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봐도 나쁜놈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우리가 남이가?’한다면 그 패거리 전체가 불한당처럼 보일 거라는 세상의 진리를 반영한 것인지 Boyd Rice는 이 앨범에서 ‘Friends’가 아닌 ‘Fiends’를 달고 등장했다. 그런데 그렇게 같이 나온 이들이 Douglas P.와 Albin Julius이니 친구라 하건 불한당이라 하건 단어 하나로 뭉뚱그려질 수 있는 사람들인가, 일단 저 셋 중에 Boyd Rice가 중심에 올 수 있을 만한 사람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뭐 셋 다 어쨌든 장르의 거물이긴 하고, 서로 안면 없는 사이도 아니니 가능했을 프로젝트일지도 모른다.
음악은 역시 내 음악에 양보란 없다고 고집부릴 만한 3명을 모아 놓아서인지 다양한 스타일을 모두 담고 있다. 전형적인 Death in June 스타일의 포크 ‘Watery Leviathan’으로 앨범을 시작하지만, ‘The Forgotten Father’나 ‘Rex Mundi’에서는 Der Blutharsch풍의 ‘bombastic’한 인더스트리얼을 들을 수 있고, ‘Murder Bag’의 기묘한 분위기 아래 실리는 장광설은 Boyd Rice식의 말장난 내지는 개똥철학에 가까워 보인다. ‘Fire Shall Come’에서는 Blood Axis풍의 거친 사운드도 등장한다. Boyd Rice식의 ‘지독한’ 스타일의 유머 정도를 제외하면 앨범을 관통하는 일관된 스타일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나쁘게 얘기하면 사실 좀 난삽하게 들릴지 모를 앨범이지만, 수록곡 어느 하나 허투루 넘길 만한 곡도 없는 만큼 위에 이름이 나온 뮤지션들을 좋게 들었던 사람이라면 분명 만족할 만한 앨범이다. 좋게 얘기하면 다양한 스타일을 모두 담고 있는만큼 아무리 망해도 한두 곡 정도는 분명히 건질 법한 앨범이다. Douglas P.가 참여한 앨범들 중에서는 비교적 싸게 구해지는 물건인만큼 장르의 입문자용으로도 좋을지도.
[Neroz,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