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이쩍은 작명 센스를 보여준 많은 블랙메탈 뮤지션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발군의 작명 센스를 보여준 이라면 It만한 사람도 없지 않았나 싶다. 때로는 어떻게 읽는지도 의심스러울 스펠링의 이름이나, 솔로몬의 72악마 말석 어딘가에나 박혀 있을 법한 이름을 가져다 쓰는 이도 넘쳐나는 블랙메탈에서 이 정도면 거의 의도된 몰개성에 가까울 이름이다. 하긴 본인도 어떠한 퍼스낼리티나 범주화를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이름이라고 하니 이해되는 선택이지만, 솔직한 생각으론 블랙메탈 쪽에서 활동하면서 It이라는 가명을 이용하는 것은 몰개성의 탈을 뒤집어쓴 개성에 가까울 것이다. 뮤지션 이름이 무명씨라고 한다면 그게 더 기억에 남겠거니 싶다.
이 블랙메탈의 90년대 초창기부터 활동한 뮤지션의 가장 잘 알려진 밴드일 Abruptum은… 일단 카테고리는 메탈로 해놓긴 했다만 음악만 봐서는 사실 메탈 밴드라고 하긴 좀 어렵다. 꽤 먹먹한 톤의 느릿느릿한 리프에 조금은 싼티나는 호러풍 키보드를 깔아두는 심플한 연주는 메탈보다는 그냥 기타를 조금 이용한 다크웨이브/앰비언트에 가까워 보인다. 이 심플한 연주에 어느 밴드도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의 아우라(라긴 좀 뭣하고 분위기)를 부여하는 것은 It의 그 미친 듯한 보컬이다. All(이것도 멤버 이름이다. 이 밴드는 애들 작명이 왜 다 이 모양이냐)의 보컬이 좀 더 익숙한 데스메탈 보컬에 가깝다면, It의 보컬은 고문의 간접체험 기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밴드의 정규작은 걸핏하면 곡당 1시간이 넘어가는 괴팍한 러닝타임을 보여주므로, 그래도 짤막한 러닝타임을 보여주는 이 EP를 권하는 편이다. 아마도 밴드의 가장 잘 알려진 곡일 ‘De Profundis Mors Vas Cousumet’이 있는 것도 그렇고.
[Blooddawn,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