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risis를 주도했던 Douglas P.는 이제는 Crisis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이 없지만(이후의 행보를 봐서는 젊은 날의 과오마냥 생각하고 있을지도) Tony Wakeford는 좀 입장이 달랐는지 인터뷰에서 심심찮게 Crisis에 대해서 언급하는 모습을 보여 왔고, 드디어 2018년께에는 Douglas P.를 끼지 않고 다른 멤버들로 새로이 Crisis를 꾸려 활동을 재개함으로써 호사가들의 얘깃거리가 되었다. Crisis 자체로도 그 시절 씬의 중요한 구성원 중 하나였음은 분명하니 눈에 띄겠지만, 이제는 그 시절의 정치색을 유지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들지 않는 멤버들인만큼 과연 이 밴드가 이제 와서 왜 다시 나타나는가? 가 결국은 많은 이들이 궁금한 사항일 것이다.
음악은 사실 1980년대 초반, 밴드 막판에 보여주었던 포스트펑크에 다가간 스타일과 큰 차이가 없는만큼 이 앨범만으로 밴드의 변화를 얘기하긴 아마 어려울 것이다. 다만 Tony Wakeford는 모 인터뷰에서 Crass를 매우 정치적이면서도 정당 등 외부의 세력에 휘둘리지 않았던 밴드였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었고, ‘Blind Cities’ 같은 곡의 가사를 보더라도 선동적인 모습보다는 될 대로 되라며 막 나가는 노동자의 모습이 엿보인다. Gang of Four풍의 연주에 혁명을 직접적으로 외치는 ‘Deeds Not Words’마저 역설적으로 들린다. 애초에 Naevus에서 보컬하는 분을 데려다가 혁명 노래를 시켰다는 사실부터가 이 앨범이 무슨 이데올로기 투쟁을 의도한 건 아니겠거니라는 나름의 확신을 준다. 하긴 “Holocaust Hymns”에서 확인했듯이 이들이 이미 80년대부터 생각이 슬슬 뒤틀리기 시작했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바다.
그러고 보면 Tony Wakeford에게도 어느 정도는 Crisis는 젊은 날의 과오였을지도 모르겠다. 음악 말고 다른 부분에서 말이다.
[Wooden Lung,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