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슬 이것저것 음반 모으는 데 재미를 붙여가기 시작했던 시절 나의 취향을 이끌던 어른은 커버에 변기 나오는 앨범 치고 음악 구린 앨범이 없다는 얘기를 했었고, 아닌 게 아니라 취향의 문제를 떠나서 “Beggars Banquet”를 필두로 커버에 변기 달고 나온 앨범들 중에서 만듦새가 별로였던 앨범은 딱히 기억에 없다. Hunka Munka의 앨범은 커버에 변기를 달고 나온 수준이 아니라 아예 변기뚜껑 커버를 만들어 놓은 덕에 음악 이상으로 많이 팔렸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 그 앨범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걸핏하면 싼티나는 심포닉을 과하게 끼얹는 경향이 있는 게 이탈리아 심포닉인지라(물론 선입견이다) 적당히 소박한 맛이 있는 음악도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변기는 개인적으로는 신뢰의 표식이다.
그럼 Naevus의 이 앨범은 어떨까? 일단 가사 중간중간에 ‘shit’이나 ‘excrement’가 들리는데다 ‘Chairs Are Men’ 같은 곡에서는 아예 화장실 소리가 나오기도 하니 따지고 보면 변기를 달고 나온 앨범들 중 이만큼이나 화장실과 밀접하게 연결된 앨범은 별로 없지 않을까 싶은데, 화장실 소리를 이만큼 분위기 있게 써먹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포크 넘버 ‘Vision Rushed’이나 The Swans 풍의 음침함에 Joy Division풍의 보컬을 얹어내는 ‘Like Arms’를 듣자면 저 변기와 화장실 얘기들은 지독한 영국식 유머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가사를 읽어보지 않은지라 그저 짐작일 뿐이다. 엄청 영국적인 네오포크 앨범이라는 정도로 해 두자.
[Operative,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