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랙메탈을 좀 들은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이건 뭔가 싶을 밴드명이고, 이 밴드가 Desaster에서 마이크를 잡았던 Okkulto의 밴드임을 알게 되면 저 밴드명은 사실 위키피디아에서 찾으면 나오는 그리스 신화의 그 존재가 아니라 Euronymous의 말장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Euronymous라는 단어 자체가 사실은 저 Eurynomos의 말장난에서 나왔을 것이고, 이미 Euronymous가 망자가 된 지 20년은 지나서야 데뷔 EP를 낸 밴드의 이름을 굳이 그런 말장난으로 지었을까도 싶으니 그렇게 삐딱하게 볼 것만도 아니다 싶기도 하다. 사실 Desaster와 노르웨이의 불한당들을 비교하면 어쨌든 사고치고 다닌 건 후자니까. 각설하고.
이미 몇 장의 EP로 이름을 알려놓긴 했지만 밴드는 작년에야 첫 정규반을 발표했는데, 스타일은 EP들과 똑같은 블랙스래쉬지만 음질은 아무래도 확실히 좋아진 편이고, EP가 어쨌든 Hellhammer와 “To Mega Therion”의 Celtic Frost의 그림자가 확연한 스타일었다면 Venom에서 Bathory, Slayer까지 넘나드는 이 앨범이 좀 더 다양한 면모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Pantokrator’ 같은 곡의 ‘건강한’ 코러스는 전형적인 독일풍 스래쉬의 모습이지만, ‘Titan God’의 리프는 아마도 “Hell Awaits”를 의식했을 것이다. 가끔은 “Sardonic Wrath”의 Darkthrone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런 류의 앨범에서 시도할 만한 건 죄다 쑤셔박은 모습인 셈인데, 그래도 밴드의 구력이 깊은지라 어느 하나 뒤떨어지는 것도 없어서 충분히 즐겁게 들을 수 있다. 커버도 여전히 멋대가리 없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EP들의 얼척없는 커버보다는 나은 편.
[Iron Pegasus,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