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거의 종일 파워 일렉트로닉스를 들은 하루였으니 마무리는 좀 그래도 사람이 노래하는 앨범을 듣고자 문득 손을 뻗으면 이렇게, 메탈은 망했지만 그래도 록은 차트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고 동방의 어느 청자는 생각 없이 인생을 살아도 별 문제가 없었던 90년대 초중반의 앨범이 걸려드는 경우가 많더라. 아마도 그 시절에는 지금보다는 마음 편한 인생이었을 테니 그렇잖을까 싶다.

‘Novocaine for the Soul’로 더없이 유명한 90년대 클래식이자 Eels의 데뷔작이니 사실 이 블로그까지 흘러올 이들에게 설명은 불필요할 것이고, 아무리 그런지가 한풀 꺾인들 결국은 그런지 시대의 유산일 테지만 시애틀의 그 흐름과는 방향 자체를 달리하는, 아무래도 그런지를 하기에는 Beatles를 너무 많이 들었음이 분명해 보이는 영국적인 사운드를 꽤 좋아했었다. Randy Newman을 의식한 Nirvana같기도 한 저 첫 곡도 좋지만 칠링한 분위기의 ‘Flower’에서 역설적일 정도로 분위기를 바꿔버리는 ‘Guest List'(하모니카 솔로만으로도 이 곡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로 이어지는 부분이 앨범의 백미일 것이다.

뭐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만 사실 Eels를 선택하도록 하는 건 그 시절 얼터너티브가 보여주곤 했던 분노나 (나름의)고뇌보다는 어쨌든 이를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힐링’의 분위기에 가까웠던 밴드의 모습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곤 하는 사실이지만 어떤 시점에는 정말로 노보카인 같은 앨범이었던 셈이다. 라이센스도 나왔지만 2CD 리미티드 버전에 실린 BBC 라이브 보너스가 그만이므로 웬만하면 그쪽을 권한다.

[Dreamworks,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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