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드 스스로는 ‘에핑’ 비슷하게 읽어 달라고 주문하고 있는 이 괴이한 이름의 밴드는 분명 바이킹 블랙메탈을 연주하고 있지만, 정작 북유럽 근처에는 가 보지도 못한 미시간 출신의 친구들이라고 한다(겨울에야 미시간도 나름 춥겠지만). 말이 친구들이지 2인조의 단촐한 편성인데다 이 앨범이 데뷔작이니 선뜻 손이 가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런 이 앨범이 내게는 2014년에 들은 바이킹메탈 중에서는 최고였으니 신기할 일이다. 하긴 북유럽이라고 정말 그 사람들이 바이킹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음악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Bathory나 Enslaved 같은 장르의 기린아들의 모습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Enslaved의 “Blodemn”이다. 리프의 힘은 Ivar에 비해서는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두터운 신서사이저를 통해 분위기를 끌고 나가는 모습이 비슷한 편이다. Ulver풍의 리프로 시작했다가 Enslaved식 바이킹으로 이어지는 ‘The Stream’이 이런 전개의 전형을 보여주는데, 그래도 ‘Realms Forged’에서는 어쿠스틱을 줄이면서 굵직한 리프의 힘으로 곡을 이끌어 나가기도 한다. 말하자면 노르웨이 바이킹메탈이 이래저래 그동안 보여준 문법들을 잘 이해하고 나름대로 풀어내는 앨범인 셈인데, 이미 2014년은 노르웨이 밴드들 중에서도 이만큼 클래식한 바이킹 스타일을 연주하는 밴드를 만나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러니 이 앨범이 그만큼 반갑게 들리지 않았을까 싶다. 멋진 앨범이다.
[Blood Music,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