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들레르와 베를리오즈, 테오필 고티에의 바그너론을 엮은 책이지만 바그너의 음악에 대한 정교한 평가라기보다는 바그너의 동시대인이자 민감한 감수성을 가졌을 동종업계 종사자 및 펜끝 날카로운 데카당스 딜레탕트들의 충격을 그대로 담아낸 글들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특히나 로엔그린 2막이나 트리스탄과의 이졸데 관현악 도입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는 베를리오즈에 비해서는 아예 바그너에 대한 해석과 자신의 작품들의 문구들을 혼연일체시키는 게 목표인지 열광을 아끼지 않는 보들레르의 글에서 그런 충격들이 제대로 드러난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성실성이라는 틀에 꼼짝없이 갇히”는 것을 감수하면서 “바그너가 제시한 혁명적인 입장”을 대리설명하는 과격파 딜레탕트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 과격파 딜레탕트에 의하면 바그너의 엄청난 능력과 비판적 지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적 천재성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굳이 바그너의 이성과 천재를 분리하려는 이들의 ‘시기심’의 발로이고, 바그너의 음악은 시가 없지만 여전히 시적이며, 정말 잘 지은 시가 갖는 모든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긴 바그너의 시도가 신화와 전설에 토대를 둔 이상적인 드라마를 구현하려는 것이었고, 이는 오페라라는 장르가 가졌던 결함에 오래전부터 진력을 내던 사람들을 규합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보들레르에게는 그야말로 취향저격이었을 것이다. 하긴 그 정도 되니까 스스로도 음악 작품의 분석은 어려운 수준임을 인정하면서도 파리 비평계의 공격을 받아내며 바그너의 변호에 나섰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보들레르의 입장이 오늘날 바그너의 일반적인 해석과도 상당히 맞닿아 있으니, 바그너의 음악은 이런 문외한까지도 확실히 설득시킬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입증되는 셈이다.
말하자면 인터넷이 없던 시절, 음악으로 밥을 먹지는 않지만 분명한 관심을 보였던 어느 딜레탕트가 역사에 남을 수준의 글발을 휘날리면서 지면을 통해 남긴 인상비평의 기록인 셈인데, 저자에 의하면 철없고 유치한 말들을 한없이 늘어놓는 것이 저널리즘이라지만 어쨌든 누군가의 음악을 두고 서로가 이름을 걸고 인상이든 이론이든 나름의 근거들을 기고했던 기록들은 비평의 위기가 이미 자명한 이야기가 된 시절에 참 신기하게 보이는 모습이기도 하다. 키보드 워리어들의 전투력 배틀의 19세기 버전이라면 망자들에 대한 모독이겠지만, 저자가 저자인지라 전투력도 출중하니만큼 탄호이저 서곡 한 번 듣고 읽어내려가면 스트레스 해소에도 나름 유용하다.
[샤를 보들레르 저, 이충훈 역, PHO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