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umension” 이후 꾸준히 Pink Floyd의 분위기를 휘감은 블랙메탈을 연주한 Enslaved의 “Monumension” 이후 앨범들 중 ‘굳이’ 가장 이질적인 한 장을 꼽는다면 아마도 이 앨범일 것이다. 물론 이렇게 얘기한다고 해도 밴드가 가져가는 사운드의 방향에 변화가 있던 앨범은 아니다. “Axioma Ethica Odini” 같은 앨범이 나름의 프로그레시브를 좀 더 극으로 몰아간 앨범이었다면 “In Times”는 밴드가 이 앨범까지 해 왔던 이런저런 스타일들을 (집대성까지는 아니더라도)중간점검하듯 한 번씩 훑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노르웨이 특유의 분위기를 약간은 기묘하게 뒤틀린 프로그레시브 바이브로 풀어내는데, 그런 면에서는 블랙메탈과 프로그레시브가 이만큼 비등한 모습으로 등장한 Enslaved의 앨범은 사실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앨범은 프로그레시브와 블랙메탈 모두의 매력을 다잡는 데는 사실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밴드는 내놓고 블랙메탈을 했거나, 내놓고 프로그레시브를 했던 이전작들에 비해서 어느 쪽으로든 분명 물러선 입장을 취했고, 그런 탓인지 프로그레시브한 파편들이 타이트한 리프들을 엿가락마냥 늘어뜨리는 경험을 Enslaved의 앨범에서 하게 되는 보기 드문 현상이 발생한다. ‘Nauthir Bleeding’의 플로리다풍 리프가 점점 망설이듯 늘어지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양상은 좀 당혹스럽고, 덕분에 나는 이 앨범을 Enslaved의 앨범들 중 가장 밑바닥에 놓는다.

물론 그렇더라도 수많은 B급 밴드의 자칭 필생의 역작과는 Chris Squire와 Billy Sherwood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거리가 있는 앨범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One Thousand Years of Rain’ 중반부의 멜로디는 Enslaved가 엮어낸 시간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어느 순간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Nuclear Blast,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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