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메탈을 빙자한 개그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블랙메탈의 나름 짧지 않은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개그를 시도한 밴드들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Vondur가 첫손에 꼽히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얘기하면 뭔가 거창한 음악이 담겨 있었을 것 같지만 사실 이 데뷔작(이자 창작곡으로는 사실상의 유일작)의 음악은 솔직히 들어줄 구석을 도대체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It과 All이라는 90년대 블랙메탈의 네임드들과 얼척없긴 하지만 뭔가 있을 것 같은 저 다스 베이더 커버를 믿은 얼치기 메탈헤드가 씨디를 돌리면서 마주했을 당혹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아마도 Necropolis 레이블에 대한 개인적인(그리고 부정적인) 편견이 시작된 지점이었으리라 짐작하고 있다.

굳이 스타일을 말한다면 서너개 남짓한 코드들을 이용한(그리고 분명 트레블을 잘못 건드린 거로 예상되는) 심플한 트레몰로 리프와 함께 트리벌하다기보다는 단순한 리듬 파트에 싼티로는 당대의 동향 밴드들을 능가하는 신서사이저를 곁들인 블랙메탈인데, 특히 매우 뜬금없는 타이밍에 튀어나오는 FX 효과음이 (다른 의미에서)일품이다. 좀 과음한 King Diamond를 따라하는 듯한 클린보컬과 좀 읽어보면 조크들로 점철되어 있는 라이너노트, 스웨덴 밴드지만 사실은 스웨덴 말도 아니라고 알려져 있는 곡명들 등 뭐 하나 비범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

물론 씨디값을 날렸다고 생각하고 있는 동방의 메탈헤드에게 이런 식의 유머가 먹혔을 가능성은 낮았고, 그래서 이 앨범을 듣고 유쾌했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그런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쓸데없을 정도로 무게잡고 블랙메탈의 이름으로 세상을 정복하려는 듯 날뛰던 천둥벌거숭이들이 아직 넘쳐나던 1996년에 이런 음악을 했으니 아마도 씬의 역사에 이 정도의 어그로는 그 이후로도 예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No Compromise!” 컴필레이션에도 통째로 수록되어 있긴 하지만 이 앨범은 바로 저 다스 베이더 버전을 사야만 한다. 대체 이 앨범에서 저 개그를 빼면 뭐가 남는단 말인가?

[Necropolis,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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