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ippikoulu는 핀란드 최초의 데스 메탈 밴드… 정도로 알려져 있다. 사실 누가 최초였는지 정확히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웹상에서 대충 핀란드 메탈에 다루고 있는 곳들은 대개 Rippikoulu를 최초로 쳐 주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밴드는 데모 두 장 내고 스리슬쩍 망해버렸다가 2014년이 돼서야 힘겹게 EP 한 장을 낼 수 있었다(물론 이후로도 푹 쉬고 있다). 하긴 이 데모가 나왔던 1993년도 이미 데스메탈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얘기가 음악 잡지에 실리기 시작한 지 한참 된 시절이었다. 클래식과는 거리가 있는 외로운 선구자였던 셈이다.
음악은 그나마 동시대에 활동하던 유럽 데스메탈 밴드들과도 꽤 차이가 있다. Treblinka 마냥 일견 둠적이면서도 음습한 류의 데스메탈을 연주하지만, 리프에서는 펑크/그라인드의 색채도 동시에 엿보인다. 헤비하고 둔중한 곡의 전개에 비해서 날렵하게까지 느껴지는 리프는 꽤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주는데, 날렵한 리프 덕에 헤드뱅잉하기 좋을 정도의 드라이브감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느릿한 템포로 트레몰로를 긁어대는 부분에서는 영세한 로블랙 밴드들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빠르지만 단조로운 템포를 동반한 앰비언트풍 사이키델리아 – 말이 복잡하다면 그냥 적당히 최면적인 구석이 있는 블랙메탈풍 – 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그냥 그 시절 외로운 선구자, 라고만 말하기엔 독특한 개성을 가진 밴드였던 셈이다.
1993년에 나온 데모 앨범이지만 2010년에 Svart 레코드에서 재발매되어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다만 이제 좀 비싸졌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도 이 데모를 구해 들을 수 있는 거겠지.
[Self-financed,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