 오랫동안 드물었으므로 많이 반갑다. 하긴 이 앨범도 벌써 7년도 넘게 지났구나.

이 밴드의 신작을 만나볼 수 있으려나? 솔직히 좀 요원해 보이지만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Self-financed, 2018]

Woe “Hope Attrition”

Woe라는 이름은 나로서는 오랜만이다. 데뷔작이었던 “A Spell for the Death of Man”은 그 시절 DSBM의 한 타이밍 늦었지만 아쉬운대로 뛰어난 앨범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미국 밴드들이 그랬듯이 포스트펑크와 슬럿지 등의 면모들을 담아내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내 취향과는 많이 멀어져버렸다. “Withdrawal”에 대한 평은 좋았지만 어쨌든 잊을만 하면 쉬지 않고 튀어나오는 하드코어스러움은 못내 거슬렸던 모양이다. 그러니 이 앨범을 찾아듣는 데는 꽤 많은 망설임이 있었던 편이다. 하긴 그러니까 나온 지 8년도 넘게 지난 앨범을 이제 와서 어땠다고 쓰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어디 가서 블랙메탈 좀 찾아듣는다 하기도 좀 그렇다.

그래도 “Hope Attrition”은 그런 USBM 냉담자의 귀에도 꽤나 좋게 들린다. 당장 “A Spell for the Death of Man”에 실렸어도 어색하지 않아 보이는 ‘Unending Call of Woe'(덕분에 곡명부터 의미심장하게 보인다)부터 시작해서, 펑크풍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작들보다 확실히 무겁고 웅장해진 분위기(‘The Din of the Mourning’), 때로는 Drudkh의 좋았던 시절을 연상케 할 정도의 극적인 구성(‘Abject in Defeat’) 등을 보자면 내가 애초에 블랙메탈의 어떤 부분들을 좋아했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기대했던 수준을 꽤 상회하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

다만 데뷔작의 좀 더 ‘자욱한'(달리 말하면 ‘먹먹한’) 분위기가 이런 스타일에는 더 어울리지 않나 싶기는 한데, 좀 더 선명해진 멜로디를 보면 한 장이라도 더 팔리려면 이런 게 맞는 방향이겠구나 생각도 든다. 멋진 앨범이다.

[Vendetta,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