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랙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록 팬을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생각들 중 하나는 어느 쪽이 되었든 청소하면서 틀어놓기는 꽤 곤란한 음악이라는 점이다. 일단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두자니 층간소음의 영역을 넘어서 외부의 행인들에게도 소음공해 클레임을 받을 가능성이 보이고, 가족들이 있는 가운데 틀어놓자니 뿌리깊은 취향을 원없이 공격받을 광경이 그려진다. 그래서 안전하게 혼자 있을 때 틀어놓고 열심히 청소한다는 선택지에 이르면 청소에 집중하면 음악이 안 들리고 음악에 신경쓰면 청소가 안 된다는 딜레마에 마주한다. 수많은 헬스장의 관장들이 생각해 보면 다들 음악 취향이 똑같을 리 없건마는 헬스장 bgm은 어딜 가나 비슷했던 것과도 비슷한 원리일 것이다.
자기 소개부터 재즈를 즐겨 듣는다고 취향을 밝혀두고 있는 이 저자의 경우는 그럼 어떠할 것인가? 흥미로운 점은 제목에까지 청소하면서 듣는 음악임을 밝혀두고 있지만 정작 이 책에서 저자가 청소하면서 들었던 음악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사실 청소라는 건 상쾌함, 청량함, 명랑함 등을 떠올릴 수 있을 일종의 비유일 뿐이라 밝히고 있긴 하지만 청소가 ‘refresh’보다는 노동에 가까운 의미로 다가오는 (나 같은)이에게는 공감하기 어려운 얘기다. 청소가 ‘상쾌하고 청량하고 명랑함의 알레고리’가 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저자가 나와 상당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던가, 아니면 저자의 초고가 출판사를 거치면서 새롭게 변신했을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겠다.
출판과 관련해서는 최종 소비자로서의 역할 외에 아무런 경험이 없는 자로서 이 책의 초고가 거쳐왔을 운명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저런 가능성에 비추어 짐작해 본다면 아마 꽤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였을 편집자는 이 책의 초고를 받아들고 헬스장에서 웨이트를 하려는데 Dream Theater가 흘러나올 때와 비슷한 당혹감을 느끼고 저자가 정말 청소하면서 들었던 음반들의 내용들을 원고에서 들어냈을 것이고, 그러다가 책의 제목과 내용의 차이가 주는 극명한 괴리감을 깨닫고 들어낸 원고를 살려낼 것인지 고민하다가 결국은 ‘비교적 사소한’ 수정을 가하기로 하는 결정에 이르렀을 것이다. ‘음악 얘기를 하면서 청소라고 했다고 정말 곧이곧대로 청소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청소나 다른 일상에서의 일들이나 음악을 배경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혹시 고지식한 독자도 있을지 모르니 흐름을 깨지 않게 간단히 머리말에 밝혀두는 건 어떨까요?’ 등등등.
물론 이런 흐름들은 순전히 내 생각이고, 저자나 편집자나 한 번도 저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처음부터 청소는 저자나 편집자에게 그냥 미끼같은 단어였을 뿐 기획의도는 그냥 음악을 소재로 한 에세이였을 수도 있다. 아무튼 책은 나왔다. 청소할 때 들을만한 음악은 아니지만 어쨌든 저자의 재즈 취향과 인생의 소소한 에피소드들 일부를 엿볼 수 있는, 아마도 이 책을 돈주고 샀던 메탈헤드에게는 어정쩡하게 다가올 수 있는 형태로 나와서 그 메탈헤드의 책장에 어색하게 자리잡고 있다. 근데 이거 서평이 맞기는 맞나…
[이재민 저, 워크룸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