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ynic의 “Focus” 이전 1988년부터 1991년까지의 네 장의 데모들을 우리의 돈 냄새 잘 맡는 Century Media가 시의적절하게 모아서 낸 컴필레이션. Cynic은 위의 데모들 외에도 2008년에 “Promo 08″을 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Cynic의 오랜 팬들은 “Traced in Air” 이후의 Cynic보다는 그 이전의 Cynic에 더욱 관심이 있는 경우가 많을 테니 레이블의 기획의도는 아마 그 쪽에 기울어져 있지 않았을까? 그런 방향에서 생각한다면 굳이 “Promo 98″을 이 컴필레이션에 넣지 않은 이유는 충분히 납득이 된다. 각설하고.
1988년 데모의 수록곡들(11-13)은 그런 면에서 가장 흥미로울 법한 곡들이다. 1980년대 말에 데스메탈의 양식은 이미 테크니컬 데스메탈의 맹아들을 급진적일 정도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생각하면 Cynic의 이 1988년 곡들은 의외일 정도로 크로스오버/하드코어의 경향을 강하게 보이는 편이다. 1989년의 “Reflections of a Dying World”의 수록곡들(7-10)에서도 이런 경향은 생각보다도 꽤 공고히 유지된다. 때로는 좀 더 스래쉬해진 Cro-Mags를 떠올릴 법한 ‘Weak Reasoning’은 결국 이들이 듣고 자랐던 음악도 동시대의 다른 메탈헤드들과 크게 다르진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고, Paul Masvidal이 보컬을 맡기 전에 마이크를 잡았던 Jack Kelly의 모습을 유일하게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Cynic의 모습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1990년 데모부터이다(4-6). 연속성이야 부인할 수 없지만 Cynic은 1990년에 와서 하드코어 스래쉬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걷어내기 시작했다(물론 아직 많이 남아 있긴 하다). 기존에 비교되던 밴드가 Cro-Mags나 D.R.I. 등이었다면, 이제 Cynic의 비교점은 “Human” 시절의 Death다. ‘Lifeless Irony’는 밴드의 커리어를 통틀어서도 인상적인 축에 속할 리프를 보여주고 있고, Tony Choy는 데모 전체에 걸쳐 Atheist로 떠나기 전에 밴드의 리듬 파트의 중핵은 이미 완성되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Cynic의 구성에서 생각보다 간과되는 멤버는 Sean Malone일지도 모른다. Tony는 확실히 Sean보다 덜 재즈적인 연주를 보여주고, 그러한 면모가 “Focus”와 이 데모를 구분짓는 중요한 측면이 된다.
그리고 1991년에 Cynic의 기량은 만개한다(1-3). “Focus”가 밴드의 첫 정규 앨범이긴 했지만, “Demo 1991″은 보기 드물게 밴드의 자주제작이 아니라 Roadrunner가 직접 발매한 데모였으니 다른 데모와 비교될 수는 없었다(사실 그래서 이 데모는 “Roadrunner demo”로도 자주 불리는 편이다). 1990년 데모가 스래쉬의 물을 걷어내기 시작한 앨범이었다면, 1991년 데모에 와서 Cynic은 드디어 ‘스래쉬가 아닌’ 데스메탈의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데모의 세 곡은 모두 “Focus”에도 수록된 곡들이지만, 그나마 가장 유사한 ‘Uroboric Forms’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두 곡은 확실히 “Focus”의 버전과는 다른 구성을 보인다. 이를테면 ‘The Eagle Nature’는 정규반보다도 더 헤비하고 빠른 연주로 녹음되면서 심지어 중반부 브레이크는 생략되어 있고, ‘Pleading for Preservation’은 ‘How Could I’의 연주를 엔딩으로 달고 나왔다. 데모라기보다는 Tony Choy 버전의 “Focus” 수록곡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말하자면 무수히 여기저기 흩뿌려진 데스메탈의 역사가 Cynic의 바이오그라피와 어우러져 청자에게 ‘좋았던 80년대’ 어느 미국의 지하 스튜디오에서 크로스오버 스래쉬로 시작했던 젊은 밴드가 부단한 노력 끝에 데스메탈의 어느 마일스톤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글을 굳이 여기까지 다 읽은 이라면 이 앨범을 안 좋아할 리 없을 것이다. 아마도.
[Century Media,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