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스메탈에 대한 비평이라니 생소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리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생소하다면 데스메탈이 굳이 책으로 쓸 만큼 돈이 되는 소재는 아니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 오늘날 록/메탈에 대한 비평계의 주류적 시각에서 메탈은 과거지향적, 탈정치적인 장르로 정의되고, 데스메탈의 경우는 특히나 그렇다는 것이 논의의 전제이다. 저자는 헤비메탈을 ‘남성적 서브컬처’의 견지에서 다룬 Deena Weinstein을 인용하면서 이런저런 후기구조주의풍 담론을 엮어내 이런 전제를 도출하고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Deena Weinstein의 이론을 저렇게 써먹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들지만 뭐 평론가 직함을 달고 메탈 그런 거 요새 누가 들어요? 라고 자신있게 얘기하는 이들을 심심찮게 보아온지라 경험적으로 저 전제가 마냥 틀리다는 생각도 들진 않는다.
우리의 저자는 5챕터부터 ‘당연히’ 이런 주류적 시각이 틀렸으며 데스메탈은 충분히 훌륭한 장르임을 설파하기 시작한다. 요지는 정치적 의식/저항성 등에만 비중을 두어 온 기존의 시각은 데스메탈이라는 장르 특유의 미학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음악적인 부분, 가사 또는 컨셉트적 부분에 한 챕터씩을 할애해서 데스메탈의 컨벤션(과 저자가 생각하는 매력)을 ‘분석’한다. 그로울링 보컬이 일반적인 청자에게 진입장벽을 선사하나 이러이러한 부분이 장르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장르의 외견상 잔혹성은 사실 헤비메탈식의 ‘무해한 저항’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호러영화가 선사하는 ‘shock value’와 같은 것이다. 장르의 슈퍼스타인 Carcass와 Cannibal Corpse에도 각각 한 챕터를 선사해서 가사의 분석을 통해 이 음악들이 어떻게 ‘shock value’를 선사하고, 청중들이 이를 어떻게 향유하는지를 기술한다.
즉, 이 책은 학술적 용어로 다른 메탈헤드들과 교류하면서 쉽지 않으면서 때로는 코믹한 취미생활을 계속해 온 메탈헤드라면 지극히 익숙할 얘기를 풀어내고 있다. 넌 그런 멜로디도 없고 노래도 으르렁 꿀꿀꿀만 나오는 걸 왜 듣냐? 아니 이런 게 빡세고 얼마나 좋은데 이 무슨 멋모르는 소리냐? 결국은 이 두 가지 입장에 약간의 레퍼런스와 이론적 근거를 덧붙여 책으로 꾸며낸 셈인데, 뭔가 시답잖았던 논쟁(이라기보다는 입씨름)들을 치열한 이론적 대결의 역사로서 설명했다는 게 동방의 나라에서 메탈을 듣는 사람의 생각일 것이라 짐작한다. 영미에서는 좀 사정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데스메탈을 즐겨 듣는 사람이라면 전부 익숙한 얘기들일 만큼 굳이 읽어볼 필요는 별로 없겠거니 싶다. 그런데 데스메탈에 관심 없는 사람이 과연 이 책을 읽어볼까? 우리의 출판사는 과연 이 딜레마를 감안하고 책을 내놓았을까 조금 궁금해진다. 아니라는 데 똥반 한 장 건다.
[Michelle Phillipov 저, Lexington 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