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rry Niven의 뭔가 “딥 임팩트”와 “투모로우”를 적당히 섞으면서 세계관 설명을 차곡차곡 쌓아올리고 대신 ‘나는 끝까지 가족과 함께할꺼야!’ 식의 감동(또는 신파) 코드는 열심히 발라낸 듯한 그 하드 SF 소설에서 이름을 따 왔지만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SF와 관련한 면모는 단 하나도 보여주지 않고 있는 칠레 헤비메탈 밴드의 3집. 하긴 이 Iron Maiden과 Saxon을 열심히 따라하고 있는 밴드에게 SF가 이미지상 잘 연결되는 편은 아니고, 일단 멤버들 가명부터가 Hades, Hypnos, Tyr, Titan이니 SF와는 담 쌓고 있음이 분명한데, 그럴 거면 굳이 저 밴드명을 뭐하러 붙였나 하는 생각은 여전히 든다. 이름이야 어쨌건 적당한 판타지 이야기를 소재로 21세기에 NWOBHM을 연주하는 밴드 정도로 생각하는 게 맞을 것이다.

이번 앨범도 기존과 동일한 방향에 있지만, 항상 좀 귀를 찌르던 Hades의 보컬이 전작들보다는 좀 더 매끈한 스타일을 보여주고(과장 많이 섞으면, Paul Di’anno를 듣다가 Bruce Dickenson을 들었을 때와 비슷하지만 정도는 덜한 변화가 있다), 전작들보다는 Iron Maiden의 그림자는 좀 덜어내고 다른 밴드들을 참고한 모습들이 보인다는 점이 굳이 들자면 특징이겠다. ‘Land of Fire’의 Riot스러운 발라드나 ‘All Stories Come to an End’의 Angel Witch풍(아니면 Grand Magus풍)의 묵직한 전개는 이전의 앨범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모습들이다. ‘I Believe in You’의 일견 AOR스러운 마무리는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한데, 그렇지만 NWOBHM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튄다고 할 만한 곡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다양한 모습을 즐긴다는 느낌으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밴드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앨범이다.

[High Rolle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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