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pagan-doom을 얘기한다면 아마도 첫손에 꼽을지 말지를 꽤 진지하게 고민할 만한 벨라루스 둠 메탈 밴드. EP를 빼면 겨우 세 장을 발표한(그나마도 두 장은 1997년에) 밴드라지만 일단 이런 스타일로 묶을 만한 밴드들이 생각보다 별로 없기도 하고, ‘pagan’이라는 레떼르를 붙이기에는 아무래도 영미권보다는 북유럽이나 동구권이 더 나아 보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점들을 생각하면 이 스타일의 대표격으로 칭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일단 첫 데모를 “Stream from the Heavens”이 나오기도 전에 내놓은 밴드이니만큼 포크풍이 무척 짙기는 할지언정 동구권 둠 메탈의 파이오니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The Eerie”는 밴드의 가장 둠 메탈 성격이 짙은 앨범이다. 사실 이 밴드의 세 장은 모두 스타일은 대동소이하지만, 좀 더 포크적인 느낌이 강했던 “The Turns”와 때로는 마음 한켠에 메인스트림을 노리고 있는 걸까 의문스럽기도 했던 “Steel Says Last”에 비하면 리프의 둔중함이 확실히 돋보인다. ‘Till Death Do Us Part’ 같은 곡의 극적인 구성이나 가사를 본다면 바이킹 둠이라고 해도 좋을 법한데, ‘The Eerie’의 영적이라고 해도 좋을 분위기(와 아마도 Quorthon을 의식했을 Lesley Knife의 보컬)를 본다면 땀냄새 풀풀 불끈불끈보다는 바이킹이 고독하게 발할라를 맞이하는 풍경이 좀 더 어울릴 것이다. 이런 표현이 나오는 거 보니 요새 빈란드 사가를 너무 본 것 같은데 넘어가고.

Leslie Knife는 최근에 벨라루스 정치인을 온라인상에서 모욕한 일로 3년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그곳도 이래저래 어지러운 나라가 아닌가 싶다. 빠른 석방을 빈다.

[Metal Agen,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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