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의 제목을 대충 우리말로 옮긴다면 ‘진짜배기 우파의 시각으로 본 파시즘’ 정도가 될 수 있을까? (그런데 Julius Evola가 스스로를 ‘우파’라고 여기기는 했나? 잘 모르겠다) Julius Evola를 후대의 파시스트들 내지 극우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떠나서 Evola 본인이 파시즘을 좋게만 보지는 않았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데다, 아무래도 그 ‘신비주의적’ 접근을 실제 정치의 현장에서 뛰는 이들이 현실적인 전략/전술로 구현해 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자극적인 제목에 비해 Evola의 저작들 중 그리 주목받는 책은 아닌 것 같다. 하긴 Evola의 철인정치적 시각이라면 트럼프의 당선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현재의 세상은 Evola가 바라본 것과는 꽤나 다를 것이니 굳이 시선을 끌 이유도 없어 보인다. 하긴 영역본이 나온지도 벌써 10년은 지났다.
Evola의 다른 책이 그렇듯이 이 책에서도 Evola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비교하면서도 그 차이를 인간의 실존에 대한 시각의 차이에서 가져온다. 전자는 ‘catagogic’한 시각이고, 후자는 ‘anagogic’한 시각이라는 것인데, 이런 ‘철저할 정도로’ 이론적인 접근 탓인지 그 차이가 현실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는 제시되는 바가 없으므로 나 같은 문외한으로서는 그 차이를 쉬이 이해할 리 만무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이전의 전통적인 국가상에서는 둘 다 찾아볼 수 없었던 시각이라는 설명이다. 파시즘은 본질적으로 권위주의(이는 Evola의 ‘철인주의’와는 분명 달라 보인다)지만, 이러한 ‘권위’는 국가 전체가 공통의 목표를 향해 움직일 수 있었던 시대에는 불필요한 개념이었고, 흔히 파시즘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인종주의 또한 필연적인 귀결이 아니라 결국은 그런 권위주의적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파시즘을 낳은 시대의 경제적 토대나 역사적 상황 등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으면서, 파시즘을 구현한 정치 체제(특히 무솔리니)에 대하여 좀 더 내용을 할애한다는 점인데, (아마도 두체 시절을)전통적 의미의 군주와 근대적 의미의 독재자가 권력을 양분하는 과두정처럼 이해하는 모습은 이 책이 철저히 이론적인 접근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시각처럼 보인다. 군주로서의 권력과 독재자로서의 권력이 동일한 인물에 집중되어 있다면 그 구현은 아무래도 두 명의 철인이 서로에게 무신경하긴 어려울 과두정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이미 파시즘의 붕괴를 목격한 이후인 1964년에 나올 분석임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허무하다. 하긴 Maurice Bardeche도 비슷한 시기에 “Qu’est-ce que le fascisme?”에서 파시즘에 대한 유토피아적 시각을 제시했다 하더라(읽어보지 않아서 내용은 모름).
그러니까 아마존 등에서는 Evola를 처음 읽어보려는 자에게 추천한다고 하는데, 그게 그리 적절한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파시즘에 대한 일반적이지 않은 시각이 궁금한 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봐도 좋을지도.
[Julius Evola 저, Arktos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