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캐럴에 대하여 찾아보면 나오는 이야기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관련 내용을 제외하면 대충 ‘루이스 캐럴은 언어유희의 대명사’ 라는 취지의 내용들이다. 그렇지만 ‘flea’와’ ‘flee’의 발음이 똑같음을 이용한 말장난 같은 사례들의 설명이 달린 각주를 읽으면서 얻는 감흥 같은 걸 말할 일은 없겠다. 사실 그런 각주가 아니더라도 ‘판타즈마고리아’나 ‘사진사 히아와타’ 같은 작품에서 루이스 캐럴이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은 자연스레 드러나니 나처럼 영어가 짧은 독자라도 언어유희라는 부분에 지레 겁부터 먹을 필요까진 없겠다. 출판사의 “그림과 대화가 있는 책”에 실린 작품만을 대상으로 선정하였다는 원칙도 사실 그런 고려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오로지 텍스트만 가지고 이 문장의 원문은 어떤 단어를 썼을 것이고 그게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어떤 손장난을 부렸을 것인지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그림과 대화가 있는들 눈에 들어올 리 없을 것이다.

그럼 나 같은 영문학 문외한은 이런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문외한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손쉬운 정답은 ‘독법에 정답이 어디 있나? 그냥 각자 알아서’일 것이고, 이 성의없는 정답은 루이스 캐럴의 경우 그리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어유희의 대명사’라면 독자로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언어유희를 즐겨 주는 것이 작가의 의도에 가장 부합하는 결과일 것이고, 캐럴은 ‘나는 사람들이 단순한 난센스 외에 다른 의미들을 찾게 될까봐 두렵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낸 설득력 있는 의미들을 나는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이라 말했다고 하니, 이 선집의 글들을 읽고 혼자서 뻘생각을 키워 가는 모습이야말로 독법의 왕도일른지도.

그러고 보면 이 책이 결국은 문학 카테고리의 ‘선집’으로 엮어져 나온 사실도 캐럴의 의도에는 더없이 부합하는 결과가 아닌가 싶다. “헝클어진 이야기”로 실린, 요새 같으면 “요즘 수학문제 해설.jpg” 식으로 짤이 생산되어 돌아다닐 법한 루이스 캐럴식 수학 퀴즈 강평은 아마 정답 응모자라면 조금은 상처받을지도 모를 수준의 지독한 유머가 섞여 있긴 하지만 19세기 영국인이라면 이런 글들을 문학으로 분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저자가 저자인지라 나온 결과이겠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굳이 수학 퀴즈 강평에서까지 어떻게든 난센스와 추가적인 의미(‘이 수학 퀴즈 강평의 영문학적 가치’?) 등을 찾아내서 타이포그래피가 돋보이는 이 책으로 엮어내 서점 매대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루이스 캐럴 저, 유나영 역, 워크룸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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