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morphis 얘기가 나온 김에 얘기를 이어 나간다면 Amorphis의 앨범들 중 한 장만을 고른다면 나로서는 “The Karelian Isthmus”이다. 일단 밴드의 앨범 중에 확실히 데스메탈이라고 말할 만한 유일한 앨범이기도 하고(“Tales From the Thousand Lakes”만 해도 확실히 애매한 구석이 있다), 밴드의 곡들 중 가장 데스메탈다웠던 ‘Vulgar Necrolatry’가 있었기 때문인데, 앨범을 구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이 곡이 사실은 ‘핀란드 데스메탈의 전설 Abhorrence의 원곡의 커버’라는 소개를 듣게 되었다. 앨범 해설지에 이름이 언급되는 밴드의 앨범은 무조건 하나 이상은 산다!는 괴이한 원칙으로 앨범들을 모으던 시절이었으니 Abhorrence는 당연히 표적이었다.
문제는 Abhorrence는 Seraphic Decay에서 나왔던 EP 외에는 앨범이 나온 게 없었으니 당췌 구할래도 물건이 보이질 않는다는 점이었고, 그나마 ‘Vulgar Necrolatry’는 그 EP에 없는 곡이었으니 이 컴필레이션이 나오기 전까지는 밴드의 데뷔 데모를 구하지 않는 한 이 곡의 오리지널을 듣기는 요원했다(Youtube를 빼고는). 대체 무슨 전설이 앨범 하나가 없단 말이냐? 이런 불평은 이 컴필레이션이 나온 뒤에야 끝을 맺었다. 그 91년 EP에 데뷔 데모, 1990년 미공개 라이브와 리허설 음원까지 다 모아 놓았으니 이 한 장이면 Abhorrence를 졸업하기에 충분하니 무척이나 친절한 컴필레이션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음악이다. ‘Vulgar Necrolatry’ 말고도 스웨디시 데스메탈과 Autopsy, Carcass 초창기의 좀 더 지저분한 류의 모습이 묻어나는 데스메탈은 이 북유럽 데스메탈이 태동기에는 정말 ‘클래식’한 스타일에 가까웠음을 보여주고 있고, ‘Pestilential Mists’ 같은 곡은 Amorphis가 (포크 바이브를 빼고)어떤 음악을 참고해서 데뷔작을 냈을지 짐작케 하는 구석이 있다. ‘Pleasures of Putrid Flesh’ 같은 곡의 둠적인 면모는 과장 좀 섞으면 “The Rack”의 Asphyx와도 닮아 있다. 하긴 이 정도 되니까 제대로 된 앨범 하나 없이 전설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멋진 앨범이다.
[Svart,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