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수물 팬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 사람 눈에도 1998년작 고지라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망작이었다. 원작에서 ‘킹왕짱 데우스엑스마키나 먼치킨’에 가까운 존재였던 고지라가 사실은 돌연변이 이구아나였다는 설정은 물론, 미사일 몇 방 맞고 뻗는 데다가 불도 못 뿜고 달리기로 택시도 못 따라잡는 모습은 괴수물 팬들에게는 아마 용서가 안 되는 얘기였을 것이다. 부창부수라서 그런지 OST도 그 시절 잘 나가던 밴드들이 꽤나 참여했지만(배철수씨도 라디오에서 약간은 의아할 정도로 자주 틀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신청이 들어갔으려는지는 잘 모르겠다) 곡들은 별로였다. 이 OST 앨범을 계기로 내게 Jakob Dylan과 Puff Daddy의 이름은 한동안 금지어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Foo Fighters의 ‘A320’은 앨범에서 유일하게 들을 만한 곡이었다. 1998년에 모던로크척결을 외치며 열심히 블랙메탈을 찾아 들으면서 개털 같은 머릿결을 고민하던 고등학생에게 Foo Fighters는 귀에 쉬이 들어오는 밴드는 아니었고, ‘A320’은 Foo Fighters가 이후 덩치를 키우기 전까지는(아마 2006년쯤이었지 싶은데) 전례가 없던 구성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지 밴드가 써먹는 스트링 섹션은 쉬이 연상되지는 않는 법이다. 그러고 보면 Dave Grohl은 호오를 떠나서 ‘epic’한 곡을 쓰는 데는 확실히 능력이 있었다. Nirvana는 이런 곡을 쓸 능력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배철수 아저씨는 그 시절 왜 이런 곡을 놔 두고 Puff Daddy만 줄창 틀었던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 곡만으로도 이 OST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물론 내 생각이다.
[Epic,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