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작 제목만으로 이미 스스로의 스타일을 정의내리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그리고 벗어날 생각도 전혀 없어뵈는) 이 웨일즈 데스메탈 밴드를 접한 건 그저 우연이었다. 날카로운 순록 뿔 그림이 좀 부자연스럽긴 했지만 Arctic Serenades는… 부틀렉이 아니라는 게 의심스러웠던 Vader의 “The Darkest Age – Live ’93”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레이블명에 걸맞게 적당히 묵직함을 뽐내는 둠-데스 스타일의 앨범들을 내 왔고, 그런 만큼 Desecration의 데뷔작은 그 카탈로그에 끼어 있을 이유가 하등 없어보이는 앨범이었다. 그렇게 구한 앨범은 검열 덕분에 밋밋하기 그지없는 커버로 바뀌어 손에 들어왔고, 덕분에 만듦새의 수준과는 별개로 그리 즐겨 듣지는 않았으나 몇 년이 지나 100유로를 훌쩍 뛰어넘은 가격은 나의 심드렁한 시선에 어느새 애정을 불어넣었다. 돈은 역시 무서운 것이다.

그래도 이젠 Desecration은 정말로 즐겨 듣는 밴드가 되었고, 아마 밴드의 가장 ‘웰메이드’ 앨범은 마지막 앨범이었던 “Cemetary Sickness”라고 생각한다. 사실 소위 고어 데스메탈 특유의 ‘creepy’한 맛이 부족했던 전작을 의식했는지 이번 앨범은 밴드의 그 클래식한 스타일을 더욱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이런저런 샘플링을 깔아두는 ‘I, Cadaver’ 정도가 구성상 좀 튀긴 하지만 (음질이 좋음에도)적당히 구릿한 분위기로 무자비하게 달려주는 모습만은 일관되다. Unleashed가 Carcass를 듣고 음악보다는 테마에 감명받아서 만든 앨범이라면 이렇게 나오려나 싶지만, 아무래도 Extreme Noise Terror 출신들의 밴드인 Desecration이 몰아붙이는 면에서는 좀 더 우위에 있어 보인다.

93년부터 이런 스타일만 했던 밴드인만큼, 그 시절의 ‘클래식’ UK 데스메탈을 좋아했다면 좋은 선택일 것이다. 코로나 직전까지 열심히 투어도 돌고 있었으니 다음 앨범을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안 팔리긴 하겠다만 애초 기대부터가 없을테니 괜찮지 않을까? 밴드 본인들이야 웃기지 말라고 하겠지만.

[Metal Age,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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