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96327.jpg부족한 수입을 쪼개 옷을 사야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럴 때 선택하는 옷의 색깔은 보통은 (취향의 문제를 떠나서)검정색이나 회색 등 무채색 계열이었다. 생활의 습관이라는 면이 컸겠지만 그런 색깔의 옷들이 무심한 스타일의 사람으로서 관리하기 편하다는 것도 분명한 요인이었다. 물론 그런 면들은 아마 그 옷을 만드는 생산자의 입장에서도 분명 고려됐을 것이다. 일정 정도 이상 패션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은 이들이 입는 일상복에서 색깔은 분명 실용성과도 연관된 부분이고, 그렇게 색깔은 단순히 디자인의 차원을 넘어서 그 자체로 상품의 영역에 들어온다. 디자인 부서가 선택한 색깔로 염색을 하자니 먼저 그 색깔의 염료부터 조달해야 했을 것이다.

이 책은 색깔에 대한 에세이의 형식을 빌어 오고 있지만, 그 표지를 들춰보면 갖가지 색깔에 대한 상품화의 역사와 그에 대한 저자의 간단한 코멘트 정도가 합쳐진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빨간색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해도 될 법한 색깔을 저자는 굳이 스칼렛, 코치닐, 버밀리온, 로소 코르사, 헤머타이트, 매더, 드래곤스 블러드의 7가지나 서술하고 있고, 그 각각의 색깔은 결국은 좀 더 다른 빨간색에 대한 시장의 요구, 원료 조달의 어려움에 따른 비싼 가격 등 여러 가지의 요인으로 인해 비슷하지만 다른 색깔로 취급되면서 시장에 등장한다. 가격이 울트라마린의 10분의 1에 불과했던 프러시안 블루가 고흐나 모네 등 많은 화가들에게 선호되었던 색깔이 된 것이 오로지 그네들의 미적 감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책의 부제로 붙은 말은, 사실은 “모든 색에는 상품명이 있다”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이 책 스스로도 그런 책의 내용을 잘 실천하고 있다. 도트는 그리 크지 않지만 여백 많은 페이지 가장자리의 색깔들과, 이 책에 실린 색깔들을 이용한 챕터와 챕터 사이의 공백들은 그 색감으로 챕터를 구분하고 페이지에서 설명하는 색깔이 대체 시각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를 명확히 설명해 주지만, 아마도 많은 이들은 그런 ‘기능적’ 측면보다는 그 색깔들이 이루는 디자인에 좀 더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하긴 디자인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표지를 제외한)이 책의 디자인은 꽤 예뻐 보인다. 그런 면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솔직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적당히 트렌디하면서도 지적으로 보일 수 있는 한 마디를 짜내는 소재로도 유용할 것이다.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저, 이용재 역, 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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