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icidal Emotions”가 블랙메탈, 특히 디프레시브 블랙메탈의 어떤 마일스톤이라 생각하는데 저 앨범의 만듦새에 대한 얘기를 떠나서 그게 그렇게 중요한 앨범이었나? 라는 데에는 별로 동의하는 이를 많이 보진 못했다. 이유야 찾으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정규반은 “Suicidal Emotions” 한 장 뿐이었고, 앨범이 나오던 2000년에는 이미 Shining이 “Within Deep Dark Chambers”로 디프레시브의 어떤 전형을 만들어낸 시점이었다. 감정을 건드리기보다는 느린 리프로 블랙메탈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한 사례를 제시한 앨범처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Shane Rout 본인부터가 ‘살고 싶지 않아요 징징징’과는 거리가 좀 멀어 보이는 사람이기도 하고.

이 1994년작 데모는 애초에 이 프로젝트가 디프레시브와는 아무 상관없는, 비슷한 시절 Darkthrone의 그림자 밑에 있는 사운드를 들려주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트레몰로 리프를 빼면 템포만큼은 오히려 데스메탈의 그것에 더 가까운 편인데, 그러다가도 ‘Land of Impenetrable Darkness’의 호전적인 비트는 이 호주 밴드가 그 시절 노르웨이의 흐름을 꽤 정확히 짚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Bloodletting’ 정도를 제외한다면 – 아마도 앨범에서 유일하게 디프레시브다운 – 시종일관 블랙메탈 데모치곤 훌륭한 음질로 몰아붙이는 앨범인지라 꽤 시원시원하게 들을 수 있다. 말하자면 소략하지만 그만큼 비범했던 1994년의 블랙메탈 데모인 셈이다.

덕분에 찾는 이들은 꽤 많은 데모였지만 100장만 찍은 덕분에 아름다운 가격을 떠나서 거래 자체도 거의 되지 않는 물건이 되었는데, Shane 본인이 Det Hedenske Folk와의 스플릿 앨범으로 구하기 쉽게 풀어 버렸으므로 궁금하신 분들은 그 스플릿을 구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굳이 오리지널 있어 봐야 이거 자랑할 사람도 아마 주변에 없을 것이다. 내가 안다.

[Self-financed,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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