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in June의 역사적인 데뷔작. 사실 이 네오포크의 구루가 처음부터 오늘날 그 이름을 들었을 때 흔히 떠올리곤 하는 류의 네오포크를 연주했던 건 아니었고,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이 앨범에 담겨 있는 음악은 Joy Division의 그림자 강하게 드리운 포스트펑크에 가깝다. 70년대 SWP 당원으로도 활동하던 사회주의자가 어쩌다가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는지가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가십거리를 넘어 학문적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만큼(논문들도 찾으면 꽤 나오는 편이다), Death in June의 이후 모습만을 알고 있는 사람이면 꽤 당혹스러울 정도의 음악이다. Douglas P. 말고도 네오포크의 가장 굵직한 이름들에 속한 이들이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만큼, 이 경계 모호한 장르가 인더스트리얼이 아니라 펑크의 역사에서 흔히 이름을 디밀곤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래도 그 시절 흔해빠진 Joy Division 카피캣들과는 떡잎부터 다른 음악이다. ‘All Alone in Her Nirvana’의 점차 고조되는 호전적인 분위기의 드럼과 ‘State Laughter’ 등 앨범의 많은 부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마칭 드럼 등은 Joy Division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이고, ‘Heaven Street mkII’의 화약 냄새 나는 가사는(그러니까 천국 가는 방법은 바로 ‘그것’이렷다) 훗날 이 밴드가 불러올 엄청난 설화들을 예견하게 한다. 하긴 그런 예상은 음악까지 갈 것도 없이 오리지널 버전 커버의 토텐코프 마크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말이다. 지금 봐도 정말 얼척없는 커버다.

CD 버전은 다른 커버로 Tony Wakeford의 비중 높은 4곡과 보너스 DVD(1982년 런던 라이브)를 달고 나왔는데, 바뀐 커버가 멋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저 추가된 내용물들이 꽤나 묵직하니만큼 돈값은 확실히 하는 편이다. 그 ‘호전적인’ 분위기를 탑재하기 이전 순수한 포스트펑크에 좀 더 가까웠던 밴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New European Recordings,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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