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또는 교과서적 표현으로 ‘정보화 사회’)가 지배하는 환경 – cyber – 을 배경으로, 현세적이고 반문화적인 내용 – punk – 을 담은 이야기를 가리키는 용어. 1980년에 Bruce Bethke의 단편소설 “Cyberpunk” 에서 처음 사용. 그러나 이 용어를 William Gibson과 Neal Stephenson 등이 쓰는 종류의 과학소설을 지칭하면서, 동시에 과학소설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종의 문학 무브먼트와 연관지은 첫 번째 사람은 Asimov’s Science Fiction Magazine의 편집자 Gardner Dozois이다.

사이버펑크 문학은 일반적으로 과학기술이 놀랍도록 발달하였으나 여전히 전통적인 국가 및 사회적 권력관계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대개, 이런 소설에서는 일반인들의 삶을 통제하고, 지배하고, (때때로) 조작하는 권력체로 정부, 거대기업, 또는 종교단체 등을 꼽는다. 개인보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앞선 정보기술력을 바탕으로 권력체는 개인을 보다 확고하게 통제하기를 원한다. 정보기술은 사회체제는 물론, 뇌 삽입물, 의수, 의족, 복제 또는 유전적으로 처리된 장기들을 통해서 인간의 내부에도 침투한다. 즉 인간은 최첨단 기계/정보통신문명의 일부로 환치되도록 끊임없이 압박을 받는 것.

그러나 과학과 기술은 언제나 양날이 선 칼이고, 기계적으로 권력체계에 순응하도록 강요받는 개인들은 유기적인 변화 및 적응을 통해 통제 영역에서 이탈해 왔다. 사이버펑크적인 미래 사회에서도 이러한 통제와 아노말리, 그리고 뒤 따르는 새로운 (그러나 결코 중앙집권적인 질서가 아닌) 질서는 항상 일어난다. 특히 국가 및 사회 권력체가 세부적으로 통제하기 힘든 대상 및 영역은 “가장자리” 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사이버펑크의 배경과 분위기가 자주 어둡고 비관적이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부랑자, 범죄자,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 절망에 빠진 젊은 세대를 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지 싶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과거의 소외계층과는 달리 지극히 테크놀로지 친화적이다. 단지 테크놀로지를 수단으로 형성된 거대 권력 구조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을 뿐이다. 때문에 그들은 무정부주의자처럼 보이고, (좋게 말하면) 소박하며, (나쁘게 말하면) 정치적으로 유치하다(Bruce Sterling의 경우는 상당히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버펑크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아마도 숨막힐 만큼 쏟아져 내려오는 기술과 이를 처리하는 상징적인 언어감각이 독자에게 놀랍게도 낭만적인 반영웅의 이미지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기술로 뭉친 사회는 마찬가지로 기술에 의해서 완전히 변모한 인간형을 창조하게 되고, 이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형과는 크게 다른 이들의 행동은 독자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의 동기를 파악하고 이해하며 증오하고 사랑하게 하는 전통적인 이야기 수법의 효과와는 다른 기이한 효과를 던져준다.

그러므로 사이버펑크는 외견상 철저하게 무정치적인 것 같지만(또는 아주 단순한 무정부주의의 분위기를 풍기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정치적인 서브장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껏 과학소설이 다루어 온 체제를 고스란히 가져다 놓으면서, 로맨틱한 반영웅까지 등장시키면서도, 우리가 익숙해 있는 정치적 메시지와는 다른, 끊임없이 개인화된 이상과 체제라고 부르기도 힘든 체제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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