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디스코 거물을 Giorgio Moroder 짝퉁 격으로 알고 있다가 내가 사람을 많이 잘못 봤구나 깨닫게 된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딱히 디스코를 좋아해 본 적은 없었던지라 Cerrone을 다시 보게 된 것도 Cerrone이 커리어를 통틀어 본격 디스코를 선보였던 시간은 생각보다는 그리 길지 않았다는 점을 알게 된 덕이었다. 이후의 앨범들은 물론이거니와 “Supernature”까지만 가더라도 나름의 스페이스 오페라 사운드트랙을 만드려 했는지 변화의 양상을 보여주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이후 Paul Simon 이전에 뮤지션이 함부로 뮤지컬을 시도했다가는 훅 가는 수가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으니, Cerrone을 ‘디스코 마스터’식으로 부른다면 맞는 얘기긴 하지만 이 뮤지션의 중요한 부분들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Cerrone이 본격적으로 전자음악 물을 덜어내고 밴드음악의 기운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Cerrone V”부터일 것인데, David Hungate가 참여한 덕인지 음악은 Toto식 AOR의 기운을 분명히 머금고 있었고, 뮤지션 나름의 변신은 계속되었지만 이 AOR의 기운은 꽤 오랜 동안 Cerrone의 커리어를 뒤덮었다고 생각한다. 대폭망 뮤지컬이 돼 버린 “Dream”도 뮤지컬이 망해서 그렇지 음악 자체는 준수한 Cerrone식 AOR을 담고 있었고, 차트와 평단이 폄하할 이유야 따지자면 꽤나 많았지만 애초 디스코에 관심이 없었던 청자에게는 Cerrone을 입문하기엔 더할나위 없는 앨범이었다. Steve Overland(FM에 있었던 그 분이 맞음)가 노래한 ‘Harmony’ 같은 곡만으로도 이 앨범에서의 Cerrone을 준수한 AOR/멜로딕 록 뮤지션이라고 하기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얘기하면 좀 과하려나?

Cerrone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대폭망 앨범이었겠지만 좋은 앨범이다.

[NAC,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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