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정말 팔고 있는 모든 CD가 비쌌던 덕분에 무척이나 인상깊었던 호주의 Modern Invasion에서 샀던 몇 안 되는 앨범들 중 가장 맘에 들었던 앨범들 중에는 의외로 블랙메탈이 아닌 Dungeon의 “One Step Beyond”가 끼어 있다. 이 레이블의 모든 발매작이 그렇듯이 정말 음반 여기저기에 레이블 특유의 허접한 로고가 붙어 있는 게 거슬리긴 했지만, 일단 이 레이블이 유명 블랙메탈/데스메탈 클래식들의 호주 라이센스 말고 직접 내는 호주 밴드 자체가 많지 않은데다 블랙메탈/데스메탈과는 별 관련 없는 음악은 정말 별로 없으므로 기억에 남을 조건은 많이 갖추고 있던 셈이다.

이 앨범은 Dungeon의 정규 데뷔작 이전 데모와 EP들을 모아 둔 컴필레이션인데, 사실 상당수의 곡들은 데뷔작인 “Resurrection”에 좀 더 좋은 음질로 실려 있으니 큰 의미는 없을 수 있겠지만, 덕분에 이 컴필레이션 버전이 좀 더 거친 맛에서는 낫다고 할 수 있을지도? 그리고 말이 데모와 EP지 웬만한 블랙메탈 밴드의 데모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의 음질이므로 크게 문제될 것은 없겠다. 곡들도 이 앨범이 왜 호주가 아니라 일본에서 나왔는지 이해될 정도로 멜로딕한 편이니 하긴 음질이 구렸으면 정말 곤란했을 것이다. Blondie를 커버(‘Call Me’)하는 헤비메탈 밴드를 별로 본 적이 없는데, 그 곡이 앨범에서 겉돌지 않으니 밴드의 팝 센스만큼은 충분히 검증됐다고 할 수 있을지도? 하지만 Virgil Donati가 커리어에서 손꼽힐 정도로 질주하는 드러밍을 보여주는 ‘Changing Moods’에서는 Iron Maiden의 좋았던 시절도 엿보인다. 뭐 이것도 뒤에 “The Final Chapter”에서 좀 더 나은 음질로 다시 선보이지만 말이다.

말하자면 Iron Maiden류의 스타일에 좀 더 팝 센스를 강조한 류의 멜로딕 파워메탈 밴드라고 할 수 있겠는데, 사실 멜로딕 파워메탈이라기엔 (보통의 경우보단) 좀 더 땀냄새 나는 스타일이므로 좀 망설이고 있다. 그냥 괜찮은 헤비메탈 앨범 정도로 해두는 게 안전하긴 하겠다.

[Tdk-core,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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