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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라인의 작품들 중에서는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긴 한데… 하인라인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을 찾아보매 이 부분에서 세상 사람들 생각이 별로 나와 비슷한 것 같지는 않다. 굳이 따지면 청소년 SF로 분류되는 작품이기도 하고… 초기 설정이 “우주복 없음, 출장 가능”과 비슷한지라 그런 류의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라면 이젠 번역서를 구하기도 어려운 이 책을 굳이 고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뭐 그래도 “우주복 없음, 출장 가능”의 공부는 그냥저냥이지만 천재적인 아빠를 닮아서인지 기계에는 일가견이 있는 너드에 가까워 보이는 주인공에 비하면, 예쁘고 머리도 좋으며 심지어 착하기까지 한 우리의 포드케인이 SF의 주인공으로는 좀 더 의외인 데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책은 저 “우주복 없음, 출장 가능” 같은 청소년 SF를 생각하면 황당할 정도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마지막 금성 부분의 세 가지 결말 중 출판사의 진라면 순한맛식 엔딩을 제외한 나머지는 독자의 뒤통수를 꽤 세게 휘갈기는 데가 있다(특히 하인라인 버전). 묵직한 성인용 SF를 쓰려다가 출판사의 요구로 청소년 SF로 바꾸면서 쌓였던 불만이 결말부에서 터지기라도 했을까? 응당 그래도 희망찬 내일을 보여줘야 했을 청소년 SF의 엔딩은 어디 가고 암울하기 짝이 없는 결말이니 이걸 처음에 봤을 편집자의 당혹감은 으레 짐작이 된다. 이 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인라인은 3년 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의 그 엔딩을 내놓게 되지 않았을까… 라고 하면 과하려나? 그만큼 강렬한 결말을 선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도 결말이 그래서 그렇지 책은 하인라인 특유의 모험 활극적인 장면도 가득하다. 지구에 화성에 금성까지(거기다 달도 살짝) 빼먹지 않고 그려내면서 한창 발전 도상에 있는 활기 넘치는 풍경이 배경인고로 모험을 떠나기엔 딱 적당해 보인다. 생각해 보면 전후 발전을 거듭하던 1963년이었으니 가능했던 상상력이라는 생각도 들고, 결말이 시궁창이라서 그렇지 뭐든지 주인공보다 더 잘 하는 동생만 빼면 주인공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도 모두 청소년 SF다운 당찬 캐릭터들이다. 생각해 보면 출판사 엔딩 버전이라면 청소년 관람가로 영화화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이야기기도 하다.

하지만 절판 이후 번역본도 안 나오고 있는 책에다가 할 얘기도 아닌 것 같고, 스타쉽 트루퍼스 영화를 보고 이름모를 주인공이 데니스 리처드와 천재소년 두기와 함께 스페이스 바퀴벌레를 잡는 영화라고 평하던 누군가를 생각하면 그냥 영화 안 나오는 게 나을지도. 결론은 그래서 책을 읽읍시다.

[로버트 A. 하인라인 저, 안태민 역, 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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