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cker1990.jpg이왕 Metal Enterprises 얘기가 나온 김에 한 장 더. Godzilla의 2집처럼 레이블이 자체적으로 짝퉁 밴드를 굴려서 찍어 내는 일을 많이 한 레이블이다보니 황당한 앨범도 그만큼 많이 나왔지만, 그 중에서도 이만큼 심각한 앨범은 찾기 어렵다는 게 사견. 정보를 찾을 수가 없으니(당장 인터넷에 밴드 사진 한 장이 없다) 장담은 못하지만 Godzilla가 그랬듯이 레이블의 나름의 기믹을 잡고 스튜디오 밴드 시켜서 만든 짝퉁이 아니련가 싶은데, 문제는 이 기믹이 ‘white power’였다는 것이다. ‘White Power’나 ‘Comrads in Arms’ 같은 곡명도 그렇고, 앨범 아트워크에도 은근슬쩍 들어가 있는 스킨헤드들은 이게 의도된 모습이었음을 알려주는데, 밴드명이나 앨범명, 앨범 커버는 정작 그런 기믹과 거리가 멀어 보이니 레이블도 만들면서 무섭기는 했나보다 하는 생각도 조금은 든다.

그런데 정말 괴악한 사실은 Fucker는 바로 2년 전에 나온 데뷔작에서 (물론 잘한다는 말은 못하지만)인종주의를 배격하는 가사를 담은 하드코어를 연주했던 밴드였고, 심지어 흑인 보컬을 앞세웠던 밴드였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음악 스타일도 적당한 공간감의 키보드 연주를 깔고 적당히 팝적인 멜로디를 심각한 보컬과 함께 풀어나가는 멜로딕 하드락 정도로 말하는 게 맞을 법한 모습인데, RAC 밴드 기믹으로 이런 음악을 한다는 자체도 좀 웃기기는 한데다, ‘Robot of Love’처럼 그냥 이것저것 모두 떠나서 곡 자체가 웃긴 사례도 있는만큼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든 앨범인지 다시금 의심이 간다. 하긴 생각해 보면 레이블이 기획한 음반이니 아마 재정적 고려도 있었을진대 RAC 컨셉트를 잡는다는 자체가 이해가 되는 얘기는 아니다. 웃기려고 그런 걸까.

[Metal Enterprises,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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