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꼬박꼬박 찾아 읽는 건 물론 아니지만 테리 이글턴은 책이 나오고 서점에 진열되는 걸 우연히 발견하면 이번에는 또 뭐로 책을 썼나? 정도의 기대는 충분히 주는 저자다. 하지만 이 유물론자가 문학이론 외의 저작으로 이렇게 추상적인 개념을 주제로 책을 내놓은 적은 내 식견에선 없었던 것 같다. “유머란 무엇인가” 정도가 비슷하려나? 하지만 유머라는 단어에서 바로 떠오르는 사례는 있지만(여기서 어떤 사례가 떠오르는지에 따라 상당수의 세대가 구분될 것이다), 악이란 단어에서 떠오르는 사례는 모호하다. 그제서야 책 표지에 조그맣게 적혀 있는 부제가 눈에 들어온다. 아, 이 책은 우리 시대의 ‘나쁜 놈들’에 대한 책이구나.
그런데 여기서 ‘나쁜 놈들’은 결국은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야 무슬림 테러범을 지칭하는 것임이 확실히 드러나고(물론 머리말부터 흘깃흘깃 흘려주긴 한다), 책의 거의 대부분은 ‘나쁜 놈들’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 ‘나쁜 놈들’을 다루거나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특정 행동의 원인을 ‘악’으로 돌리는 방식이 얼마나 곤란한 결과를 가져다 주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의 옥스포드 영문학 연구교수는 사학자가 아니라 영문학자인만큼 다양한 고전들에서 논거들을 풍부하게 가져온다. 하긴 역사서에 기록된 악인들은 대개 악인이기보다는 역사에서 악역을 맡은 이들 – 내지는 패배자들 – 일 뿐이라는 게 이제 와서는 흔해져버린 시각이다.
이글턴은 이런 논거들을 통해 그 ‘악 결정론’이 절대적 자기책임의 신조, 말 그대로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율법인” 신조에서 비롯하였으며, 환경의 영향을 운운하는 것은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인간을 최악의 존재, 즉 “소련 국민”으로 환원시키는 것에 맞먹는 행위가 되었음을 설명하고, 이 부도덕하고 무지몽매한 서구의 이데올로기는 어째서 ‘나쁜 놈들’이 그렇게 되었는지는 관심이 없이, 과감하게 이들을 단죄하기 위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도록 하였다고 끝을 맺는다. 이런 무조건적인 폭력에 대하여 이글턴은 이미 “성스러운 테러”에서 방대하게 – 그리고 무척 난삽하게 – 다룬 바 있지만, 그래도 우리 시대의 얘기를 한다는 점에서는 이 책이 훨씬 쉽게 읽히는 편이다.
그럼 ‘나쁜 놈들’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유물론자답게 테리 이글턴이 제시하는 답은 물적 제도의 결과이고, 행위란 행위자가 사악하지 않더라도 사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애초에 저자의 관심사 자체가 아니었을 것이고, 굳이 이 유물론자에게 다른 정답을 기대하는 것도 넌센스일 것이다. 하긴 어차피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으로 차고 넘치게 설명해 두었으니 궁금하면 그쪽을 들춰보는 게 더욱 유익한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굳이 제목이 ‘악’일 필요가 있는 책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제부터가 “On Evil”인데 다른 제목을 붙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테러 얘기가 나왔다면 그냥 “성스러운 테러” 후속편처럼 보였을 테니 그것도 곤란하다. (그러니 저 부제는 출판사의 엄청난 고뇌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출판업계 종사자도 아니면서 괜히 내 머리까지 아파온다.
[테리 이글턴 저, 오수원 역, 이매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