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이 읽어봤느냐면 그건 아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나 무라카미 류나 둘 다 안 좋아(한다기보다는 싫어)하는 작가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래도 둘 중의 하나라면 그래도 꾸준하게 야설을 집필하고 있고 때로는 이거 문제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막 나가는 면이 있는 후자를 꼽는 편이다. 사실 꽤 건조한 문체가 아니었다면 평단이 좋아하는 중2병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어보이는 모습들도 있었지만, 건조한 문체 때문이든 어쨌든 이 잘 나가는 작가를 좋아하는 이는 꽤나 많아 보인다. 뭐 그러니까 이 잘 나가는 작가와 나의 공통점은 사는 물건이야 많이 다르지만 어쨌든 쇼핑을 좋아한다는 점 말고는 없는 셈이다.
그렇지만 작가가 그리는 쇼핑에 대한 얘기는 나의 경우와는 (당연히)많이 다르다. 그래도 기자가 여기저기 출장 다니면서 겪었던 일들을 그린 에세이라면 좋은 직장일지언정 어쨌든 샐러리맨의 애환이 묻어나오겠지만, 저명 소설가로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멋들어진 셔츠를 사 입으며 있었던 일들을 그리는 이 에세이에서 그런 샐러리맨의 땀내 같은 건 느껴질 수가 없다. 그러니까 제목만 보면 나름의 덕후 이력을 과시하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예상을 불러오는 이 에세이집은 ‘멋낼 줄 아는 멋진 남성들을 위한’ 류의 남성용 패션지를 단순 화보집과 구별할 수 있도록 굳이 이름 알려진 이를 섭외해서 꼭 싣곤 하는 토막글식 에세이를 모아 놓은 책에 가깝다. 말하자면 이 책에서 작가가 지갑을 열면서 쇼핑의 즐거움을 설파하는 물건들을 내가 현실에서 구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는 뜻이다. 아마 작가 본인도 자신의 쇼핑 생활이 일반인의 입장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은 (당연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의 인세로 나온 1,000만 엔으로 오디오를 사면서 작가는 이와 같이 쓴다 :
…그런 작품이 상품화되어 시장에 나가 이익을 낳고 저작권 인세로 은행 계좌로 돈이 들어오고, 그 일부를 찾아 엄청나게 큰 스피커를 산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사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한 가지 강하게 자각한 것이 있다. ‘큰돈이 들어왔으니 이제 자유로워졌구나.’ 쇼핑이 기분을 좋게 해 주는 이유는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어서만은 아니다. 갖고 싶은 것을 고르고 사는 행위는 자본주의적인 자유의 상징이다.
그러고 보면 쇼핑을 통해 자신의 생활도 그에 따라 어느덧 많이 달라졌음을 말하고 있는 작가의 이 쇼핑 목록은 바꿔 말하면 자본주의적인 자유를 성취한 어느 아재가 자유를 만끽했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발목에 자본주의적 족쇄를 달고 있는 월급쟁이가 보기에 마냥 즐겁게 읽히지만은 않는 이유는… 독자의 삐딱함이 가장 첫번째이겠지만 그것만 이유라고 하기엔 억울할 것이다. 오늘 이베이에서 판 하나 날려먹어서 짜증났기 때문이 절대 아니다.
[무라카미 류 저, 권남희 역,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