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도 블랙메탈 레전드라는 사실을 부인하진 않지만 그럼 신보를 믿고 구입할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분명 상당한 불안감을 안겨줄 법한 Beherit의 작년 신작. 사실 “Drawing Down the Moon”에서도 앰비언트의 기운은 상당했지만 그 독특한 분위기는 “The Oath of Black Blood”와는 또 다른 Beherit의 개성적인 블랙메탈을 만들어내기 충분했고, 밴드가 그런 스타일의 연장선을 유지했다면 팬들은 아마 행복했겠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DJ를 꿈꿨을지 모르는 Nuclear Holocausto Vengeance는 이후 아예 앰비언트 사운드를 밀어붙여 많은 이들이 (만듦새의 문제를 떠나서)괴작으로 기억하는 “H418ov21.C”와 “Electric Doom Synthesis”을 내놓았다. 뭐 후자는 그래도 기타가 들어가긴 했다만 Beherit의 이름으로 이런 게 나와서야 좋은 말만 해주기는 사실 어렵다.
그래도 “Engram”으로 잠시 안심했던 팬들을 놀리려는 것인지 “Bardo Exist”는 다시금 앰비언트로 돌아왔다. 그렇다곤 해도 사실 음악 자체만으로는 “H418ov21.C”와 “Electric Doom Synthesis”보다는 귀에 잘 들어온다. 일단 Tangerine Dream을 열심히 들었는지(하나 고른다면 “Zeit”) 확실히 이전의 앰비언트들보다는 좀 더 정적이고 자연스러운 전개를 보여주는 편이고(특히 ‘Extreme Thirst and Insomnia’), Mortiis 생각도 나는 ‘Coruscation’ 같은 곡은 확실히 Beherit이 만든 여느 곡보다 좀 더 명확한 멜로디를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Peilien vanki’에서 불현듯 튀어나오는 디스코를 들으면서 느껴지는 허탈감을 보니 내가 아직 Nuclear Holocausto Vengeance의 클럽 DJ 놀이를 받아들일 깜냥이 안 되는 건 분명하다. 거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Kvlt,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