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tal Remains도 보면 은근히 Glen Benton이 마이크를 잡던 시절로만 기억되는 경우들이 많은데(물론 이제는 기억 자체를 잘 하지도 않고) 이 밴드도 거의 앨범 두 장마다 보컬을 갈아치운지라 그렇게만 기억한다면 밴드의 많은 모습들을 놓치고 넘어갈 것이고, 누가 뭐래도 Vital Remains에게 위명을 안겨준 시절은 그래도 이 데뷔작에서 “Into Cold Darkness”까지의 불경스러운 사운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Forever Underground”부터의 명확하면서도 비장한 멜로디(특히 ‘I Am God’)와 드라마틱한 구성은 비범하긴 하지만, 비장함이라면 유감스럽게도 Vital Remains를 대신할 만한 사례들이 많을 것이다.

“Let Us Pray”는 아무래도 시절이 시절인지라 ‘올드한’ 데스메탈의 전형에 가깝지만, 플로리다나 뉴욕의 데스메탈 밴드들과는 좀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 앨범이다. 밴드는 당대의 다른 밴드들(Incantation 정도는 제외)보다 스래쉬의 영향이 약하면서도 좀 더 먹먹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강조한 데스메탈을 연주하였고, 컨셉트에 있어서도 흔하던 ‘사타니즘’(내지는 Anton Lavey)류보다는 좀 더 오컬티즘을 강조하여 나름의 개성을 확보했다. 이런 분위기 덕분인지, Tony Lazaro의 기타에서는 미국의 밴드에서게는 드물게도 Mercyful Fate나 Candlemass의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다(특히 ‘Uncultivated Grave’나 ‘Frozen Terror’).

말하자면, “Let Us Pray”는 그 시절 미국과 유럽 스타일의 가교 격의 위치에 있던 데스메탈 앨범이었고, 불경스러운 분위기와 강력함을 동시에 살려낸 보기 드문 사례였다고 할 수 있다. 불경함보다는 비장함으로 옷을 갈아입은 게 아마도 밴드의 이후 모습일 것이다.

[Deaf,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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