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룸프레스 출판사에 대한 인상이 꽤 좋은 편이다. 대체 뭔 기준으로 나오는 건지 볼 때마다 헷갈리는 ‘제안들’ 총서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운영하는 출판사라니 다른 ‘문학 전문’ 출판사와는 보는 방향이 달랐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운영하는 출판사인지라 저 힙하기 그지없는 목록의 총서를 제외하면 딱히 내 손에 잡히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 책이 왜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별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유력한 견해는 저자인 ‘헤라르트 윙어르’의 이름에서 에른스트 윙어의 향기를 느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유력하나 마나 쓸데없기 그지없다.

부제가 정직하게 얘기해 주듯 이 책은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책이다. 우리가 한글이나 워드를 이용해 (오로지 남들을 보여주기 위한)문서를 만들 때 고심하곤 하는 문제를 혹자들은 얼마나 심화해서 고민해 왔는지에 대한 역사와 내용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일상에서 무심결에 지나가듯 보는 글자들, 글꼴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어째서 한글이나 워드를 이용하는 유저들에게 고민을 던져주는 수많은 글꼴들이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미술사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사조들을 논하듯이 일정 테마들을 목차로 던져두고 그에 걸맞는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출판사는 이 책이 ‘읽기의 과정’을 그려낸 보기 드문 책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독자로부터 어떠한 반응을 이끌어내기를 원하거나, 아니면 글꼴의 모양 자체에 대한 ‘이상적 형태’를 탐구하는 글꼴 디자이너들(과 관련 업계)의 고민의 역사에 대한 책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야멸찬 고민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결국 어떠한 타이포그래피가 주로 사용되는지에 대하여 책은 신경학/뇌과학 등의 연구 결과에 의존한다. 쓰기와 알파벳의 발전에 있어 이뤄진 각종 실험들인 뇌가 가장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역할을 하고, 이러한 신경 특성들은 알파벳 뿐 아니라 다른 문자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하긴 어떤 디자이너라도 개별 독자 그룹들이 원하는 바를 인지하고 만족시키기는 어려울 것이고, 글꼴 디자이너의 ‘창작에의 의지와 취향’을 독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여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막연한 기대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니 이 성실한 리서치와 연구의 결과물일 책을 보고서도 ‘이런 문서를 만들 때는 이런 글꼴을!’ 식의 단순하기 그지없는 결론을 얻어낼 수는 없고, 결국 타이포그래피 문외한인 나 같은 독자로서는 글꼴을 둘러싼 수많은 고민의 산물들을 겉핥기한 후 처음의 고민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글꼴 디자이너나 전문가들이 그런 고민들을 계속한 결과 나온 것이 지금의 수많은 글꼴들이라니 따지고 보면 나 같은 사람이 할 법한 고민을 그 디자이너나 전문가들은 먼저 생각하고 고민했다가 결국은 글꼴을 통해 유저들에게 던져주고 있었던 것이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무척이나 치열한 지적 향연이 벌어지는 영역이었던 셈이고, 나 같은 단순한 독자는 에라 모르겠다 오늘도 헬베티카나 쓰자고 하면서 고민을 벗어난다. 디자이너와 전문가들에게 사과를 전한다.

[헤라르트 윙어르 저, 최문경 역, 워크룸프레스]

당신이 읽는 동안 : 글꼴, 글꼴 디자인, 타이포그래피”의 2개의 생각

Grimloch 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