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래봐야 몇 년 안 되긴 했는데) 사이토 다마키는 “전투미소녀의 정신분석”에서 어떻게 ‘전투미소녀’가 등장하게 되는지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분석을 제시했다. 그 중의 한 부분의 요지를 정리하자면, 도상 표현이 상징적 거세를 당하는 서구적 공간과 달리 일본적 공간에서는 상상적 거세만으로 그치고(즉, 서구적 공간에서는 페니스를 상징하는 모든 도상이 검열되지만, 일본적 공간에서는 페니스 자체를 그리지만 않는다면 무엇을 그려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서구적 공간에서는 ‘그려진 것’은 자율적 리얼리티를 획득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현실의 대상을 대체하는 가상의 지위에 머무르나, 일본적 공간에서는 다양한 허구가 리얼리티를 가질 수 있고, 허구가 현실을 모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전투미소녀로부터 ‘일상적 현실’의 반영을 읽어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작가가 사이토 다마키를 읽어봤을 것 같진 않지만,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마법소녀’는 그런 전투미소녀의 상과는 공통점이 별로 없다. 소녀라는 단어가 사용된 합성어지만 마법소녀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소녀일 필요가 없다. (능력을 ‘각성’할 때 실제로 말하기엔 좀 낯간지러울 멘트가 등장하긴 하지만)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멋들어진 코스튬이나 무기 같은 건 등장하지 않고, 그런 면에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마법소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들 각자 현실의 인생을 살아가다가 필요한 때에 마법소녀로서 활동을 보여주고 사라지는 ‘생계형 히어로’에 가깝다. 사실 히어로라는 표현까지 무색해 보이기도 한다. 하긴 그러니까 꽤 허름한 반지하방에 29세 취준생 주인공이 갑자기 마법소녀로 발탁되는 게 소설의 세계관에서나마 가능했을 것이다.
소설은 당연히 이 보잘것없던 주인공이 이 세계관이 무너지기 일보직전의 절체절명의 위기에 와서야 비로소 겨우겨우 능력을 각성하고 엉겁결에 세상을 구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니까 사실 그리 예상 외의 서사는 아닌 셈인데, 작가가 이 뻔한 서사를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세상의 위기라는 것이 사실은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의 위기라는 배경설명을 덧붙이는 것이고, 주인공의 능력이 사용하면 그에 따른 대가를 어떻게든 치르게 되는 등가교환식이라는 것이다(무슨 강철의 연금술사도 아니고). 그런 위기를 늘어놓으면서 꽤 유쾌한 설정으로 시작한 이 소설은 무겁진 않지만 급격하게 표정을 바꾸어 진행되고, 결론에서 위아더월드를 외칠 수 있게 되었을진 모르겠지만 그 유쾌한 세계관은 어느새 웃음기를 싹 거두게 된다. 마법소녀가 존재했지만 곧 마법소녀들이 대부분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미약하나마 없던 능력이 생겨났고,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세상을 구할 것이다. 교훈적이겠지만 제목에 마법소녀가 들어가는 소설을 읽는 이들의 기대와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 책이 왜 내 책장에 꽂혀 있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긴 그 이전에 “전투미소녀의 정신분석”도 왜 꽂혀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따지면 (있을 리가 없었던)읽기 전 기대에 비해서는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박서련 저,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