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창 시절 한문 수업과는 다들 데면데면하면서도 무협지는 챙겨 보면서 정파와 사파의 구분 정도는 학생의 기본소양처럼 챙겨가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등장인물들이 무슨 무공이나 초식을 쓰더라도 그걸 읽는 이들은 무공은커녕 약육강식의 교실에서 자세 낮추고 살던 경우들도 많았다(어라 내 얘긴가). 하긴 싸움 실력이 읽는 책 따라 가는 거였으면 나는 아마 벌써 세계를 정복했다가 어느 골방 무협 전문가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냉가슴을 앓고 있었을 것이다. 이 블로그 글들이 대개 그렇지만 쓰면서도 정말 쓸데없어 보이는 얘기다.
그래서 그런 골방 무협 전문가들이 현실의 쭈글이 생활을 잠시나마 잊고 탐닉한 취미는 많은 경우 나만의 무협 만들기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네들의 상당수는 앞서 말했듯이 한문 수업과는 데면데면했고 그건 다른 과목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는 경우도 상당했으므로, 그렇게 만들어진 나만의 무협은 당췌 무슨 얘기인지 알아볼 수 없는 형태인 경우가 많았다. 가장 문제는 일단 액션물이거늘 얘네 싸우는 게 맞기는 한가 수준의 기묘한 서술은 무협을 무협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는 기묘한 결과를 가져온다. 하긴 시트콤 인생을 실제로 살아가는 이들은 많이 봤어도 액션물 인생을 실제로 살아가는 이들은 본 적이 없었으니 그네들로서도 변명거리는 충분한 셈이다. 펜이야 매일같이 쓴다마는 법치주의의 시대에 무슨 주먹질이란 말인가.
작가이자 훈련받은 격투가로서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는 저자는 이러한 이들을 위하여 싸움의 조건, 심리와 반응, 싸움의 유형, 무기와 부상 등 다양한 측면들을 조명하면서 나름의 가이드를 제시한다. 허나 한 가지 드는 의문은 어느 폭력의 현장을 여러 각도로 조명하면서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 이러한 내용들은 본질적으로 부정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차라리 이 책에 영상이나 사진을 담은 몇 장의 CD나 QR코드들을 첨부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가를 위한” 책은 이 책의 수요자들이 결국 이 책을 보고 공부한 내용을 다시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려 들 것을 알고 있었으니 그 정도 부정확성은 그저 감수해야 할 부분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기에 이 돈 될리 없어 보이는 분야에 대한 장황하면서도 때로는 듬성한 묘사에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런 방향의 선택이 작가임을 자임하는 저자가 어쨌든 문학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기왕 문학 얘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독서 편력이 형편없긴 하지만 생동감 있는 싸움의 현장을 담아낸 글을 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애초에 현실적인 얘기를 생각하지 않는 게 무협지였다면 존재하지 않았던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내기는 쉽지 않았을 테지만 문학과 현실과의 관련성을 강조했던 이들의 글들에서도 그런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음은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결국 그 분들도 사실은 무협지를 쓰는 이들과 어느 면에서는 전혀 다르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물론 글밥 먹는 입장은 아닌지라 이런 얘기는 여기까지.
[카를라 호치 저, 조윤진 역,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