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키델릭’ 블랙메탈이라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밴드가 Esoteric(말하고 보니 둠메탈 밴드구나)이라면 Oranssi Pazuzu는 그런 선입견에 가장 강한 도전을 보여준 최근의 밴드였다. 그리고 Esoteric이 밴드 초기의 약 먹은 분위기에서 점차 (물론 상대적이지만)전형적인 둠-데스에 근접해 왔다면, 반대로 Oranssi Pazuzu의 사이키델릭은 갈수록 그 정도를 더해갔다. 사이키델릭이란 말이 붙었다 뿐이지 어쨌든 분명한 블랙메탈이었던 초창기의 스타일은 “Värähtelijä”부터 사이키델릭, 또는 70년대 독일의 약 냄새 물씬 풍기던 아트하우스 전자음악(아니면 크라우트록이나 Steve Reich)의 모습을 닮아갔다고 생각한다.

“Mestarin Kynsi”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Nuclear Blast로 이적하면서 분위기는 갖다버린 평범한 블랙메탈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는데, 그 약 분위기는 이젠 Waste of Space Orchestra 이상으로 진해졌다. 리프도 블랙메탈의 기운이 가신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다른 장르의 모습들이 더 진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신경질적인 리프의 질감에서 Neurosis를, ‘Kuulen ääniä maan’의 일렉트로닉에서 Nine Inch Nails를 발견하다가도, ‘Uusi teknokratia’의 팬플룻 소리에서 프로그레시브의 흔적을 발견하고 약간 뒷목이 뻐근해지곤 한다(이 지점에서 Enslaved 생각을 안 할수 없다). 말하자면 이제는 연주 자체보다는, 밴드 특유의 분위기를 이용해 만드는 ‘서스펜스’로 블랙메탈의 느낌을 재현하고 있는데, 서스펜스 중간중간 느껴지는 싼티나는 신서사이저가 거슬릴 이도 있겠지만 John Carpenter의 팬을 자처하는 이로서는 좋게만 들린다.

아주 좋게 들었는데, 다음 앨범쯤 되면 이제 더 이상 블랙메탈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조금은 불안하다.

[Nuclear Blast,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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