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초에 펑크가 있었고 살기 더욱 팍팍해지면서 펑크족들의 계급의식 또한 고양되었으며 결국은 극우파 스킨헤드들과 안티파의 싸움으로 치달았다더라는 얘기야 이미 유명하지만 그 자세한 이야기들을 접하는 건 사실 쉽지 않다. 이유는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분명할 것이 이제 와서는 시의성을 찾아보기 어려울 얘기인 것도 있고, 애초에 음악조차 찾아 들어보기 어려울 극우파 스킨헤드 펑크 얘기가 궁금할 이는 별로 없을 때문인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럼 대체 나는 이런 책을 대체 왜 돈주고 사서 읽고 있는가? 인생이 언제부터 이렇게 좀 삐딱해졌는지 의문이지만 누구도 궁금하진 않을 것 같으니(사실 나도 그렇다) 이 얘기는 여기까지.
책은 1979년부터의 영국 스트리트 씬에 대한 르포를 보는 듯 자세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음악인들과 그 시절 씬 주변을 횡보하던 가지각색 부류의 이들을 망라하는 듯 다양한 인터뷰들과 팬진들의 이야기들, 스킨헤드들이 흩뿌린 사고들을 생각보다 건조한 시선으로 옮겨놓은 신문기사들, 현장의 치열함을 옮겨오는 것이 지상목표인 듯 조금은 초점이 나간 사진들은 굳이 뭐 이런 것까지? 싶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인물은 Ian Stuart고, 브리튼 국민당이나 국민전선 등의 스트리트 펑크를 프로파간다에 이용했던 많은 우파 정치꾼들의 이야기들도 곁들여진다.
이 책의 (아마도) 가장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많은 펑크 밴드들은 – 당대 또는 후대의 평가와는 별도로 – 보통은 정치꾼에 쉬이 휘둘려버린, 분노가 넘치지만 나름 선량했던 그 시대의 평범한 젊은이들마냥 묘사된다는 것이다. Ian Stuart마저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Skrewdriver의 리더가 아니라 그저 나름의 신념을 관철했던 생각보다는 금욕적이었으며 아이들에게도 친절할 줄 알았던 청년 Ian Stuart의 모습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출처가 Ian Stuart의 친구들이므로 이 얘기를 얼마나 믿을 수 있겠냐 하는 건 있겠지만, 대충 맞다고 친다면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좋은 사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리에서 안티파들과 주먹다짐도 마다하지 않았던 용맹한 스킨헤드는 정치꾼보다는 순진한 청년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혁명가보다는 훌리건에 훨씬 가까워 보이는 이 우파 스킨헤드들에 정치 세력으로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저런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생각하면 그네들이 스스로의 계급의식에 대해서, 자신들이 은연중에 행사해 버린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서 얼마나 인지하고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 영향력 행사의 여파가 이후 결코 작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당혹스러울 일이다. 세상은 가끔 생각지 못한 지점에서 뒤틀리기 시작한다.
[Robert Forbes & Eddie Stampton 저, Feral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