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에 별 소양 없는 이로서 그래도 챙겨보고 있는 몇 안 되는 이름 중 하나인 김보영 작가가 끼어 있어 별 생각없이 집어들었는데, 김보영의 이름만 보고 당연히 SF 단편집으로 생각하고 샀으니 기획의도부터 전혀 신경쓰지 않은 잘못된 선택임에 분명하다. 하긴 제목부터 엔딩 보게 해달라며 게임을 소재로 한 단편집임을 천명하고 있는데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돌아보기 어렵다.
그래도 책은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았다. 어디 가서 게임 좀 했다고 얘기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집에 콘솔을 가지고 세이브 로드를 반복하며 JRPG를 플레이한 기억이 있고, 마스터의 천인공로할 스토리텔링 덕분에 누가 착한놈이고 나쁜놈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던 괴이한 TRPG의 기억이 있으니(참고로 나의 캐릭터는 드워프였는데… 문제는 직업이 도둑이었다. 굼뜨고 힘만 세던 도둑) 이 책에서 이런저런 공감거리를 찾기는 충분했다. SF는 아니지만 그래도 김보영이라고 ‘저예산 프로젝트’에서는 – 소재는 엄연히 다르지만 – 바로 그 JRPG의 빛나는 지점들을 마주하며 겨우 게임인데 왜 감동하는 거지? 식의 경험들을 건드리면서 공감을 얻어내고야 만다. FF6에서 세리스가 시드가 죽은 뒤 새출발하는 장면은 지금이야 그렇다 치고 그 시절에는 분명 감흥깊었다.
그런 만큼 이 책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많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RPG야 지금도 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따지자면 그리 정교하지만은 않은 그 스토리와 설정놀음에 감흥을 얻기는 예전보단 어려워져버렸고(이미 나는 세리스가 바다낚시를 열심히 하면 시드가 건강해진다는 걸 알아버렸다), TRPG의 맥락을 떠난다면 마리드와 파티원들이 자아를 갖고 플레이어들을 씹어대는 모습은 뜬금없기 그지없어 보인다. 블랙메탈 데스메탈 듣는다는 양반이 게임소설의 진입장벽 얘기에 뭐 이리 혓바닥이 긴가 싶어서 여기까지, 한다만, 개인적으로는 재미있다기보다는 반가웠던 시간이었다. 사실 반가움만큼은 웬만한 명저들만큼이나 확실했을 것이다.
[김보영 등 공저, 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