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Chasm의 Daniel Corchado가 하는 헤비메탈 밴드의 세 번째 앨범. 이런 류의 밴드들이 보통은 ‘바로 그 뮤지션이 가지고 있었던 또다른 모습’ 정도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은데(대표사례로는 Satanic Warmaster와 Armour의 관계 정도?) 이 밴드의 음악은 그냥 ‘The Chasm이 연주하는 헤비메탈’ 정도로만 얘기해도 대충 말이 된다는 점에서 다른 밴드들의 경우와는 차이가 있다. 물론 데스메탈은 아니고 결국은 Judas Priest와 Mercyful Fate의 모습을 나름대로 체화한 헤비메탈이지만, 곡의 전개나 구성, 분위기 등 많은 부분에서 The Chasm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덕분에 이들의 음악에서는 둠 메탈은 물론 Manilla Road류의 에픽 메탈 등 생각보다 다양한 면모들도 엿보인다. 하긴 The Chasm의 서사적이면서도 극적인 구성을 녹여내자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이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Daniel Corchado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던 원맨 밴드에서 드디어 정식 편성을 갖춘 밴드로서 연주한 첫 앨범이라는 점인데, 덕분에 밴드 특유의 파워코드 리프에 이어지는 중첩적인 멜로디라인의 구성은 이번 앨범에서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Esteban Julian Pena의 음역대 좁은 전형적인 USPM 스타일의 보컬은 되게 잘 부른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지만 앨범의 분위기만큼은 확실하게 뒷받침한다. ‘The Fight with Destiny’ 같은 곡에서는 둠적인 전개부터 클린 보컬을 앞세운 블랙메탈에 가까운 모습까지 보여주는데, 그런 면에서는 이런 음악을 (과장 좀 섞어서)’blackened USPM’ 정도로 얘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결국은 아주 멋진 파워 메탈 앨범이라 하는 게 가장 맞겠다. ‘The Immersion’이나 ‘The Fight with Destiny’를 요새 자주 듣지만, 사실 떨어지는 곡은 하나도 없으므로 어느 곡을 골라도 괜찮을 것이다.
[Lux Inframundis Prod.,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