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테네 출신 둠-데스 밴드의 2002년 데모. 사실 데모 치고는 꽤 멋들어진 커버이고 어쨌든 둠-데스 밴드로 소개된 밴드인만큼 바이올린을 끼고 있는 6인조 밴드에게 기대할 스타일은 My Dying Bride일 것이다. 문제는 이 데모에서 메탈릭한 부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Back to Heaven’은 적당히 퍼즈 걸린(덕분에 적당히 몽환적인) 바이올린 연주가 주도하는 발라드인데, 멜로디는 꽤 훌륭하지만 아무래도 둠-데스 밴드에게 보통 기대하는 것보다는 좀 더 ‘징징대는’ 스타일이다. ‘Auroras Fallen Star’로 가면 더욱 심각해지는데, 기타도 빼 버리고 보컬과 피아노만으로 끌고 나가다 중간에 잠깐 바이올린으로 분위기를 환기하는 이 곡에서 둔중한 둠 리프를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니까 아쉬움이 잔뜩 남는다.
그렇지만 사실 삐에로 커버의 앨범에 그런 음악을 기대하는 자체가 좀 잘못된 게 아닐까? 사실 My Dying Bride 스타일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일렉트로닉스나 다양한 잔기술 없이 정공법으로 승부하는 이 밴드가 보여주는 멜로디나 분위기는 꽤 인상적인 편이다. Sopor Aeternus풍의 분위기도 있고, 자칫 늘어질 수 있는 부분에서 적절한 타이밍에 불현듯 존재감을 드러내는 바이올린(아무래도 Martin Powell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은 이 밴드가 꽤 될성부른 떡잎이었음을 말해 준다.
뭐 정규반 한 장 내지 못하고 사라진 밴드에게 할 말인가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좀 아깝다.
[Self-financed,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