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ius Evola는 익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이 책은 꽤 유명한 편이다. 그리고 사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그의 이름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닐진대,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추’ 에 신비주의자로서 소개된 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신비주의자라 하는 것은 많이 부족한 설명이긴 하다) 베를루스코니의 집권 때문인지 현대 이탈리아 우파를 논함에 있어서 에코가 Evola를 중요한 인물로 지적한 것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나의 Evola에 대한 인상도 ‘신비주의와 정치철학을 기묘하게 믹스한 사상가’ 정도였으니, 그게 신비주의자와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사실 별로 할 말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신비주의의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책은 막상 읽어보면 생각보다는 친절한 편이다. 인덱스가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독일판에 실렸던 글인 H.T.Hansen의 Evola의 정치 철학에 대한 소개글이 추가되어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Evola의 일대기를 다루지만 동시에 파시즘과 나치즘에 대한 그의 ‘이데올로그’ 로서의 역할을 논한다. 매우 우익적이며, 반동적이었지만 파시즘의 대중적 측면에 대해서는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는 점에서 이는 독일 1차대전 후 보수주의자들(이를테면 Ernst Junger)과 일견 비슷한 부분이 느껴진다. Evola는 무솔리니를 지지했지만, 당 내의 반대로 인해 파시스트당에 입당하지도 못한 인물이었다는 것은 그의 행보가 약간은 달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에서 Evola가 제시하는 것은 재미있게도 범유럽적 정치체계였다. 민주주의, 사회주의 등 일련의 정치 체계들을 보나파르티즘이나 마키아벨리즘이라 비판하면서, 어떠한 사회 체계도 물질주의 등의 그 자체의 요인으로 인해 붕괴하게 된다는 것이다. 엘리트주의적 전사의 사유만으로 기존 정치 체계를 붕괴시키는 꼴인 것이다(이 쯤에서 한번쯤 실소). 좀 더 급진적 형태의 ‘보수 혁명’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 이 책이 유명할 수 있었겠구나 정도의 수긍은 되지만, 이런 류의 이데올로기는 항상 어느 정도는 허무하게 느껴진다. Evola가 어떤 정당에 대해서도, 어떤 기존 정치체계에 대해서도 지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은 그 허무함의 단적인 사례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Evola조차 스스로를 ‘facist nor anti-facist’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의 정치에 대한 접근이 지나치게 ‘미학적’ 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는 소셜 다위니즘과 국민국가이론적 측면을 파시즘으로부터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에 따르면, 그 빈 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유럽적 전통’ 이 된다. 물론 이는 전형적인 ‘전통주의’ 와 차이는 있다 – 유럽적 가치가 모두 중시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가 역설하는 부분은 통속화된 근대 기독교와 부르주아지 세계 질서로부터의 탈출이다 – 와 특히 강조되는 것은 ‘삶의 영적 방식(spiritual way of living)’ 일 것이다. 좋게 얘기하면 유토피아적이겠지만, 이런 식의 시각에는 글쎄, 나로서는 독특하게도 보는군, 이상의 평가를 할 수가 없다. 대중의 활력이나, 물질의 측면에 대해서 그는 아무 관심이 없는 듯하다. (유럽적 전통이라는 것은, 진정 물질과 무관한 것인가?) 3백페이지 조금 넘는 분량이지만 위에 적은 H.T.Hansen의 설명글을 제외한다면 Evola의 글은 거의 소책자 분량의 수준이니 사실 읽기는 편하나, 내 생각에는, 그 인상과는 다르게, 참 ‘순진한’ (물론 이 표현은 어느 정도의 가치 평가를 포함한다) 수준으로 느껴지는 탓에 큰 감흥은 없다.

[Julius Evola 저, Inner Traditions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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