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Edge “Heavens Edge”

Heavens Edge의 데뷔작(이자 유일한 성공작). 사실 글램스러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대를 주름잡던 헤어메탈과 멜로딕 하드록/메탈이 갖춰야 할 덕목들을 두루 갖춘 앨범이었다는 점에는 별 이견이 없다. 문제는 앨범이 나온 게 1990년이었으니 정말 끝물 빨아먹기에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던 점이었다. 뭐 어쨌든 빨아먹을 기회라도 주어졌으니 다행이라면 맞기는 맞는 얘긴데 그렇게 말하면 밴드 본인들로서는 좀 서운하겠거니 싶다.

이 앨범의 가장 중요한 매력은 기타에 있다고 생각한다. 테크니컬하지만 사실 George Lynch 정도 레벨까지는 아닌 Reggie Wu와 Steven Parry의 트윈 기타는 적어도 이 앨범에서만큼은 그에 비슷한 경지에 다가간다. George Lynch만큼의 날카로움은 당연히 없는데(일단 그 비브라토를 따라할 수가 없으므로), 정말 힘냈다는 인상 강하게 주는 빠른 스피드의 솔로잉과 Dokken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cheesy’함(약간은 Kiss풍이랄까) 덕분에 듣자마자 꽂히기에는 Dokken보다도 이쪽이 더 적합하지 싶다. 심지어 발라드인 ‘Find Another Way’마저도 발라드치고는 무척 빠른 편이다. 그런 면에서는 밴드의 가장 알려진 곡인 ‘Skin to Skin’의 펑키함은 오히려 밴드의 스타일을 생각하면 이례적이다. 뭐 어쨌든 두루 잘 소화하고 있는만큼 문제될 것이야 없다. 오히려 헤어메탈의 슬리지함을 반기지 않는 이에게는 이쪽이 훨씬 잘 맞을 것이다.

[CBS, 1990]

An “Revelation I : World Minus Population”

이 작명 센스 형편없는(밴드명과 앨범명 모두) 핀란드 블랙메탈 밴드는 정규작으로는 EP 하나와 이 앨범만을 내놓고 사라져 버렸다. 밴드 이름이 이름이다 보니 이제 와서는 검색하는 것도 꼭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굳이 찾아보니 나오는 정보는 밴드를 주도하는(그리고 레이블 사장을 겸하는) Korpse는 Annihilatus에서 드럼을 치던 Viha라는 것이고, 드럼을 맡은 Tuomio는 Torture Killer에서 드럼을 맡았던 Tuomo Latvala라고 한다. 결국은 핀란드 그 바닥 고인물들이 평소에 안 해보던 거 한번 해보려 만든 사이드 프로젝트… 정도로 짐작할 수 있겠다. 당장 Tuomo Latvala는 Omnium Gatherum에서도 드럼을 맡았던 이력이 있으니 뭘 한대도 웬만해선 이상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나온 음악은 꽤 괴이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블랙메탈과 데스메탈, 때로는 인더스트리얼이나 앰비언트 등이 모두 공존하는 스타일인데, 기본적으로는 데스메탈풍 보컬을 앞세운 반복적인 리프의 블랙메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설명보다는 그냥 앨범 컨셉트에 어울리는 칙칙한, 그렇지만 어느 정도 뒤틀린 분위기를 구현하는 데 집중하는 류의 블랙메탈이라 하는 게 더 나아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DSBM류보다는 Burzum이나 Gorgoroth 류의 스타일을 미드템포로 풀어낸 모습에 더 가깝기 때문에 ‘멜랑콜리’한 모습을 기대하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런 면에서는 90년대 노르웨이 블랙메탈을 즐기던 이들에게 더 알맞을 것이다. ‘Let There be Ebola Frost’가 아무래도 앨범의 백미.

[Plague Prod., 2005]

Dimension F3H “Reaping the World Winds”

Dimension F3H의 데뷔작. 사실 말이 데뷔작이지 Morfeus가 Limbonic Art를 잠시 뒤로 하고 시작한 프로젝트인만큼 이 밴드를 정말 신예 밴드인 양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고, “The Ultimate Death Worship”이 나온 뒤 1년도 채 안 된 시점이었으니 그와 유사한 스타일을 기대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그러니까 이 앨범이 듣는 악평은 사실 이 지점에서 시작할 것이다. Limbonic Art만큼은 아니더라도 화려한 건반이 돋보이는 류의 블랙메탈을 기대했을 이들에게 밴드가 내놓은 음악은 아예 블랙메탈의 범위를 벗어나 있었으니 일단 만듦새를 떠나 청자들로서는 실망부터 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Nesmoht의 보컬이 파워메탈 보컬로서 나쁘지는 않아 보이지만 누가 이 앨범을 보컬 기대하고 사겠는가.

그래도 음악은 사실 나쁘지 않다. 이걸 블랙메탈이라고 할 수야 없겠지만 충분히 화려한 건반과 리프는 사실 “The Ultimate Death Worship”의 그것을 좀 더 여유 있게 끌고 나가는 모습에 비슷해 보이고, Morfeus는 익히 알려져 있던 일렉트로닉스 취향을 Limbonic Art에서보다 좀 더 강하게 밀어붙이지만 여기에 적당한 인더스트리얼 무드를 섞어내는지라 ‘뿅뿅’댄다는 느낌까지는 없다. 사실 ‘With an Overdose of Ecstasy’처럼 Limbonic Art에서라면 절대 나올 수 없을 가벼운(가볍다 못해 조금 유치한) 곡이나… 뿅뿅대는 기운이 좀 과하다 못해 노골적인 ‘Waterworld’와 ‘Reborn’ 정도를 제외하면 일렉트로닉스 자체가 비중에 비해서는 많이 신경쓰이는 편까지는 아니다. 적어도 확실히 심포닉한 건반과 준수한 보컬만으로도 파워메탈 팬들에게는 은근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을 수 있어 보인다.

그러니까 결국 이 앨범을 Morfues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게 앨범의 가장 큰 문제점일 것이다. 하긴 블랙메탈 외길인생에 가까운 커리어에서 뜬금 일렉트로닉스 끼얹은 심포닉 파워메탈이 나왔으니 까이는 건 이쯤 되면 그냥 팔자에 가깝다. 그런 팔자야 어쨌건 나로서는 좋게 들었다.

[Hammerheart, 2003]

Det Eviga Leendet “Reverence”

Det Eviga Leendet는 스웨덴어로 ‘eternal smile’ 정도의 뜻이라 하니 블랙메탈 밴드에게 어울리는 이름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인터넷에 의하면 스웨덴 작가 Pär Lagerkvist의 1920년 작품명이라는데, 예전에 “바라바”를 좀 들춰보며 읽었던 것 같긴 하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에게 이런 홀대라니 싶지만 내가 이런 식으로 넘어간 작가들이 뭐 한둘인가… 하고 일단 넘어간다. 어차피 앨범을 선택한 이유는 밴드명이 아니라 저 멋지구리…한 커버와 Mare Cognitum의 보컬이 참여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2022년 올해의 블랙메탈 앨범! 식으로 이 앨범을 꼽았던 이들도 넷상에 많이 보인다는 것도 덧붙인다.

음악은 노르웨이풍이 묻어나지만 모던하다는 말을 쓰기에도 부족하지 않아 보인다. 날카로운 트레몰로 리프는 Blut aus Nord 식의 뒤틀림이 없지 않지만 어쨌든 장르의 전형에 가깝다면 때로는 클린 톤으로 뽑아낸 따뜻한 멜로디를 보여주면서도 빠른 템포를 유지하면서 보여주는 최면적인 분위기는 post-black의 모습에 다가간 것처럼 보인다. ‘Retch’ 같은 곡은 Solefald와 Panopticon의 스타일을 조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앰비언트를 이용해 숨을 고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Visage’나 ‘Yield’도 전체적인 스타일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다. Jacob Buczarski의 보컬도 강렬하긴 하지만 곡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이런 류의 스타일도 꼭 새로운 건 아니지만(Der Weg Einer Freiheit 같은 모범사례가 있는만큼), 어쨌든 밴드가 개성을 찾으려 많이 고민한 모습만은 역력해 보인다. 그만큼 즐길거리도 많은 앨범이고, 충분히 즐겁게 듣기도 했다. 평이 좋은 이유가 있더라.

[Mystickaos, 2022]

Temple of the Maggot “How to Perform a Human Sacrifice(The Blood Rites)”

몽고 블랙메탈 밴드… 라지만 울란바토르 출신이라니 유목민 생활과는 많이 거리가 있는 이들일 것이고, 이들도 정작 활동하는 필드는 영국이라고 하니 몽고 출신이라는 거에 과한 흥미를 가질 필요는 없다. 하긴 이 앨범이 나온 2010년에야 몽고 밴드라고 하면 우와! 했겠지만 장르는 다를지언정 The Hu가 어쨌든 몽고의 대표 메탈 밴드(물론 이들의 음악이 ‘메탈’이 맞기는 하냐에 대한 이견은 있긴 하다만)의 자리를 거머쥔 현재는 그런 흥미도 조금은 시들할 것이다. 사실 커버나 밴드명 등을 봐서는 무엇 하나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긴 한다.

이들의 들려주는 음악은 어쨌든 블랙메탈의 전형과는 조금은 차이가 있다. ‘Necklace of Teeth’의 인트로에서 어쨌든 느껴지는 포크풍이나, 묘하게 Annihilator의 기운(굳이 짚는다면 “King of the Kill)이 느껴지는 헤비메탈 리프가 등장하는 ‘Leftovers for the God’ 등도 그렇고, 앨범 전반적으로 거친 질감보다는 음 하나하나를 명확히 짚어내는 데 주력하는 모습도 저 구리구리한 커버에서 예상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 헤비메탈 리프에 약간의 일렉트로닉스를 섞어내는 ‘Impaling the Believer’에 이르면 2집 시절의 Aborym 순한맛인가 싶을 정도인데, 어쨌든 이런 다양한 모습들을 짜맞추는 모습만큼은 꽤 매끈하기 때문에 무난하게 듣기는 충분해 보인다. 이런 스타일의 연주와는 별로 안 어울릴 것 같은 포르노그라인드식 가사가 붙어 있는 게 좀 의외이긴 하다만… 하긴 Aborym 앨범 부클릿에도 생각해 보면 헐벗은 모습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으니 그 정도는 어쨌든 용서를.

[Satans Millenium Prod.,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