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letmego.jpg언제나 짧은 소양의 나로서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이름은 낯설다. 물론 이 일본스러운 이름의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탔다더라는 얘기는 쉬이 들을 수 있었지만 장차 생전 시간을 낭비한 죄로 지옥에 간다면 그 죄목의 한켠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찾아 읽었던 시간이 끼어 있으리니 생각하는 나로서는 언제부턴가 작가명에 일본식 이름이 적혀 있으면 우선순위를 주욱 밀어내버리는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은)습벽이 생겨버렸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6세에 영국으로 이민간 일본계 영국인이라니 꽤 억울할 노릇이겠지만… 생각해 보니 나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게 딱히 억울할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뭔가 확신범들이 하는 얘기와 맞닿아 있는 듯하지만 넘어가고.

제목만 봐서는 뭔가 연인을 떠나보내는 듯한 얘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나처럼 이 제목을 영화 “나를 찾아줘”(영어 원제야 물론 꽤 틀리다)와 헷갈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실 소설의 내용은 굳이 영화에 비교한다면 그 국내에서만 인기 많았던 “아일랜드”에서 온갖 역동적인 부분들을 모두 덜어낸다면 조금은 비슷할 것이다(영화화된 소설이지만, 이 소설의 내용은 영화 ‘나를 보내지 마’와 똑같다는 식으로 얘기할 수는 없을지니). 학교 형태의 생체 장기 은행에서 양성되는 복제품으로서의 인간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자각하고 나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인데, 아무래도 등장인물들의 팔자가 팔자이다보니 결국은 그 불안하기 짝이 없던 인생에서도 잔재미들을 찾아내고 그 시절을 되돌아보는 식으로 이야기가 풀려간다.

결국은 앞이 안 보이는 시절을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사와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보면 비슷하고, 어떻게 보면 어쨌든 이 등장인물들은 ‘원본’보다도 더욱 인간성에 대해 절실히 깨닫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보다도 낫다! 는 식의 얘기가 각종 시상식에서의 챠밍 포인트였으려니 싶다. 물론 그래도 읽고 나서 기분좋을 일은 딱히 없을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각자 뭔가 잘하는 거 하나씩은 있었던 등장인물들도 이리 의미없이 생을 마치는데 딱히 잘하는 것도 없는 나는 뭐냐…는 반응을 실제로 한 번 봐서 하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가즈오 이시구로 저, 김남주 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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