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배운 이베이질에 열중하던 시절(지금도 뭐 끊은 건 아니다만) 거래하던, 정말로 트랜실바니아에 살던 그 루마니아 셀러는 항상 신용카드가 아닌 현금만을 받곤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 동네는 너무 깡촌이라 비자랑 마스터카드가 서비스가 안돼 허허’. 하지만 짧은 인연과 식견으로 그 셀러를 거치지 않고는 동유럽의 답 없는 데모들을 구하는 건 나로선 불가능했다. 그 셀러는 야쿠부 아예그베니가 어이없게 월드컵에서의 행보를 끝장내던 그 경기 후 한두 달도 되기 전에 자기 말로는 Summoning이 레이블들에 뿌린 프로모라는 한 줄짜리 설명만을 이메일로 전하며 곡명도 커버도 아무것도 없는 알판 씨디를 60달러에 팔아먹고(참고로 씨디는 송금 후 8개월만에 도착했다) 이베이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 불가리아 밴드의 데모는 그 때 함께 커버도 없이 딸려왔으니(말하자면 사실 이것도 진품인지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뭐 개인적으로는 눈물젖은 데모 한 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98년작 데모는 그 진위를 알 수 없는 Summoning 프로모의 실망감을 날려버릴 정도로 인상적인 음악을 담고 있다. 일단 음질부터가 데모 수준이 아닌데다, 느리지만 묵직하기 그지없는 리프는 90년대 초중반 둠-데스의 전형이나 같았다. 이따금 빠르지는 않지만 분위기를 환기하기에는 충분한 솔로도 등장하는데, 사실 이런 식의 솔로잉은 Officium Triste 같은 밴드가 더 잘 하겠지만 어두운 분위기만큼은 이들이 더 나아 보인다. ‘People That No-One Will Miss’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앨범이지만 당연하게도 밴드는 더 이상 이어가지 못했다. 일단 신용카드도 안 받는 셀러이다보니 홍보할 여력도 아마 없었었나 보다.

그러다 이 이름을 다시 발견하게 된 건 한참이 지나 Rage of Achilles의 광고 플라이어에서였다. 나름 레이블의 야심작이었던 Darkflight는 블랙메탈 물을 좀 더 먹기는 했지만 둠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밴드였고, 밴드의 브레인인 Ivo Iliev는 이따금 인터뷰에서 Darkflight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Cryptophobism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고는 했다. 물론 그랬다고 이 밴드가 다시 조명받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뭐 그래도 나같은 사람이 이제 와서 블로그에 글도 남기고 있으니 아예 실패한 시도는 아니었다고 쓸데없는 위로를 전해본다. 물론 위로는 안 됐을 것이다.

[Self-financed, 1998]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