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rn-Combo Meissen “Stern-Combo Meissen”

2026년 극초반에는 뭔가 프로그를 많이 듣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새해에 가장 많이 손이 갔던 앨범은 이 Stern-Combo Meissen의 데뷔작. 사실 구동독 출신 크라우트록의 보석! 식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보통이라지만(여기에는 Julian Cope 등 그 시절 독일 록이라고 하면 박수부터 치고 보는 이들의 죄가 없지 않으리라) 결국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그 시절 크라우트록은 브리티쉬 프로그레시브의 빛나는 유산을 터잡고 있었고, 이들의 경우는 그래도 그런 유산을 재현하는 데 나름의 성공을 거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자기들 사는 동네명을 따서 ‘Meissen의 별’이라고 밴드 이름을 짓는 저주받은 센스에도 불구하고 2026년 어느 동방의 못생긴 사나이가 그 이름을 알고 있다는 자체가 꽤 성공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렇다고 이 앨범이 브리티쉬 프로그레시브의 성공작들에 비할 만하다고 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어쨌든 데뷔작부터 라이브앨범으로 내 버리는 패기로 멤버 중 3명이 건반을 잡아 꽤 풍성한 심포닉을 펼쳐내는만큼 장르의 애호가라면 충분히 즐겁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기타가 없으면서 신서사이저가 전반에 나서는만큼 ELP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특히나 ‘Eine Nacht auf dem Kahlen Berge’는 ELP가 무소르그스키를 연주했던 걸 따라했다고밖에 할 수 없지 않을까? 그래도 ‘Mütter gehn fort ohne Laut’나 ‘Licht das Dunkel’의 심포닉에서 묻어나는 멜로우함은 Keith Emerson 같은 연주자라면 아마도 보여주지 않았을 모습일 것이다. 곡만 좀 덜 산만했다면 심포닉 프로그의 걸작이라 해주는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때는 1977년이었다. “Brain Salad Surgery”가 나온 지도 벌써 4년이 지나버렸고 “Relayer”보다도 1년이 더 늦은 시절에서 이 정도 심포닉을 보여준 밴드가 로컬로 남았다 한들 이상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듣기 좋긴 한데 독일 프로그에 이상한 환상을 심어준 Julian Cope에게 이 대목에서 각성을 촉구한다. 대체 여기다 쓴 돈이 얼마냐 이거…

[Amiga, 1977]

Deposed King “Letters to a Distant Past”

커버도 그렇고 앨범명도 그렇고 아련한 노스탤지어에 의존했을 음악일 거라 짐작케 되는 헝가리 듀오의 두번째 앨범. 이미 2023년에 “One Man’s Grief”로 알 만한 이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는 하나 나는 처음 들어본다. 하긴 야심차게 내놓았다는 이 앨범도 피지컬로는 겨우 자주제작으로 CD 75장만을 찍었고 그나마도 아직도 팔고 있는 걸 보면 저 ‘많은 주목’의 상업적 성공을 의미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게 이 장르의 현재의 입지일지 헝가리가 그만큼 음악하기 힘들다는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당장 이 앨범을 돈주고 산 나도 헝가리 사람은 아님을 생각하면 후자보다는 전자에 생각이 기운다. 각설하고.

음악을 듣고 가장 먼저 생각나는 밴드는 Riverside와 Porcupine Tree이고, 커버답게 ‘dreamy’한 분위기를 멋스럽게 풀어내는 모습에서는 간혹 Riverside보다는 Lunatic Soul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어쨌든 Marisuz Duda와 Steven Wilson의 스타일이 꽤 짙게 묻어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위의 밴드들보다는 좀 더 클래시컬한 구석이 있고, 특히나 ‘Remnants of Rain’의 Liszt풍 인트로는 이 밴드가 ‘모던한’ 사운드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레시브 록의 컨벤션을 꽤 의식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록적인 화끈함보다는 앨범 전반을 관통하는 몽환적이면서도 연극적인 분위기를 흘러가듯 보여주는 데 중점이 있는 앨범이다. 사실 이런 류의 ‘Eclectic Prog’는 King Crimson식 전통에 터잡아 에너제틱한 면모를 과시하는 사례들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 정도로 청자의 정적인 감상을 요구하는 앨범은 이 장르에서는 (적어도 최근에는)흔치 않았다고 생각한다.

밴드의 이런 스타일을 단적으로 대변하는 ‘Corridors of Fog’가 단연 앨범의 백미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곡은 보너스트랙이므로 정식 수록곡 중에서는 그래도 일렉트로닉을 위시하여 나름의 괴팍함을 보여주는 ‘Moonlight Lullaby’를 인상적이라 얘기해 본다. 하지만 말을 이렇게 해서 그렇지 사실 빠지는 곡은 하나도 없으므로 Riverside를 좋게 들었던 이라면 저 75장이 품절돼 버리기 전에 구입을 권한다. 적어도 내게는 2025년의 가장 인상적인 앨범들 중 하나.

[Self-financed, 2025]

Hawkwind “Space Bandits”

1990년 얘기 하는 김에 간만에 들어보는 Hawkwind의 16집이자 1990년작. 개인적으로 처음으로 산 Hawkwind의 앨범이기도 한데, 이유는 별 거 없고 LP로는 서라벌레코드 라이센스가 있었지만 CD는 라이센스가 없어서 찾은 끝에 구하게 된 미국반 CD가 Roadracer반이었기 때문. 지구레코드 덕에 Roadrunner의 메탈 클래식들을 접하고 있었고 딱히 아는 건 없었지만 Roadracer가 Roadrunner가 루니툰과의 저작권 이슈로 등장하게 된 이름이란 정도는 어떻게 알았는지 들은 바 있었던 얼치기 메탈 팬으로서는 안 그래도 뭔가 메탈스러웠던 저 커버와 레이블명만으로도 관심을 가지기엔 충분했다. Hawkwind 음악은 안 들어봤지만 그래도 이름만은 들어봤다라는 것도 조금은 기여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어이없는 구매동기를 생각하면 음악은 의외일 정도로 취향에 맞는 편이었다. 아무래도 앨범의 가장 잘 알려진 곡인 ‘T.V. Suicide’는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이 밴드의 앨범 첫 곡들이 으레 그렇듯이 드라이브감 강한 하드록을 선보이는 ‘Images’나, 주술성이라는 면에서는 밴드의 전성기에 비해서도 뒤처지지 않는 ‘Black Elk Speaks’ 같은 곡이 있고, 밴드의 정규작으로서는 유일하게 Bridgett Wishart가 마이크를 잡은 앨범이라는 것도 그렇다. 물론 Hawkwind의 보컬을 얘기할 때 Dave Brock이나 Nik Turner가 아닌 Bridgett Wishart를 얘기하는 이는 거의 없겠지만 Hawkwind의 스페이스록에 여성보컬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드문 사례라는 것도 분명하다.

이 즈음의 Hawkwind 앨범들이 많이 그랬지만 앨범 전반에 흩뿌려진 앰비언트만 좀 덜어냈더라면 평가는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이 앨범을 Hawkwind의 명작이라 얘기하는 이는 솔직히 한 번도 본 적 없고 밴드의 좋았던 시절을 생각하매 그에 필적한다 말할 수도 없겠지만, Ozric Tentacles의 음악을 좋다 하면서 이 정도 앨범에 눈살을 찌푸리는 것도 뭔가 아니지 않나 싶다. 물론 아니라면 당신 말씀이 맞겠습니다만.

[GWR, 1990]

Slayer “Seasons in the Abyss”

앞서 “Slaughter in the Vatican”에서도 얘기하긴 했지만 1990년의 Exhorder는 Slayer보다 더 강력한 데가 있는 밴드였다… 라고 하면 그건 좀 과하지 않냐고 하는 이가 있을지언정 이건 충분히 근거가 있는 얘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강력한 근거는 Slayer의 이 1990년작 “Seasons in the Abyss”일 텐데, Slayer의 클래식 시절을 어디까지 잡느냐 한다면 이 앨범까지 넣을 것이냐 말 것이냐가 고민거리일 정도로 밴드의 좋았던 시절을 보여주는 앨범임에는 의문이 없겠지만 이 앨범이 80년대 초중반 Slayer라는 밴드의 기세등등한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지에는 의문이 없지 않을 것이다. 물론 밴드가 느릿해진 건 “South of Heaven”이 먼저였지만 어쨌든 무거운 분위기를 잃지 않았던(녹음 덕분에 그 무게감을 갉아먹은 기타 톤이 아쉽지만) “South of Heaven”과 이 앨범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래도 Rick Rubin이 스스로의 과오를 되돌아봤는지 전작보다는 좋아진 레코딩과 어쨌든 앨범 초반을 힘차게 여는 ‘War Ensemble’이 있고, 좋게 얘기하면 네 장의 앨범으로 머리가 굵어질 대로 굵어졌고 예전처럼 빠르게 휘몰아치기에는 너무 체급이 커져버렸다고 생각했을 법한 이 밴드가 나름대로 스래쉬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완급조절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앨범이랄 수 있을 것이다. 나쁘게 얘기하면 앞서 밴드가 내놓았던 클래식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순한맛처럼 보이는 데가 있다는 건데, 그 아쉬움을 메우는 건 이 앨범을 끝으로 “God Hates Us All”로 돌아오기까지 자리를 비우는 Dave Lombardo의 드럼이다. 어쩌면 “Divine Intervention”과 이 앨범의 차이는 바로 이 드럼에서 시작되는 특유의 분위기의 유무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많이들 좋아하는 ‘Dead Skin Mask’도 내 귀에 안 꽂히는 걸 보면 사실 이 앨범 자체가 나와 잘 맞지 않는다랄 수도 있겠고, Slayer라는 이름만 지우고 본다면 충분히 좋은 소리를 들었을 법한 앨범이기도 하다. 애초에 그 이름을 지우고 보는 게 말이 안 되는 게 문제지.

[Def American Recordings, 1990]

Exhorder “Slaughter in the Vatican”

Exhorder가 결성된 것은 1985년이었으니 동시대의 날리던 스래쉬 밴드들을 의식했겠거니 하는 게 맞겠지만 밴드가 앨범을 내놓은 것은 1990년이 되어서야였다. Pantera의 “Cowboys from Hell”이 나온 것도 1990년이었고, 이 앨범보다 겨우 3-4개월 전에 발매되었다. Pantera의 저 앨범이 스래쉬메탈이라는 음악을 새롭게(사견으로는 괴이하게) 정의하는 수많은 목소리들을 불러오는 동시에 ‘전형적인’ 스래쉬 밴드들의 몰락을 예기하는 신호탄이었다고 친다면 스래쉬 밴드가 그래도 차트에서 주목받을 실낱같은 가능성이 남아 있었던 시절의 끝물이었던 셈이고 실제로도 꽤 좋은 평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이 앨범이 “Cowboys from Hell”의 유사사례로 언급되곤 하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꽤 기이해 보인다.

사실 Exhorder의 음악에서 일면 그루브함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분명하고, Vinnie LaBella와 Jay Ceravolo의 기타에서 일견 Dimebag Darrell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으며, Kyle Thomas의 보컬을 Phillip Anselmo와 비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테니 이들을 Pantera와 비교하는 걸 틀렸다라기엔 좀 그렇긴 하다.. 다만 그루브가 훨씬 강조된 Pantera와 달리 Exhorder의 음악은 스래쉬메탈의 컨벤션에 훨씬 기울어진 모습을 보여주며, Scott Burns의 손이 닿은 만큼 헤비함에 있어서도 당대의 데스래쉬 밴드들에 근접한다. 말하자면 이 글에서조차 계속 Pantera와 Exhorder를 비교하고 있지만 Exhorder를 Pantera와 비교해서만 얘기하는 것은 밴드에게 꽤 억울할 거라는 얘기다.

그러니까 얘기를 좀 바꿔 보면 그루브함이 살아 있기는 하지만 Exhorder의 노선은 스래쉬메탈과 데스메탈의 경계선상에서 나름의 생존방향을 모색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당대에 Roadrunner에서 나온 수많은 장르의 명작들의 일석을 차지할 만하다. 사견이지만 1990년의 Slayer는 ‘Legions of Death’ 같은 곡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Roadrunner,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