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milia는 핀란드 출신의 원맨 블랙메탈 프로젝트이다. 그 한 명이 여성이라는 게 눈에 띄는 점인데, 하긴 Myrkur의 나름의 성공 이후 이런 류의 ‘여성 블랙메탈 싱어송라이터’ 시도가 자주는 아니더라도 띄엄띄엄 끊이지는 않았으므로 그런 흐름에서 봐줄 수 있으려나. 하지만 신선한 시도였다는 얘기가 있기는 했을지언정 Myrkur의 음악은(적어도 “M”까지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블랙메탈로서는 함량미달인 구석이 적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는 적어도 Vermilia는 Myrkur보다 훨씬 메탈을 잘 이해하고 숙련된 연주를 보여주는 뮤지션이다. Myrkur의 앨범들이 화려한 게스트진을 앞세운 앨범이었다는 점에서 차이는 더 두드러질 것이다.

덕분에 Myrkur와 Vermilia의 음악 모두 한 마디로 정리하면 ‘포크 바이브 짙은 블랙메탈’ 정도가 되긴 하겠지만 둘의 음악은 사실 많이 다르다. Myrkur가 어설픈 포크에 메탈의 질감을 덧씌운 음악에 가까웠다면 Vermilia는 노르웨이풍 강한 ‘atmospheric’ 블랙메탈이라 할 수 있는데, 원맨 밴드로서는 꽤나 복잡하고 탄탄한 리듬 파트가 확실히 좀 더 힘있는 전개로 곡들을 끌고 나간다. 소프라노와 스크리칭을 혼자서 넘나드는 보컬도 꽤나 인상적인데, 성별은 다르지만 Bathory의 잘 나가던 한때를 생각나게 하는 면도 있다. 그러다가 ‘Haudoille’에서 분명 ‘Life Eternal’의 오마주일 리프와 ‘Vedestä Vieraantunut’에서의 90년대 초반 Ulver의 흔적을 발견하면 그래도 못내 어느 한 구석 남아 있던 ‘여성 블랙메탈 밴드’에 대한 선입견을 어쩔 수 없이 내려놓게 된다. 블랙메탈이 정말로 무시무시해 보이고 그러면서도 이후 어느 때보다도 멋있게 들리던 시절을 분명히 잘 기억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2018년 최고의 블랙메탈 앨범이라고 하면 조금 거짓말이겠지만, 2018년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블랙메탈이라면 이 앨범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밴드가 나오는 거 보면 Myrkur는 조금씩 실력이 늘고는 있다만 그냥 은퇴하더라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Myrkur는 Relapse에서 앨범을 내고 있고, Vermilia는 그냥 혼자서 계속 찍고 있다. (그래도 꿋꿋하게 재발매라도 계속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인생이란 참 그리 얄궂다.

[Self-financed,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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