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밴드 이름이 이래서야 음악이 뭐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범상찮겠다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나마 레이블을 보고 어땠든 블랙메탈이긴 하지 않을까 정도만 짐작하며 앨범을 접했는데도 이렇게 짐작이 제대로 빗나가는 경우는 그래도 드물었던 것 같다. 얻어맞은 뒤통수가 얼얼한 가운데 부클렛을 들춰보니 밴드 편성부터 보컬, 베이스에 클라리넷이고, 스스로의 음악들을 ‘다크 오컬트 펑크(funk)’라고 자처하고 있다. 거기까지 보고 나서야 지금 이런 음악을 들었었구나 조금 가닥히 잡힌다. 물론 가닥이 잡혀도 꽤 괴이한 걸 들었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펑크라고는 했지만 사실 리듬감으로 먹고 사는 음악은 아니고, 그보다는 앰비언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둠에 가까울 정도의 여유 있는 템포를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오컬트 분위기로 승부하는 앨범이다. 베이스가 둠의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괴팍한 클라리넷이 이 분위기를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뒤튼다. 기묘한 건 덕분에 앨범을 들으면서 머리속에 떠오르는 별다른 이미지가 없었다는 점인데, 거의 대부분이 임프로바이징으로 구성된 앨범이라니 그래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사실 철저하게 혼돈스러운 구성은 아니고, 부분부분 곡을 구성하는 멜로디나 테마들은 있지만, 그 사이사이를 연결하는 모습이 좀 황당할 정도의 도약이다보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덕분인지 세평은 꽤 좋은 모양이지만 아직은 이 앨범이 정말 그 정도인지 별 감은 없는데, 그래도 2020년 가장 신기했던 앨범을 꼽으라면 가장 유력한 후보일 것이다. 뭐, 이 EP로 밴드를 첫 선을 보이는데 이만큼 어그로를 끌었다면야 어쨌든 충분히 성공적인 거 아닐까.

[I, Voidhanger,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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